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믿음 편-2

종교는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믿는 체계다. 그 무엇에는 종교를 창시한 교주(敎主)와 그의 가르침인 교리(敎理), 그리고 교주와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교단(敎團)이 포함된다. 이를 가리켜 종교의 3대 요소라 한다. 불교의 경우 교주인 석가모니 붓다(佛)와 그 가르침인 법(法), 교단인 승가(僧)가 이에 해당된다. 대개의 종교는 이 셋을 갖추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종교적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체계다.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사실 여부에 대한 분명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보류하면 된다. 그러나 종교는 이런 검증체계를 통해서 신이 존재하는지, 전생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신앙과 과학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카테고리의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는 검증의 체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를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구 중세 신학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무려 천 년에 걸쳐서 존재론적 증명, 우주론적 증명, 도덕론적 증명 등 어렵고 복잡한 시스템을 고안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예컨대 존재론적 증명을 삼단논법을 통해 정리하면 이렇다.

대전제 : 신은 완전자이다. 소전제 : 완전하기 위해서는 관념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 결론 :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완전자, 즉 완전한 존재라는 신의 개념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완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도화지에 사과를 그렸다고 해보자. 그림 속 사과와 실제 먹을 수 있는 사과 중에 어느 것이 더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실제로 눈앞에 있는 사과가 더 완전하다. 이처럼 신도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를 타당한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론이 타당하려면 전제들이 옳거나 사실이어야 하는데, 신의 완전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증명은 전제 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곧 인간의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지적 오만이 부른 무모한 시도일 뿐이다. 일종의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신학자들의 이러한 시도들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종교는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즉 신앙과 이성은 서로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종교는 믿음의 대상이지 결코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검증을 통해 신의 존재나 전생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종교적 신앙은 일반적 의미의 앎, 즉 지식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지식은 경험적이든 분석적이든 검증을 통해 그것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이나 내세가 존재한다는 종교적 언명들이 검증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면 이 역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이성과 경험을 통해 어떤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일이 아니다. 이는 불교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전생의 존재여부를 지구 밖에 금성이 있음을 밝히는 것과 같이 확인할 수는 없다. 모든 종교는 과학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가르침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믿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믿음을 과학이나 이성을 통해 검증하려는 태도는 난센스(nonsense)라 할 것이다. 종교적 믿음에는 지식과는 견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의미들이 가득 들어있다. 사람들이 종교를 신앙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글들은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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