덕산의 방망이 삼십 방
덕산의 방망이 삼십 방
  • 현불뉴스
  • 승인 2019.01.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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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칙 덕산시중(德山示眾)

[古則과 着語]

舉, 德山示眾云 “今夜不答 (言猶在耳) 問話者 三十棒” (打云 “喫棒了也”) 時有僧出禮拜 山便打 (忘前失後漢) 僧云 “某甲話也未問” (却較些子) 山云 “你是甚處人” (換却眼睛) 僧云 “新羅人” (却換德山眼睛) 山云 “未踏船舷 好打三十棒” (大小德山 作這般去就) 法眼拈云 “大小德山話 作兩橛” (漆桶夜生光) 圓明拈云 “大小德山 龍頭蛇尾” (烏 龜鑽破壁)

덕산이 대중에게 말했다. “오늘 밤엔 대답하지 않겠다. [이 말이 아직까지도 귀에 쟁쟁하다.] 묻는 자는 삼십 방이야!” [(선상)을 치고 말했다. “(이미 삼십) 방망이를 먹었다!”]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 절을 하자, 덕산이 바로 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놈이로다!]
스님이 말했다. “저는 아직 묻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괜찮군.]
덕산이 말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눈동자를 바꿔버리는구나!]
스님이 말했다. “신라 사람입니다.” [도리어 덕산의 눈동자를 바꿔버렸다.]
덕산이 말했다. “뱃머리를 밟기도 전에 30방을 쳤어야 했다.” [덕산정도 되는 양반이 맨날 이런 식이군.]
법안이 염(拈, 거론)해서 말했다.
“별 것 아닌 덕산의 말이 두 개의 말뚝이 되었다.” [칠통 같은 밤에 빛이 난다.]
원명이 염해서 말했다.
“별 것 아닌 덕산이 용두사미가 되었도다.” [와(烏)! 거북의 등을 뚫고 벽을 부수는구나.]

[拈古와 着語]

雪竇拈云 “二老宿 雖善裁長補短 舍重從輕 (錯 下名言) 要見德山 亦未可 (還曾夢見德山麼) 何故 德山大似握閫外威權 有當斷不斷 不招其亂底劒 (險) 諸人要識新羅僧麼 (莫是闍黎) 只是撞著露柱的瞎漢” (自領出去)

설두가 염해서 말했다.
“두 노장(법안과 원명)이 아무리 긴 것을 재단해서 짧은 것을 보완하고, 무거운 것은 버리고 가벼운 것을 따르는 것은 잘 했어도 [착(錯, 틀렸다)! 하지만 명언을 했다.] 덕산을 보고자 했지만, 역시 보지 못했다. [(설두 스님은)꿈속에서라도 덕산을 본 적이 있소?] 왜냐하면 덕산은 마치 변방의 장군이 위엄과 권위를 장악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아도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험(險, 위험하다)!] 대중은 신라 스님을 알고자 하는가? [혹시 스님(설두)이 아니오?] 단지 노주(露柱)에 부딪친 눈 먼 놈일 뿐이다.” [(스님이나)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관가에) 출두하시오!]

*덕산(德山)은 덕산선감 선사로, 용담숭신의 법을 이었으며, 주금강(周金剛)이라고도 불렸다.

*법안(法眼)은 법안종의 개조 법안문익, 원명(圓明)은 운문문언의 법을 이은 덕산연밀 선사를 뜻한다.

*원문의 대소(大小)는 문맥에 따라 달리 표현하였음을 밝혀둔다.

*‘마땅히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아도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검’은 결단하여야 할 때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난을 당하게 된다(當斷不斷 反受其亂)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춘신군전(春申君傳)’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자령출거(自領出去)는 선가에서는 주로 자기의 일을 자백하는 뜻으로 쓰이는데, 위에서는 직역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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