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불편’이 시방세계 바꾼다

금륜사 주지 본각 스님이 동지법회가 끝난 뒤 대중에게 팥죽을 나눠주며 팥죽용기에 적힌 ‘금륜사 회수용’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1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보 1호 숭례문, 국산차 1호 포니, 국내 최초로 우주에 간 위성 우리별 1호까지.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과 단체, 물건에 1호가 붙지만 현재 불교환경운동과 관련해 가장 의미 있는 1호는 바로 녹색사찰 1. 원불교 햇빛교당, 개신교 녹색교회에 비하면 아직 몇 안 되는 녹색사찰이지만 이 사찰들이 신도들과 함께하는 환경운동은 소소하면서도 불편을 즐길 수 있는 뜻 깊은 가치를 담고 있다. 지난여름, 불교환경연대와의 협약을 통해 최초의 ‘1회용품 안 쓰는 녹색사찰로 지정된 경기도 고양 금륜사(주지 본각)를 살펴봤다.

구랍 22, 동지법회로 전국사찰이 팥죽 준비에 여념 없던 날 금륜사를 방문했다. 금륜사는 지난 78일 불교환경연대 녹색사찰 1호로 선정됐다. 평소 사찰 행사에서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불교환경연대의 ‘1회용품 안 쓰는 녹색사찰협약으로 이어진 것이다. 금륜사는 앞서 부처님오신날 신도들에게 나눠줄 떡을 비닐 대신 뻥튀기 과자 사이에 담아주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공양간에서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팥죽을 담아내는 신도들.

환경 맑아야 생명도 행복
과연 동지법회는 어떨까. 점심공양을 앞두고 금륜사 공양간부터 들여다봤다. 공양간에는 신도들이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이른 아침부터 준비한 팥죽이 여러 대야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법회가 끝난 뒤 대중에게 나눠줄 팥죽 담기로 분주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팥죽을 담는 용기였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반찬통과 같은 것으로 일회용이 아닌 얼마든지 재사용 가능한 통이었다.

팥죽을 담던 한 신도에게 일회용기는 없는지 묻자 아직까지 모든 용기를 교체하진 못했지만 내년에는 전부 새 것으로 바꿀 예정이다. 지금은 반찬통처럼 계속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와 다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함께 쓰고 있다용기에 금륜사 회수용을 적어 집에 가져간 신도들이 다시 반납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동지법회가 끝나고 대중은 각각 용기에 담긴 팥죽을 비닐도 없이 자연스레 손에 들거나 가방에 넣었다. 많은 사찰이 행사 이후 신도들에게 물건을 나눠줄 때 으레 비닐을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지 본각 스님에게 사부대중이 함께 1회용품을 쓰지 않게 된 배경을 물었다.

어느 날 사찰에서 나온 쓰레기를 살펴보니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것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경전에서는 우리 생명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의지하는 환경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말이죠.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야할 환경이 맑으면 그곳에 머무는 생명도 자연스레 행복해지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경내에서 종이컵부터 없애고 법문시간마다, 1회용품이 눈에 띌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본각 스님은 사찰이 환경지킴이로 거듭나기 위해 종이컵, 비닐, 페트병 등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장했다. 다행히 신도들은 이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한 발 더 나아가 일회용품 대체방안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앞서 언급한 뻥튀기 과자로 이어진 셈이다. 이후 성지순례를 갈 때는 버스에 페트병 대신 스테인리스 대형물통을 싣고 이동하고, 얼마 전 국수잔치서도 스테인리스 그릇과 수저 등을 썼다. 일회용품에 비해 설거지와 물품관리 등 신경 쓸 일이 늘어나지만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노력이다.

이외에도 금륜사는 신도들에게 평소 빈 통을 하나씩 들고 사찰에 방문하라고 당부한다. 사찰 특성상 떡이 많아 이를 신도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인데 여기에도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다. 금륜사는 빈 통을 미처 가져오지 못한 신도들에게는 1000원을 받고 그릇을 빌려준다. 이 돈은 1년간 모아 어린이청소년법회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환경운동을 실천했을 때 주는 환경장학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활동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방편이 된다.

물론 신도들은 빈 통을 가져왔다가 떡이 없어 아무것도 담아갈 수 없는 상황도 겪는다. 이럴 때 본각 스님은 떡을 가져갈 수 있으면 얻어가는 게 있어서 좋고, 무엇도 담지 못하면 내 번뇌망상을 없애 깨끗하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금륜사 1층 북카페에는 종이컵이 없다. 신도들은 머그컵을 사용하고 설거지한다.

사찰활동, 가정으로 이어져
금륜사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물품을 다시 쓰는 데도 앞장선다. 대표적인 것이 종이쇼핑백 수거. 신도들에게 가정에서 쓰다 남은 쇼핑백을 사찰로 가져오게 하고, 사찰에서 물건을 나눠줄 때 활용한다. 이 같은 활동은 사찰명이 적힌 쇼핑백을 기존보다 적게 제작하는 결과를 낳아 사찰재정에 도움이 되고, 사찰과 가정을 환경운동으로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게 했다.

신도들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환경운동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가정에서도 일회용품을 멀리하게 됐다고 입을 모아 밝혔다.

이순희(보덕행) 신도회장은 주지 스님께서 오래 전부터 불자들이 환경을 중시하고, 지구를 깨끗이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다보니 사찰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고 했을 때 받아들이기도 어렵지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윤창기(혜공) 거사는 금륜사가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사찰이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은 있다. 그래도 어른들부터 솔선수범 해주셔서 대부분의 신도가 뜻을 모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이전까지 개인적으로 운전하면서 일회용컵을 많이 썼는데 요즘에는 쓰지 않는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젠 적응돼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역시 주지 본각 스님은 법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신도들에게 팥죽을 전달하며 용기에 적힌 금륜사 회수용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언제 어디서나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환경보살로 거듭나라는 당부다. 스님의 말에 가슴에 새기겠다고 답하는 금륜사 대중의 서원이 하나의 사찰이 아닌 전체 불교계로 전해지길 바란다.

 

환경정토 일구는 풀뿌리 운동

사찰·단체 실천할 환경운동 무엇 있나

길상사 자판기와 설거지
길상사는 2009년 자판기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없앴다. 대신 자판기 옆에 개수대와 자외선 소독기를 설치하고, 스테인리스컵을 마련했다. 종이컵을 쓰지 않으면서 각자 사용한 컵은 스스로 설거지해 환경을 돌보자는 취지다. 이 운동은 법정 스님의 뜻을 따라 조직된 불교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가 주도했다. 다만 겨울에는 수도 동파 문제가 발생해 봄~가을에만 활용된다.

길상사는 이외에도 북카페 다라니다원에 일회용품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를 찾는 이들은 커피를 테이크아웃(take-out) 할 수 없다. 또한 불자들은 헌옷을 리폼해 가방·앞치마·조끼 등을 만들어 녹색장터를 열고, 수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한마음선원 ‘EM의 생활화
한마음선원은 2000년대 초부터 신도들과 함께 비닐 대신 시장바구니 사용하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중시 포스터를 직접 제작해 전국지원에 배부, 불자들이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특히 EM(Effective Microorganism)을 활용한 쌀뜨물 발효액으로 공양간 설거지를 하는 한편, 매월 1·3주 일요법회에 대중이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한마음선원 EM활동이 알려지면서 학교와 동사무소 등 다양한 기관단체서 직접 제작하는 방법을 문의하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어린이법회서도 지속적으로 환경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토회 환경활동 기본소양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는 환경활동을 정토행자의 기본소양으로 본다. 이미 오래 전부터 빈그릇운동을 성황리에 전개하고, 쓰레기제로 운동과 지렁이를 이용한 음식물 줄이기 등 다양한 방법의 환경운동을 펼쳐왔다. 1990년부터 환경운동을 전문활동으로 전환한 뒤, 19946월 환경이념 보급과 실천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한국불교교육원을 구성했다. 이후 시민들의 생태교육과 환경활동가 워크숍을 통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소박한 삶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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