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마음 타령’ 불러보자
구성진 ‘마음 타령’ 불러보자
  •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18.12.3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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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隨想-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그림 김흥인
그림 김흥인

‘항상 웃으시는 이.’ 이를 부처님 당시 사람들이 부처님을 부르던 하나의 칭호라는 것을 아는 불자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등으로 이어지는 부처님의 십대 명호보다 얼마나 정감있고 친숙한 이름인가? 이런 이름으로 부처님을 부르면 훨씬 부처님을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실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딱딱한 귀의의 말보다 “항상 웃으시는 부처님을 본받고 배우겠습니다”라는 말로 우리 가까이 부처님을 모실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항상 웃는 분’ 부처님의 칭호
언제나 웃는 부처님을 본받아
스스로 항상 웃는 자성불 되길

개인 수행에 머물지만 말고
조금 더 나아진 세상 만들자
그것이 ‘불국토 건설’의 시작


우리 불자들에게 부처님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 되어버린 듯 하다. 실제로 필자가 어떤 대형 사찰의 법회에 강설을 맡았을 때, “부처님 되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으로 그 법석에 있던 분들 가운데 1/10 정도만 손을 들었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 법회 끝날 때마다 “성불하십시오” 또는 “성불합시다”로 인사를 하는 분들이었는데…. 부처가 되라는 것은 남에게만 권하고 자신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잡숫고 계신 분들이었던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런 물음을 던졌던 필자도 부처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뭔가 머뭇거리던 체험을 했고, 그 원인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부처님 되고자 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 욕망에 뿌리한 끈질긴 미련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앞에 이야기한 대로 부처님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라는 관념 때문이었다. 그것이 필자가 겪었고, 또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는 부처님과 나와의 거리였다.

아직도 그 거리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 나름으로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항상 웃으시는 이’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멀리 두고 귀의하기보다는 나의 삶 가까이에 모시고 본받으려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불자이면서도 부처님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방법을 권해보기도 한다.

새롭게 열리는 한 해를 맞으면서 올해는 정말로 더더욱 ‘언제나 웃는 이’의 모습을 내게서 펼쳐낼 수 있기를 새삼 기원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했던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나의 성숙하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고, 보다 크고 올바른 목적을 지향하는 나의 서원이 굳건하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화내고 성질피우고 우울해하던 때를 뒤돌아보면 그 바탕에는 그러한 자책이 뒤따르곤 했었다.

결국 “올해는 조금이라도 더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는 삶을 살기를”하는 다짐 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올해는 어떻게 작년보다 좀 더 나울 수 있을까”가 아닐 수 없다.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새로운 한 해라는 단위를 설정하고, 그 속에 새로운 다짐을 해 갈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그런 점에서 늘 상투적인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한 해 한 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 불자들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의 영원한 목표인 사홍서원을 조금은 자잘한 시간과 공간의 단위로 나누어 세워보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이 부처님의 모습을 우리 삶 속에 바로 투영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또한 사홍서원과 같은 큰 서원이 우리가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득한 서원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언감생심, 내가 어찌 모든 중생을 다 건진단 말인가. 번뇌를 다 끊고, 불법을 다 배우고, 불도를 다 이루는 아득한 길. 늘 입으로 외면서도 실제로 걷으려 마음을 먹으면 그 아득함에 기가 질려버리는 불자는 없을까.

필자 자신도 그런 느낌에 ‘입으로만 불자’로 지낸 시절이 얼마나 길었던가? 지금도 여전히 그 처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첫 걸음을, 바로 그 아득한 사홍서원을 ‘오늘, 여기’의 서원으로 구체화하는 길뿐이라고 말할 수는 있게 됐다.

모든 중생을 생각하기 전에 내 곁에 있는, 나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생각하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바로 모든 중생에게로 나가는 첫걸음 아니겠는가.

모든 번뇌를 끊는 일, 그것은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번뇌를,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올바로 바라보고 극복해나가는 길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불법(佛法)을 다 배우겠다는 서원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을 경전 등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있는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정말 목표를 정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계획을 세워보자. 또한 나를 향상시키는 수행방법을 정하고 꾸준히 삶 속에서 수행을 이어나가는 자세를 가져보자. 늘 반복되는 새해의 다짐일 수 있지만, 작년과 올해의 상황이 다르기에 그 구체적인 내용 또한 다를 수 있다.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점검하고 반성하면서, 올해의 사홍서원을 세워나간다면 나의 삶 속에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닮아가는 일도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 모든 불자들의 바람들과 이어져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꿔 나가는 길, 그것이 바로 불국토의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과 서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국토 건설’이라는 목표도 너무도 크고 아득하기만 하여 구호에 그치는 목표가 되고 마는 것 같다. 그것도 똑같은 방법으로 구체화시켜야 되지 않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 그것을 우리들의 힘으로 이루어 나가는 그 길이 바로 불국토 건설의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가 개인 수행에 머무르지 않고 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힘 있는 종교가 되어 가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도 오랫동안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이제 조금 거기서 벗어나고 생각하고 있는, ‘마음 타령’에 멍든 불교를 극복할 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바로 세상이고, 거꾸로 세상이 바로 마음이다. 모든 것을 마음에서 해결하려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마음 타령’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닦는 일이라는 역동적인 구조에 설 때 바로 올바른 ‘마음 타령’, 구성지고 멋들어진 ‘마음 타령’이 나올 것이다. 올해는 나와 우리 불자들이 함께 이 구성지고 멋들어진 ‘마음 타령’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선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나와 우리를 괴롭게 하는 요소가 하나라도 줄어든 세상, 그 세상을 함께 꿈꾸어 보자. 우리 불자들이 모두 부처님 법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세상을 그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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