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역사 복원위해 도난 불화 환수를

사진 왼쪽부터 현재 도난된 영월 보덕사의 불화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 신중도. 이들 불화 중에는 화기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들을 찾아야 잃어버린 사찰 역사 복원이 가능하다.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영월은 남서쪽으로는 제천·단양과 접하여 충청북도와 남동쪽으로는 영주·봉화와 맞닿아 경상북도와 도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동쪽은 태백산맥, 서북쪽은 차령산맥, 남쪽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있어 고산지대와 영월읍을 중심으로 하는 500m 이하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한 곳이라 1698년에 노산군을 단종으로, 능을 장릉으로 추존함에 따라 영월군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사찰은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보덕사(報德寺), 금몽암(禁夢庵)이 있다.

단종 장릉 원찰 태백산 보덕사
승려 100명 주석했던 영월 대찰
시왕도·신중도·영산회상도 도난
화기 내용 파악 못한 불화 있어
도난 성보 찾아야 사찰史 복원


이 가운데 영월을 대표하는 사찰은 영월읍 발본산 자락에 위치한 보덕사이다. 이 사찰은 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단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한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보덕사는 66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지덕사(旨德寺)라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714년 혜각 선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1161년에 운허 스님이 중창하고, 이후 설허 선사와 원경 국사가 극락보전·염불당·고법당·침운루 등을 중건하였다. 1457년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로 유배되자 사찰 이름을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하였다. 1705년에 한의 스님과 천밀 스님이 대금당(大金堂)을 건립하고, 1726년 6월에 단종 장릉(莊陵)의 원찰(願刹)로 지정되면서 태백산 보덕사로 고쳐 불렀다.

1854년에 화재로 극락보전, 종각, 내원암 등이 소실되어 1868년에 응봉 스님과 보해 스님이 중건하였다. 이 사찰은 사전(寺田)이 1,000석에 이르렀고, 승려가 100명 이상 거주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대현전·목우실·산신각·심검당·칠성각·사성각 등이다.

20세기 전반 보덕사에 소장된 불교문화재는 1920년을 전후해서 작성된 재산대장(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1932년 1월 22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된 귀중품 대장이 남아있다. 우선 1920년 전후에 작성된 재산대장에 의하면 보덕사에 봉안된 성보문화재는 64건 283점으로, 불상 14건 41점, 불화 13건 19점, 나머지 공예와 경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20년대 재산대장에는 성보물들이 극락전·산영각·칠성전·사성전·대향각·상상보로 나뉘어 적혀 있어 운영되었던 전각의 현황을 알 수 있다.

현재 보덕사에서 문화재청과 조계종 총무원으로 도난 신고를 한 문화재는 1786년에 조성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1990년 8월 6일 도난), 영산회상도(1992년 2월 15일 도난)이다.(<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 조계종, 2016)

보덕사에서 도난된 영산회상도는 중심 전각인 극락전에 후불도로 걸려 있던 불화로, 재산대장에 영산법회탱(靈山法會幀)으로 적혀 있다. 이 불화는 세로 305cm·가로 286cm, 화면 중앙에 자리한 석가불은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오른손을 항마촉지인하면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을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은 상태라 맨살이 노출된 편단우견으로 걸치고 있다. 화면 하단에 보살상과 사천왕을, 중단에 좌우에 보살상을, 상단에 불제자인 아라한과 신중들을 꽉 차게 배치했다. 영산회상도는 세련된 필치로 각 존상의 얼굴과 신체, 문양 등을 표현하고,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여 18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불화의 설채법을 따르고 있다. 

지장시왕도는 세로 200cm, 가로 198cm로, 재산대장에 명부시왕탱 또는 시왕탱으로 언급되어 극락보전의 중단에 모셨던 불화로 추정된다.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은 높은 대좌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비구형의 민머리에 양손을 가슴 쪽으로 든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다. 지장보살을 향하여 서 있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합장을 하고, 시왕들은 홀이나 경전을 들고 원유관, 책관 등을 쓰고 있다. 나머지 화면에는 동자, 판관, 사자, 옥졸 등의 명부 권속이 빠짐없이 그려져 있고, 상단에 6대 보살을 그린 특이한 배치를 하였다. 설채법은 적색과 녹색 등이 주조색을 이루고, 백색이나 청색 등을 보조색으로 사용하여 극락전 영산회상도와 동시에 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지장시왕도와 같이 도난당한 신중도는 세로 120cm, 가로 160cm의 직사각형 화면에 채색을 한 불화로, 화면 상단의 병풍을 배경으로 향우측에 합장을 한 제석천(帝釋天)을 중심으로 권속과 위태천(韋?天)을 큼직하게 그린 단순한 구도이다. 제석천과 위태천의 둥글고 풍만한 인상에 비해 권속들의 개성 있는 인물 표현이 대조적이다. 화면의 설채법(設彩法)는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청색을 보조색으로 활용하여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와 같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보덕사는 사적기가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사찰의 연혁을 알 수 없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이나 불화에 적힌 화기 등은 사찰의 불사(佛事) 내용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에 도난당한 불화는 구체적인 화기 내용조차 알 수 없다. 따라서 도난당한 불화를 사찰로 회수한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다. <끝>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