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격절록(擊節錄)을 연재하며

〈격절록(擊節錄)〉은 원오(成悟) 극근(克勤) 선사의 공안집(公案集)으로 설두(雪竇) 중현(重顯)의 백칙(百則) 염고(拈古)에 착어(着語)와 평창(評唱)을 한 것이다. 원 제목은 〈불과격절록(佛果擊節錄)〉이며, 〈불과원오격절록(佛果成悟擊節錄)〉이라고도 불린다. 앞으로 연재할 본서는 〈만신속장경(卍新續藏經)〉 67 책冊에 수록된 것으로 중화전자불전협회(中華電子佛典協會)에서 2014년도에 전산화한 것이다.

본서는 종문 제 1서(宗門第一書)로 알려진 〈벽암록(碧巖錄)〉과 구성과 형식면에서 거의 동일하다. 다만 벽암록에 보이는 수시(垂示, 요점을 제시하는 서문)가 없을 뿐이다. 또한 벽암록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중심으로 선별한 고칙(古則) 백 가지에 송(頌)을 한 〈설두송고(雪竇頌古)〉를 다루고 있는 것에 반해, 본서는 〈설두염고(雪竇拈古)〉 - 일백 고칙에 염(拈, 서술 형태의 비평)을 한 것- 를 다루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본서는 100칙 공안과 이에 대한 설두 선사의 염, 그리고 원오 선사의 착어(着語, 촌평)와 평창(評唱, 해설과 비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격적인 〈격절록〉의 소개에 앞서 원오 선사와 설두 선사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설두 중현(980~1052)은 송나라 운문종(雲門宗)의 승려로 자는 은지(隱之)이고,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출가하여 인선(仁銑)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지문(智門) 광조(光祚) 선사의 법을 잇고, 동정(洞庭)의 취봉사(翠微寺)와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와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 등에 주석하면서 종풍을 진작하였다. 세수 73세, 법랍 50년으로 시호는 명각대사(明覺大師)이다. 시문이 뛰어났으며 〈설두송고〉와 〈설두염고〉 그리고 〈조영집(祖英集)〉과 〈어록(語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다음으로 원오 극근(1063~1135)은 송나라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枝派)의 승려로 자는 무착(無着)이고, 남송의 고종으로부터는 원오(成悟), 북송의 휘종(徽宗)으로부터는 불과(佛果)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또한 입멸 후 받은 시호는 진각(眞覺)이다. 묘적사(妙寂寺) 자성(自省) 화상(和尙)에게 출가해서 문조(文照) 법사(法師)에게 삼장(三藏)을 배우고, 민행(敏行) 법사에게 〈능엄경(楞嚴經)〉을 전수받았다.

이후 오조(五祖) 법연(法演) 선사의 법을 이었는데, 당시 불감혜근(佛鑑慧懃, 1059~1117), 불안청원(佛眼淸遠 1067~1120)과 더불어 ‘총림삼걸(叢林三傑)’, ‘법연 문하의 2근1원(演門之二勤一遠)’, ‘법연 문하의 삼불(演門三佛)’ 등으로 세상에 불렸다.

육조사(六祖寺)와 협산사(夾山寺)를 비롯해, 도림사(道林寺)·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만수사(萬壽寺)·용유사(龍游寺)·진여선원(廬如禪院) 등 여러 사찰에서 주석하면서 법도(法道)를 떨쳤다. 특히 소각사·협산사(영천원)·도림사에서 〈벽암록〉 강의가 세 차례 이루어졌다. 다만 〈격절록〉에 대한 강의가 어디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알 수가 없다. 세수는 73세이고, 문하에 호구소륭(虎丘紹隆, 1077~1136)과 간화선의 주창자 대혜종고(大慧宗苑, 1089~1163) 등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상기 〈벽암록〉과 〈격절록〉, 그리고 〈원오심요(圓悟心要)〉와 〈어록(語錄)〉 등이 있다.

격절(擊節)이란 ‘핵심을 찌른다’는 뜻으로, 본서는 말 그대로 화두 타파를 위한 정곡(正鵠)의 말씀이다. 또한 ‘격절’이라는 말에 박자를 맞춘다는 뜻이 있듯, 원오 선사가 설두 선사에게 박자를 맞춰 응대한 화답서이기도 하다.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칭찬한다는 격절탄상(擊節嘆賞)이라는 말처럼 본서가 화두 공부하는 모든 분들의 지남(指南)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해년(己亥年) 벽두에 조심스럽게 그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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