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 바르게 알아야 진정한 불자

그림. 강병호

佛法과 만남, 최고의 행운
수억 겁을 살아도 오늘 하루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이 하루는 세세생생 살아도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하루다. 우리는 지금 그 하루와 마주하고 있다.

이 생에서 최고의 행운은 불교와의 만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불법을 한 명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불교연재는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 불법을 알아도 세상은 불법(佛法)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행복한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한 법이다.

사찰 다닌다고 불자는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 이해 선결돼야

상대성 이론·프랙탈 등 통해  
불법 원리 ‘연기’ 확인 가능해

관계하고 있는 수억 겁의 세월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30년 전의 나를 되돌아보면 그곳에 이미 오늘의 씨앗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는 원인이 있어 지금의 상황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이 깨친 연기(緣起)를 통해 존재하는 것들에는 어떠한 법칙이 있는지 같이 공부하고자 한다.

우리는 불교가 무엇인지 물으면 한마디도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절에 다녀도 불교의 기본적인 용어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고, 전달할 수도 없고, 내 삶을 불교적으로 살 수가 없다.

우리는 국솥의 국자같이 살지 말아야 한다. 사찰에 1000년을 다녀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국자와 다를 바가 없다.

부처님께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12처가 불교니라”고 했다. 존재의 인식 구조를 아주 명료하게 설명한 것이다. 단순하게 절에 다닌다고 해서 불자가 아니다.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불자가 된다.

부처님께서 제자들한테 직접 이해시킨 6근과 6경, 12처와 18계, 육육법연기, 오온연기, 12연기 등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재를 할 생각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불교를 아는 것이다. 법당에 골격만 세워놓으면 아름답게 칠도 할 수 있고, 부처님을 모셔놓을 수도 있고, 모든 조형물을 설치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골격이 어떻게 되어있는 지를 알고 있으면 어느 생에 어떻게 태어나든지 불법에서 멀어질 수가 없다. 내가 진정으로 불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불교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가 없다.

시공간, 상대성 이론과 만유인력
커피숍의 탁자도 존재이며 우리도 존재다. 존재를 좀 더 나눠 보면 크게 생명이 없는 무생물과 생명이 있는 생명체로 나눌 수 있다. 무생물체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 생명이 없는 물체인 책상이라든가 지구라든가 혹은 태양이라든가 이런 물체들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 이런 관계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이 부분들을 생명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살필 수가 있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보살상의 모습은 동그랗게 보인다. 하지만 1초에 30만km로 달려가면서 물체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빛을 타고 가면서 존재하고 있는 3차원의 모습을 보면 그대로 3차원으로 보일 것인가’하는 이 문제가 아인슈타인의 16살 때의 화두였다. 이를 푼 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예는 다음과 같다. 지금 A씨가 북쪽으로 약 10m씩 달려가고 있는데 옆에 있는 B씨는 남쪽으로 10m씩 달려간다. 그럼 어떻게 될까? 북쪽으로 가는 A씨는 B씨를 보면 20m로 가는 것 같이 보이게 된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A씨는 북쪽으로 10m를 달려가고 있고, B씨는 남쪽으로 10m로 달려가고 있다. 그럼 A씨가 B씨를 볼 때 B씨가 20m씩 달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이 상대 속도이다.

상대 속도에서 A씨가 10m를 북쪽으로 가고 있고 B씨는 10m를 남쪽으로 가고 있을 때 A씨가 B씨를 보면 20m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빨리 달려보자. A씨와 B씨가 30만km로 가고 있다. 빛이 1초에 가는 거리는 30만km다. 현 우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 속도기도 하다. A씨가 B씨를 보면 60만km의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속도가 30만km라고 했다. 앞에서 분명히 10m로 가면서 10m를 봤을 때를 계산해보면 정확하게 20m가 나온다. 하지만 30만km로 가면서 30만km를 보면 30만km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상대성 이론을 낳게 하는 배경이다.

이는 시간은 공간과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하나이며, 공간의 움직임이 시간이라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결국 상대론을 생각할 수 있는 ‘상대 속도’라는 개념이다.

또 예를 들어 지금 A씨가 B씨의 앞쪽에 있고, 나보다는 뒤쪽에 있다. 이 같은 위치를 결정할 때 어떻게 하는가? 기준을 정해 그것을 중심으로 어디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주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기준을 정해 어디에 있으며, 무엇에 비해서 존재한다고 인식한다.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사고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위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절대적인 위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떤 한 지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디에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간다. 결국 이것이 상대성 이론을 낳게 했다.

이와 함께 ‘왜 모든 물체는 밑으로만 떨어지는가’는 뉴턴의 화두였고, 이에 대한 답이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이다.

뉴턴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고 했다. 당신이 여기 앉아 있고 내가 탁자 앞에 서 있다면 두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가 힘을 느낄 수 있는가? 힘은 분명 계산해보면 얼마라는 값이 나오지만, 우리가 끌려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서로 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그 힘은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약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다.

뉴턴이 힌트를 얻은 것은 모든 물체는 밑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왜 이것이 옆으로도 안 가고 위로도 안 가고 밑으로만 떨어지는가? 이 화두의 해답이 바로 만유인력이다. 만유인력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종합적·구체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인과의 뿌리, 프랙탈 이론 
오랜만에 동네 커피숍에서 만난 60대 보살 두 명이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보살 왈, 그때 죽도록 따라다니던 남자친구가 졸업 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던데 그 친구와 결혼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다른 보살은 자기가 죽도록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는데 집에서 권하는 돈 많은 집에 시집을 갔지만 만약 그때 고집을 피워 그 선배와 결혼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일어날 일만 일어나는 프랙탈 이론이 불교에서는 인과법이다. 이 세상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없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현대불교신문사에 방문할 때 걸어왔는데 지난주에는 택시를 타고 왔다고 가정해보자. 지난주에는 택시 타고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고, 오늘은 걸어 올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서 걸어온 것이다. 수만 번을 현대불교신문사에 걸어서 오가도, 똑같은 길을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갈 때에도 똑같은 길을 똑같이 오지 않는다. 그날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행위로 일어나는 것이다.

향을 피우면 향 연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생각없이 보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바람이 적당하게 불거나 혹은 여기에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향 연기가 올라가는 방향은 항상 다르다.

모든 조건을 따지면 향 연기는 그렇게밖에 올라 갈 수 없었다는 것이 프랙탈 이론의 주요 골자다. 우리가 사는 것도 이렇게밖에 살 수 없구나 하는 것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프랙탈 이론은 21세기가 풀어야 할 과학적인 인과론이며, 과학으로 인과론을 풀어낸 것이 프랙탈 이론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과론 자체가 프랙탈 이론이다. 이 세상에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없다. 이는 일어날 일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없고, 전부 다 예측 가능하단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문제를 고민했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연기(緣起)’이다. 즉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다.

아인슈타인이 푼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에 대한 존재의 움직임에 대한 문제이며, 뉴턴이 푼 문제는 공간에서의 존재에 대한 문제다. 프랙탈 이론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인과에 대한 문제이다.

무생물 사이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적용된다면 불교를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해진다. 연기법에 대한 이해도 쉽다.

김성규 교수는
영남대 의대 교수. ‘의학물리학자’로 방사선종양학의 개척자다. 경주고 불교학생회에서 불연을 맺은 이후 전법 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법륜불자교수회, 영남대학교의료원불교신행회,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불교학생회를 창립했으며, 현재 (사)통섭불교원 이사장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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