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도피안사 불교음악 토크쇼
1992년 보현행원송 초연 주역들
송암ㆍ박범훈ㆍ손진책ㆍ국수호

“그 날의 무대는 천상세계”
광덕 스님 한 걸음에 무대 올라
“그 날의 감동 잊을 수 없어”

“보형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 1992년 4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한국불교음악사에 대작불사로 남은 뜻깊은 공연이 있었다. 교성곡 ‘보현행원송’이다. 그 날의 공연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만큼 감동으로 기억되는 공연이다. 2회 공연의 좌석은 모두 만석이었다. 아니 만석을 넘어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불자들이 계단까지 채워 앉았을 정도였다.

구랍 22일 안성 도피안사에서 열린 불교음악토크쇼에서 작곡가 박범훈이 ‘보현행원송’ 초연과 관련한 인연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27년 전 감동적인 대공연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모여 그날을 다시 회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초연을 총 지휘했던 안성 도피안사 주지 송암 스님은 구랍 22일 도피안사 대웅전에서 동지법회 및 송년불교음악 토크쇼 ‘보현행원송 대담’을 개최했다.

토크쇼에는 당시의 공연을 이끌었던 송암 스님, 보현행원송 전곡을 작곡하고 악단과 합창단의 지휘를 맡았던 작곡가 박범훈(불교음악원 원장), 공연을 총 연출했던 연출가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 무용 안무를 담당했던 무용가 국수호(디딤무용단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으며, 김재영 법사, 서명원 신부 등 사부대중 3백여 명이 법회와 토크쇼에 함께 했다. 토크쇼는 송암 스님이 주역들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때 그 무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천상세계였죠. 500여 명의 합창단과 150여 명의 무용단이 어우러진 보현행원의 무대는 천상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어요. 그리고 보현행원송이 만들어지고 공연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저희가 한 것이 아니라 모두 부처님이 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처님께서 박범훈의 눈과 손을 빌려 곡을 쓰고 합창단의 입을 빌려 노래하고 무용단의 몸을 빌려 춤을 추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시의 공연을 총 지휘했던 송암 스님은 당시를 그렇게 회고했다.

‘보현행원송’은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광덕 스님이 보현행원품을 4ㆍ4조의 시로 옮긴 가사에 작곡가 박범훈이 곡을 붙인 것으로, 국악관현악과 합창 그리고 독창이 함께 하는 교성곡이다. 3개월의 정리와 준비를 거쳐 만들어진 곡은 60여 명의 국악관현악단이 연주했고, 500여 명의 합창단과 150여 명의 무용단이 함께 했다. 한국불교음악 역사상 무대공연으로서는 처음 시도된 대합창곡이라 할 수 있다.

“두 시간 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은 보현행원송으로 터져나갔습니다. 연주 마지막, 지휘봉을 멈췄을 때 들려왔던 환호의 소리는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작곡과 지휘를 맡았던 박범훈 원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광덕 스님으로부터 가사집을 전해 받은 박 원장은 가사집을 싸들고 지리산 불락사로 들어갔다. 겨울이었다. 건반 하나 달랑 들고 올라간 움막은 추웠다. 손과 발이 힘겨워서였을까. 곡은 애를 태웠지만 악보를 채운 노래는 감동을 품고 태어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다시 합창단의 불심과 만난다. 불광사 신도합창단 단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현행원송을 화두로 정진 또 정진했다. 노래를 했다기보다는 독경을 했다. 악보가 필요 없었다. 그렇게 한국불교음악사에 굵은 글씨로 남은 보현행원송은 그렇게 시작되고 만들어져 무대에 올랐다.

공연을 끝낸 지휘자 박범훈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객석 앞줄의 광덕 스님을 무대로 모시려고 했다. 당시 광덕 스님은 거동이 여의치 못했다. 박 원장과 스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광덕 스님은 혼자 한 걸음에 무대 위로 올라왔다. 공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대는 또 한 번 감동으로 출렁거렸다. 객석은 난리 그 자체였다. 무대에 오른 광덕 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법문까지 했다.

“저 역시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불교음악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운 보현행원송 공연은 저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경전을 통해서만 전할 일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서도 알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공연의 총 연출을 맡았던 손진책 대표 역시 그날을 ‘감동’이라는 말로 회상했다. 그리고 150여 명의 무용단을 이끌었던 국수호 대표도 대작불사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그 날의 공연은 저 역시도 남달랐던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으로 부처님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광덕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된 불사는 많은 대중의 불심을 키우고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는 전법의 현장으로 남았다.

“불교음악은 부처님의 말씀을 소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불보살인 것입니다. 그래서 노랫말 하나하나 허투루 불러선 안 되는 것입니다.”

박 원장이 보현행원송의 마지막 부분을 선창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그리고 사부대중이 다시 박 원장의 보현행원을 받았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당시 합창단 단원으로 참여했던 여성 불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벅차게 보현행원을 불렀다. 법당은 27년 전의 무대로 돌아가 보현행원으로 가득 찼다.

토크쇼에 참석한 사부대중이 보현행원송을 부르고 있다.
송암 스님은 ‘보현행원송’ 초연 주역들에게 공로패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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