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글쓰기가 아니다
보여주는 글쓰기가 아니다
  • 김성수 마음과학연구소 대표
  • 승인 2019.01.03 16: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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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글쓰기명상에 앞서

누군가 왜, 하필 글쓰기명상이냐고 나에게 물으면 늘 하는 대답이 있다. “정좌보다 글쓰기명상이 더 쉽다” “좌선보다 글쓰기가 훨씬 일상적이고, 요즘 사람은 하지 마라해도 하는 일이 됐다.

글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몸의 연장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문맹률 낮은 국민에게 글은 곧 공기다. 누구나 공기로 호흡하듯이 길고 짧은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누구나 소셜미디어를 즐기고 있다. 걸으면서도 날아든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보낸다. 신호등 앞에서도 미소를 띠며 타인이 보내온 글을 읽고 답신한다.

생활 속 글쓰기 보편화됐지만
명상단어 거부감 갖는 대중
글쓰기는 자기 내면과의 만남
두서없는 내 글이 최상품이다

내 아들은 자다가도 몸을 뒤집어 글을 쓴다. 박달나무 탈바가지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살아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거나 다람쥐가 알밤 까먹는 자세로 글을 쓴다. 이런 세상을 20년 전만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다가도 글을 쓰다니. 독서량이 너무 적다고 걱정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글쓰기 하느라고 독서할 틈이 없다. 글쓰기명상의 조건이 익을대로 무르익은 셈이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언젠가 회사에서 직무교육 프로그램에 명상어쩌고 하는 제목을 올렸더니 반응이 거의 비명에 가깝다. 명상의 자만 듣고도 큰일이 난 것이다. 그들은 그때 떠올렸을 것이다. 면벽을 하고, 눈을 감은 뒤 척추를 전신주처럼 꼿꼿이 세우고, 두 다리를 꼬아 모아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아이쿠 죽었구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구시렁구시렁 들리는 듯했다.

글쓰기명상이란 것을 구상할 무렵, 가장 큰 고민은 소위 명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었다. 10여 년 전, 스무 살이 넘은 아들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눈 감고 척추를 반듯이 편 채 1시간만 앉아 있으면 만 원 주마.”

그랬더니 둘째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없는 곳에서 하라면 할게요.”

명상 알바 시간당 만 원 시대를 열고자 했던 나의 시도는 간단히 묵살됐다. 날밤 새워가면서 친구와 SNS 글쓰기로 열병을 앓는 아들이지만 척추 세우고 꼿꼿이 앉아 있는 자세만큼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대가 앞에서도 불가였다.

글쓰기명상 왜 해야 할까
글쓰기명상을 하는 목적은 뭘까. 글쓰기를 통해 본격 수행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내면의 역동을 문자화하는 작업이다. , 내적 알아차림을 외적 문자로 연결시키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알아차림이라는 심리적 도구는 글쓰기를 하는 동안 마치 한 사람의 의식 속에 던져진 그물 같은 역할을 한다. 내면의 수심(水深)에 알아차림이라는 의식의 그물망이 고요히 침투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마음이기도 하고 그 마음을 지켜보는 또 다른 마음이기도 해서 한 존재의 내·외면을 자유롭게, 소리 없이 들랑거리면서 작업을 수행한다. 알아차림이라는 기제는 인간의 마음 내외적으로 출입이 자유롭지만 대상에 대한 주시가 대전제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글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알아차림의 힘을 증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글쓰기명상이다. 좌선명상으로 알아차림의 힘을 증장시키는 것보다 훨씬 친숙한 도구, 우리말을 활용하여 수행의 길로 나아가보자는 제안이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유사 이래 가장 활발한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면 강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만큼 삭감되는 것은 고요히 앉아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명상의 시공간이다. 유사 이래 가장 열악하다. 자신하건대 이 조건은 향후에도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온갖 영상물의 범람, 인공지능의 발달, 애완동물의 가족화 등 마음의 방향이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올 여지가 비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살림집에 관심 쏟을 겨를이 없다. 그저 타인과의 교류에 골몰할 뿐이다. 말하자면, 인정욕구에 꺼둘리느라 여념이 없다.

아무렇든 자신의 집 살림은 안녕하시겠거니 하는 걸까. 그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세간살이는 온갖 도둑들이 훑어가고 뜯어가고 망가뜨린다.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휘둘리는 동안 신경질이라는 도둑, 분노라는 도둑, 욕망이라는 도둑, 어리석음이라는 도둑이 본인의 마음 세간살이를 망가뜨리거나 거미줄을 치면서 집주인 행세를 하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내 몸이라는 존재에게 때가 되면 먹이를 채워주고, 목마르면 물을 부어준다. 그럴 뿐이다. 마치 주택 소유주의 책무인 주택 보유세, 주민세, 종합소득세 따위만 납부하면 서류상의 집주인이 유지되는 것처럼. 암덩이가 주인 행세를 하건, 혈관이 낡아 흐물거리든, 자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이 두뇌를 가득 채우고 있든 내 상관할 바 아니라는 식이다.

만약 2600년 전, 붓다 재세 시 환경이 지금과 같았다면 그 당시 붓다께서도 처음부터 좌선을 강행하셨을까, 아니면 스마트폰 명상을 개발하셨을까. 눈높이 설법의 천재였던 붓다께서 이 모바일 글쓰기 열풍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을 것이다.

글쓰기명상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모바일폰 글쓰기와 같은 짧고 단순한 몇 마디 말 나누기, 즉각적인 글쓰기,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이모티콘 같은 짧은 단어로 나눠주기. 글쓰기명상의 시작은 핀셋처럼 순간적인 자신의 마음을 포착하여 단어나 문장으로 추출하는 놀이 개념에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글쓰기명상을 수행할 준비가 완벽하다.

글쓰기명상의 원칙
글쓰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지사적(志士的) 글쓰기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의도가 깃든 글쓰기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이론이나 진화생물학같은 새로운 철학,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글쓰기다. 두 번째는 묘사적 글쓰기다. 이것은 글쓴이의 생각이나 개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마치 글로써 그림을 그리듯이 써나가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 몫이다. 대체로 소설들이 이런 유형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세 번째는 성찰적 글쓰기다. 이 글쓰기는 글로써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 작업이다.

글쓰기명상과 자기상담은 세 번째인 성찰적 글쓰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내적 영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감 없이 문자로 드러내자는 의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조차도 자신의 내면 소식을 찍어 누르거나 회피하거나 합리화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방어라고 표현한다.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는 이런 자기방어를 뚫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제안한다. 1978년부터 그는 다이닌 가타기리 선사에게서 명상 수행을 했는데, 스승은 그에게 말하곤 했다.

나탈리, 명상은 글을 쓰는 것과 똑같아요. 무엇하러 좌선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단련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인생에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저)

성찰 글쓰기의 다른 말이 곧 글쓰기명상과 자기상담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웅얼거리는 외마디, 생각, 감정,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드러내서 어쩌겠다는 것이냐.’면서 그런 일이 의미 없다고 여기거나 쓸모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구정물통 같은 내면을 드러내면 그 쓰레기더미와 악취는 어떡하란 말이냐.’ ‘내면이고 뭐고, 그런 게 어디 있기나 한 것이야? 있으면 어디 보여줘 봐.’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 뭐! 그런 게 돈을 줘, 밥을 줘?’

공감되는 반응이다. 한때 나도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글쓰기가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의 질을 바꿔주는 것도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은 50년 동안 글쓰기치료 작업을 해온 셰퍼드 코미나스(Sheppard B. Kominars) 박사가 글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변명을 약술한 내용이다.

내 상황을 더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을 종이에 옮기면 걱정이 더 심해질 것이므로.’ ‘글쓰기는 너무 지루하다. 그 시간에 차라리 밖에 나가서 맑은 공기를 즐기는 것이 이득이다.’ ‘종이에 불평이나 늘어놓으며 남의 탓을 하고 싶지 않다.’ ‘글쓰기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몽롱한 짓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죄의식을 계속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대동소이다.

글쓰기명상은 위와 같은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내부 윤리규정을 둔다. 첫째, 자신이 쓴 글을 타인에게 낭독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둘째, 두뇌를 통해서 만들어진 글이 아니라 손가락 끝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온 글을 최상품으로 여긴다. 셋째, 띄어쓰기나 맞춤법, 비속어, 욕설 따위 등을 자유로이 구사한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다. 넷째, 일단 쓰고 난 글은 완전 폐기를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 자신은 천하 최악의 글짓기를 할 권리를 타고났음을 잊지 않는다.

 

김성수 대표는

1993년 단편소설 욕실현대문학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명상학을 전공하고, 명상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불교대학원대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너의 날개가 수상하다〉 〈잡념이 보배다〉 〈다른 사람, 다른 명상(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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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입니다 2019-01-03 18:50:00
글쓰기 명상이란 새로운 글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했는데
멋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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