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눔·포교…종무행정 ‘달인’

조계종 원로의원인 일면 스님은 ‘원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도 왕성한 현역이다. 취재 전 건넨 명함에는 광동학원, 생명나눔실천본부, 해인동문장학회 등 세 단체 이사장이라고 찍혀 있다. 그 이전에는 조계종 교육원장과 호계원장, 조계종 초대 군종교구장,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등을 지냈다. 직책만 맡으면 ‘올인’으로 확실한 성과를 일궈 내기에 많은 소임이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면 스님은 일단 주어진 일에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전방위적인 포교 활동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다. 궁금해졌다. 스님의 크나큰 원력과 자비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그래서 기해년 새해를 앞둔 구랍 21일 일면 스님이 주석중인 남양주 불암사 동축당(東竺堂)을 찾았다. 〈편집자주〉
 

일면 스님은… 1947년 경북 경주서 태어나 해인사에서 명허(明虛)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7년을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8년 해인강원을 마치고 동국대 종비생으로 입학했다. 총무원 사회부장, 중앙종회의원,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장과 호계원장, 초대 군종교구장, 동국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광동학원 이사장과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해인동문장학회 이사장, 조계종 원로의원 등을 맡고 있다. 

뇌사자 장기 받고 죽음 문턱서 소생
‘생명나눔’은 평생 실천 회향 할 ‘業’
“새해, 자신 항상 돌아보는 삶 살길” 

 

▲ 2005년부터 13년간 헌신적으로 이끌고 있는 생명나눔실천본부의 활동이 제일 궁금합니다.

- 제 자신이 장기기증 수혜자로서 그 은혜를 회향하기 위해 생명나눔 확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지껏 맡은 소임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개신교 등 다른 종교에 비해 늦게 출발했지만 매년 성장률 만큼은 가장 앞섭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올해도 조혈모세포 희망등록사업, 장기기증 희망등록 사업 등 장기기증과 직접 관련된 사업뿐만 아니라 당장 의료비 지원이 절실한 환우를 돕는 치료비 전달, 입원 환자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음악회, 시민 걷기대회, 유명 인사를 활용한 홍보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습니다.
 

▲ 그동안 생명나눔이 일군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도 소개주시지요?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혈모 세포 희망 등록 사업 목표는 100% 달성했습니다. 매년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릴레이 캠페인 참가 학교 수도 2016년 11개서 2017년 18개로, 올해에는 20개를 넘겼습니다. 특히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6천여 명(누계 6만3857명)을 넘어섰으며, 3천여 명이 후원에 새로 동참했습니다. 특히 지난 9월 29일 논산 육군훈련소서 제가 훈련병 3000여 명에게 수계 했는데, 거의 모두 장기 기증을 서약했습니다. 큰 감동이었죠. 이외에도 60여 명 소아암, 난치병 환자가 생명나눔실천본부로부터 총 3억원의 치료비 지원 혜택을 받았죠.
 

▲ 생명나눔실천본부 하면 장기 기증 이식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펼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요?  

-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이달의 환우’를 선정해 치료비를 전달하는 환자 치료비 지원사업을 합니다. 올해 역시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전달했죠.

가수 수지씨가 자신의 25번째 생일을 맞아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10월 19일 생명나눔실천본부에 1억원을 쾌척했는데, 이런 기부금들로 소아암과 백혈병 환자를 위한 치료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지씨는 지난 2014년 불교계 유일 장기기증 등록기관인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조직기증 희망등록을 하며 난치병 환자들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온 바 있습니다.
 

▲ 조혈모세포 기증사업은 불교계서는 좀 생소한데, 어떤 사업인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조혈모세포 기증은 조직적합성항원형(HLA)이 일치해야 가능한데, 그 확률은 부모와는 5%, 형제간에도 25%에 불과합니다. 타인과 일치할 확률은 수천에서 수만 분의 1로 낮습니다. 기증희망 등록자가 많아져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조혈모 사업팀은 아주 많은 희망자를 모집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입니다. 나아가 희망 등록자가 실제 기증까지 이어질 수 있게 다양한 사후관리를 합니다. 그런데도 기증희망 등록자 중 절반이 기증 동의 순간에 여러 사유로 의사를 번복하죠. 그래서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도록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조혈모세포기증 희망등록자 수는 각 3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 급증하는 자살문제는 우리 사회가 신속히 해결해야 할 큰 과제중 하나입니다. 생명나눔 실천본부에서도 자살예방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시는데, 이에 대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입을 정도로 우리 청소년들은 학업스트레스 및 부모와의 갈등 등 많은 고민을 안고 삽니다. 이들에게 밝고 따뜻한 심성을 심어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생명나눔 직원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 강의와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청년들은 취업난ㆍ경제난 등 이중고를 겪고 있죠.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회안전망 제도 마련도 시급하죠.
 

▲ 스님께서 이렇게 생명나눔실천 운동에 진력하시는 것도, 18년 전 죽음의 문턱서 살아 돌아 온 경험이 크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엔 절망적이셨을 텐데요. 그 때의 상황을 들려 주시지요.

- 저의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의사로부터 간경화 진단을 받았죠. 1년에 16차례 입ㆍ퇴원을 할 정도로 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전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급기야 말기암으로 악화됐습니다. 육체적 고통도 컸지만 정신적 고통이 더 컸습니다. 우울증도 심해졌어요. ‘일체유심조’라고 했지만 40여 년 수행 생활을 한 나로서도 이 고통은 견뎌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병원서 이불 덮고 펑펑 울기도 많이 했어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부처님 앞에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죠. 살려주시면 앞으로 부처님 시봉 잘 하겠다고요.

불은으로 네 번의 간이식 수술 시도 끝에 기적처럼 뇌사자와 인연이 돼 새 삶을 찾게 됐습니다. 2000년 1월, 20시간의 수술과 3일간의 혼수상태 끝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때부터 제게는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하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 것입니다. 요즘도 저를 위해 장기 기증한 22살 청년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매일 올립니다.
 

▲ 수행승으로 소문난 은사 명허 스님의 별명은 ‘호랑이’였다고 들었습니다. 명허 스님은 스님에게 “선방 가서 수행승이 돼 한국 불교를 일으켜 보라”고 권했지만, 스님은 당돌하게 불교 행정 전문가가 되겠다고 하셨다는데 사실인가요?

- 예, 맞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가 당돌했죠. 은사 스님은 늘 참선해서 불교를 일으켜 보라고  권했죠. 하지만 제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싶었죠. 스님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행정을 뒷받침하는 것도 참선 공부 못지 않게 앞으로의 시대에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당시에 했습니다. 은사 스님은 보기만 하면 계속 선방가라고 경책했지만, 제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참선이 아닌 행정승으로도 도인이 나와야 앞으로의 한국 불교가 발전할 수 있다고 수차례 설득해 은사 스님으로부터 기어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웃음)
 

▲ 얼마 안 있으면 기해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불자들에게 평소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으면 덕담 한마디 해주시죠.

- 저는 평소에 ‘한쪽 모퉁이를 비추면 천지가 다 밝아진다’는 〈법화경〉에 나오는 말을 좋아합니다. 홀로 천지를 모두 밝게 하려는 마음가짐보다는 내가 한 분야를 비추겠다는 각오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서원이죠. 새해에 우리 불자들은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회광반조를 나는 항상 나를 돌이켜 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추스리면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새해에 우리 불자들 모두 부처님처럼 바르게 살길 발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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