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수족냉증

손발이 유난히 찬 사람들이 있다. 바쁘게 삶의 자국을 지어가는 손과 이를 따르는 발은 날씨가 추워지면 쉽게 차가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난히 손발이 차가워지는 증상인 ‘수족냉증’을 앓는 이들은 심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적당히 섞어서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결 나아졌지만 40대 이전의 나는 속이 냉해서 배앓이가 잦고 손발이 무척 찬 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항변은 이랬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손발이 찬 법이지요.” 정말 그럴까? 마음이 따뜻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느껴지려면 섬세하게 남을 배려하야 하고, 그런 사람일수록 예민하고 긴장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혈관이 긴장으로 인해 수축하고 순환이 잘 안 되어 손발이 차가워질 수 있으니 억지를 부린다면 맞는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체온은 어떻게 조절이 될까? 우리 몸의 체온을 조절하는 중추는 시상하부에 있는데, 그 중 체열을 발산시켜 온도를 낮추는 앞쪽의 중추와 체열을 생산하여 온도를 높이는 뒤쪽의 중추가 함께 조화를 이룬다. 가정의 난방 조절 장치처럼 이 체온조절 중추는 몸의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온도 변화 신호를 감지하여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온도를 느끼는 신경 수용체에는 차가움을 인지하는 ‘냉각수용체’와 뜨거움을 인지하는 ‘온각수용체’가 있다. 식히는 것이 중요한 가슴과 머리에는 온각수용체가 많다. 반면 몸에 가해지는 냉기를 확인하여 주의하도록 하는 냉각수용체는 손발에 많다. 특히 손과 얼굴에는 두 수용체가 모두 조밀하게 분포한다. 손과 얼굴이 쉬 벌게지고 창백해지는 이유는 민감하게 자극된 수용체에 반응하여 혈관이 수축하거나 확장하기 때문이다.

수족냉증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삼국 중에서는 일본이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그 다음이 우리나라이다. 우리나라 여성 네 명 중 한 명은 수족냉증을 앓고 있다. 차거나 습한 계절의 기간이 길수록 수족냉증이 더 심한 것으로 보인다. 수족냉증을 앓는 사람의 손발은 가을을 지나면서 기온이 내려가면 차츰 차가워진다. 더러는 창백해지고 땀에 젖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주색으로 변했다가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 이런 냉증에는 성별에 따른 발생 빈도의 차이가 있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몸에 분포하는 근육의 양이 적어 근육의 운동과 대사를 통해 체열을 생성하기가 어렵다. 또한 황체호르몬을 중심으로 한 여성호르몬의 주기적인 작용에 따른 체온변화가 있어 차가운 온도에 민감하므로 남자보다는 더 많이 수족냉증을 호소하게 된다.

자연환경에 따른 요인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조건 역시 수족냉증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름철의 과도한 냉방과 겨울철의 지나친 난방으로 인해 인체의 체온조절 기능이 약화되고,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및 불규칙적인 식사가 겹친 사람들이 많아 수족냉증으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먹는 것과 수족냉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사람의 몸은 음식이 섭취되기 전까지는 가급적 저장된 에너지를 분해하여 체온을 만드는 것을 자제한다. 음식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갈색지방세포 조직’에 저장된 연료를 태워 몸을 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에너지 방출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수족냉증 치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수족냉증을 앓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낮의 기온이 15℃ 이하로 떨어지는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증상을 느끼게 되지만 심한 경우에는 일 년 내내 손발이 차고 아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불편은 물론이고 대인관계에 있어 소극적이 될 수도 있다.

수족냉증이 있는 여성은 진맥의 순간부터 차가움이 와 닿는다. 이분들의 호소는 “손발이 차서 불편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증상들을 포함한다. 어깨와 목뒤 근육이 긴장성 수축을 지속한 탓에 뭉쳐 있고 아프며, 복부의 근육 역시 체온 생성을 위해 수축을 반복한 탓에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 결과로 아랫배가 늘 뻐근한 골반통이나 심한 월경통이 나타날 수 있다. 물 같은 냉대하가 많은 것도 그 탓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아
지나친 냉·난방도 원인
근육·유산소 운동 규칙적 식사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에너지 방출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수족냉증 치료의 기본이다.

 

가끔, 손과 발은 싸늘한데 오히려 얼굴 쪽으로 열이 나고 붉은 홍조를 띠는 분도 있다. 이것은 생리적인 열이 몸 전체로 고르게 퍼지지 못하고 허열(虛熱)만 상체로 치우친 탓이다. 상체와 하체, 속과 겉, 피부와 내장, 표면 온도와 심부 온도의 순환과 조화가 깨진 것이다. 이것의 근원에는 긴장과 불안 혹은 만성적인 피로가 흔히 존재한다. 노화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또 드물게 난치성 질환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손발이 차다고 다 임신이 잘 안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월경이 불규칙하면서 차거나 몸이 차가워지면서 월경통이 심해진 사람들은 수족냉증과 난임을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냉증이나 그에 동반된 통증과 같은 증상을 개선시키거나, 건강증진, 학업성취도의 향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족냉증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그저 체온을 높이는 약물만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 체질과 냉증에 수반된 다른 증상, 생활습관, 계절 등 환자의 특성과 환경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치료가 바람직하다.

근육이 부족하고 움직임이 적은 사람은 근력 운동을 하고 유산소 운동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규칙적인 식사는 기본이다. 더하여 한약과 침 뜸 역시 중요한 치료이다. 아랫배에 어혈(瘀血)이 뭉쳐 돌지 못하는 경우에는 한의약 치료를 통해 어혈을 풀어야 하고, 냉증과 욕구가 정체되었다면 경락을 소통시켜야 하며, 비만하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하여 담음(痰飮)과 지방이 순환을 막았다면 담음과 체지방을 줄여주어야 한다. 기혈(氣血)이 약해졌거나 양기(陽氣)가 부족한 경우에는 이들을 보하는 약을 투여한다. 그리하여 차가운 겨울 지친 삶에서도 누군가의 차가운 손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자신의 삶에 주어진 역할을 건강하고 훈훈하게 이루는 이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