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사찰의 지역공동체 의무

자신의 복만을 구하러 다니던 신도들의 마음에서 어느 순간부터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자 연기공동체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또한 그 봉사활동이 사회와 연계되면 사찰이 지역공동체로 진입하는 순간이 된다.

불교 사회복지의 확장 일로
지역 사회 수요 파악 필요
공동체 의식으로 회향해야

신도들의 봉사활동은 대부분 법당 정리정돈, 대중공양 준비, 설거지, 차량통제 등 소소한 사찰 내부의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신도들은 점차 독거노인 지원, 청소년 가장(家長) 돕기, 보육원 봉사 등 사찰 외부의 대사회적 복지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봉사활동의 주체는 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사찰 내부의 일을 봉사할 것인지 아니면 사찰 외부의 사회복지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상당수의 사찰에서 주지 스님의 몫이다. 물론 신도들이 사찰 내부의 봉사활동도 하고 사찰 외부의 사회복지활동도 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주지 스님에 따라서는 자신의 사찰에만 치중하여 신도의 사찰 외부 봉사활동은 반대한 채 신도들을 사찰에 묶어두고 오로지 내부의 일만 시키고자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절 일도 바쁜데 외부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여기거나 ‘사찰 내부의 일을 하나 사찰 외부의 일을 하나 봉사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신도가 사찰 자체의 일만 하는 것과 대사회적인 일을 하는 것은 봉사로서 갖는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신도 단위의 차원에서는 신도가 봉사를 했다는 측면에서 양자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사찰 단위의 차원으로 바라보면, 사찰 자체의 일만 하는 것은 사찰의 자기이익적 행위에 머무르는 것이지만, 대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찰의 이타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즉 사찰의 일만 하는 것은 사찰의 자기성장만 추구하고 지역공동체의 동반성장은 도외시 하는 것이 된다.

신도들이 사찰 내부의 일을 함으로써 사찰의 성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유지하게 하면서도 사찰과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여야 한다. 신도의 봉사활동이 법회지원과 사찰업무보조 등에서 나아가 소외계층과 약자계층을 위한 사회복지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찰이 불교의 종교적 소명과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 소명이자 역할은 인간의 고통을 제거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불교 역시 다르지 않다. 이를 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은 수행을 하고 전법을 한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수행’을 한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깨달은 바를, 즉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중생들에게 전하고자 ‘전법’을 한 것이다. 이에 수행과 전법을 출가사문의 본분사로 삼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고통을 제거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활동이다. 이는 종교와 사회복지의 소명과 역할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는 한반도 전래 이후 사회복지를 실천하였다. <高麗史(고려사)>에 의하면,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제위보(濟危寶), 혜민국(惠民局) 등이 설립되어 궁한 자를 일으키는 진궁(賑窮), 재난으로부터 구해주는 구재(救災), 병을 고쳐주는 의료(醫療) 등의 사업을 행했는데, 그 중 구재 사업은 주로 사찰에서 승려들이 시행하였다. 불교사회복지가 실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심한 배불(排佛) 풍조 속에서도 세종4년(서기 1442년) 정월에 스님들이 병들고 다친 사람을 치료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도성(都城)의 동쪽 서쪽에 구료소(救療所) 네 곳을 설치하고, 혜민국 제조(惠民局提調) 한상덕(韓尙德)에게는 의원(醫員) 60명을 거느리고 대사(大師) 탄선(坦宣)에게는 승려 3백 명을 거느리고, 군인들의 병들고 다친 사람을 구료(救療)하도록 명하였다.

置救療所四處于都城東西, 命惠民局提調韓尙德率醫六十人, 大師坦宣率僧徒三百名, 救療軍人之疾病傷折者

이외에도 우리의 역사문헌에는 불교계의 사회복지 실천사례가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불교의 사회복지가 침체를 겪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회하면 사회복지가 연상될 정도로 우리사회에서 성장한 기독교계의 사회복지와 비교하면 불교계의 사회복지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불교계의 각 종단 차원에서 사회복지를 진흥하면서 현재는 불교계의 사회복지가 가톨릭을 추월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는 한국불교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여하는 바가 그 만큼 커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선 사찰에서는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사회복지를 실천하여야 하는가? 우선은 사찰이 사회복지를 하려면 사회복지관을 자체적으로 건립하여 직영하거나 그게 안 되면 위탁으로라도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의 직영과 위탁에는 적지 않은 자금뿐만 아니라 경영 노하우(know-how)가 있어야만 한다.

물론 사회복지시설을 직영하거나 위탁하는 것이 사찰의 사회복지 실천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자금과 경험이 없다고 하여 사찰이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사찰에서 신도들이 자원봉사할 수 있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해결된다. 비록 사찰에 사회복지시설이 없더라도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 할 수 있는 사회복지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는 노인 간병과 가사 지원, 노숙인 무료 급식, 푸드 뱅크(food bank)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노인 간병과 가사 지원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여러 가지 노인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인문제는 빈곤, 질병, 무위(無爲), 역할 상실로부터 고독사와 노인자살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노정되고 있다. 효를 제일 덕목으로 지켜온 우리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안타까울 정도이다. 종교는 전통적으로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왔으며, 불교는 효를 사회적으로 실천해왔다. 이에 사찰이 노인문제의 해결에 앞장 서는 것은 효를 사회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지역에 공동체의식을 함양시켜주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건강검진, 간병, 가사지원, 취업알선, 취미와 여가, 식사제공, 각종 교육, 목욕의 순으로 복지서비스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제일 우선순위인 건강검진은 고비용이 발생함으로 사찰에서 서비스를 시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외의 서비스들은 자원봉사조직을 통하여 실천할 수 있는 노인복지 서비스들이다.

노숙인 무료 급식은 노숙인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다. 노숙인 무료 급식을 하는 사찰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는 신도들이 노숙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에 양자 간에 장소나 시간을 달리하여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한다. 그리고 노숙인 무료 급식을 시행함에 있어서 단지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상담을 아우르는 것이 종교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만일 식사 제공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 초중등학교의 급식 후 남은 찬반 및 식료품을 무료로 지원해주는 지역의 ‘기초 푸드 뱅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신도의 자원봉사 일손이 부족하면 지역의 자원봉사센터, 새마을부녀회, 공공근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푸드 뱅크는 말 그대로 음식 나눔 은행이다. 초·중등학교 및 여타 기관과 단체의 잉여 음식을 취합하여 독거노인, 실직자 가정, 결식아동, 쪽방주민 등 소외 계층에게 음식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사찰에서 푸드 뱅크를 운영할 때는 음식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물의 이동과 보관을 신속히 하고, 냉동차와 냉동창고를 갖추어야 하고, 대형냉장고가 있어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도(道)와 시(市)의 사회복지협의회가 운영하는 광역 푸드 뱅크나 군(郡)과 구(區)의 단위 복지관이 운영하는 기초 푸드 뱅크와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음식을 무료로 제공받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는 소외계층이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푸드 뱅크보다는 푸드 마켓(food market)이 적합하다. 푸드 뱅크는 잉여식품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음식에 대한 이용자의 기호를 배려할 수 없음에 비하여 푸드 마켓은 잉여식품을 이용자가 기호에 따라 저가로 구입할 수 있다. 만일 푸드 뱅크나 푸드 마켓을 하기가 여의치 않은 사찰에서는 결식아동과 결식노인에게 도시락을 지원하는 사업을 고려할만 하다. 도시락 지원 사업은 지역구청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이 보다 용이하다.

이러한 사찰의 사회복지 실천이 지역친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사회복지 요구를 이해하고 수용하여야 한다. 사찰들이 전술한 노인 간병과 가사 지원, 노숙인 무료 급식, 푸드 뱅크와 푸드 마켓 이외에도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가출청소년, 가정폭력 피해자 등 지역의 여건에 맞는 지역친화적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마련과 실천을 위하여 고민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역사찰의 사회복지 실천은 곧 지역주민과의 관계 맺음이다. 이는 지역포교와 다르지 않다. 포교는 사람과의 관계 맺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그 관계 맺음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찰이 지역과 친화하는 것이며,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은 자체의 성장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돌아보고 이바지할 바를 찾아야 한다. 나아가 지역사회가 없다면 사찰도 없다는 지역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사찰의 성장을 지역사회에 회향하여야 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