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선원총림의 한 해 일정

매월 일정 정리한 ‘월분수지’
결제·해제일은 인도불교 제도
새해 첫날(원단), 동지 중국 풍습

 

천 년 전 당송시대 선종 사원(총림)에서도 정해진 한 해 일정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날은 새해 첫날인 원단(元旦, 歲旦, 年始ㆍ정월 초하루)과 하안거 결제일인 결하(結夏ㆍ4월15일), 하안거 해제일인 해하(解夏ㆍ7월15일), 동지(冬至)이다. 이것을 ‘4절(四節)’ ‘4대 명절’이라고 한다.

선종사원의 4대 명절(四節)은 백장회해가 정한 백장총림의 제도였다. 이 가운데 결하일(結夏日ㆍ하안거 결제일)과 해하일(해제일)은 인도불교의 제도이고, 원단와 동지는 중국 세속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밖에 불탄일, 성도일, 열반일, 달마조사 기일(忌日), 백장 선사 기일, 개산조사일도 중요한 날이다. 천자의 생일은 성절(聖節)이라고 하여 중요한 날로 삼았는데, 이것은 남송 이후에 도입된 것이다.

매월 정기적인 행사나 일정을 정리한 것을 청규에서는 ‘월분수지(月分須知)’ ‘월분표제(月分標題)’ 또는 ‘월진(月進)’ 등이라고 한다. 정해진 매달 일정표인 동시에 ‘연중 행사표’라고 할 수 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규로서 북송시대에 편찬(1103)된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월분(月分) 항목이 없다. 그 당시에도 매달, 매년 정기적인 중요한 행사가 있었겠지만 별도로 항목을 두어 정리하지 않았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남송·원대에 편찬된 청규인 <총림교정청규총요(함순청규)>(1274년 남송 말 편찬), <선림비용청규(禪林備用淸規)>(1311년 元初 편찬), <칙수백장청규>(1338년, 元 순제 원통4년), <환주암청규(幻住庵淸規)>(1317년, 元 延祐 4) 등에는 ‘월분수지(月分須知)’, ‘월분표제(月分標題)’, ‘월진(月進)’ 항목이 있다. 그런데 이 몇 개의 청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차이가 꽤 있다. 또 남송 이전부터 전해 오는 전통적인 것도 있고, 남송·원나라 때 신설된 것도 있다.

예컨대 “세단(歲旦ㆍ정월 초하루)에는 오갱종(五更鐘, 4시 起床을 알리는 종)과 판(板)이 울리면 대중들은 (佛殿에) 모여서 대비주(大悲呪ㆍ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하며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 “매달 삭망(朔望,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대중들이 아침 죽(粥) 공양 전에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祝聖).” 또는 “능엄단을 차려 놓고 능엄주를 외운다” 등등은 모두 남송 말, 원대에 생긴 것으로, 그 이전에는 없었다.

여기서는 <칙수백장청규> ‘월분수지(月分須知)’ 편을 바탕으로 기타 여러 청규를 참고하여 선원총림의 한 해 일정을 알아보았다. 날자는 음력이고 해설이 필요한 곳은 해설을 덧붙였다.

새해 첫날인 ‘원단’은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4대 명절 중 하나다. 사진은 2007년 조계종 신년하례법회 모습.

 

▲정월 : 1일(정월 초하루)은 세단(歲旦)ㆍ원단(元旦)이다. 새벽 4시에 오경종(五更鐘)을 친다. 오경종은 기상과 예불을 알리는 종으로, 불전(佛殿ㆍ대웅전)에 향촉과 다과를 올린다.

정월 15일은 상원등석(上元燈夕ㆍ정월 대보름날 저녁)이므로 대비주(大悲呪)를 외우면서 황제의 수명장수 기원법회를 한다. 또한 매달 삭망(朔望ㆍ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대중들이 아침 죽(粥) 공양 전에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祝聖). 정월 17일은 백장 선사(百丈懷海ㆍ720~814)의 기일(忌日ㆍ열반일)이다.

△해설 : 백장선사의 기일(忌日)임은 달마조사의 기일(忌日)과 함께 중요한 날이다. 달마는 초조이고 백장은 최초로 청규를 제정했으며, 율종으로부터 선종을 독립시킨 선종의 건설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종 사원은 반드시 조사당에 달마, 백장 선사를 모신다.

▲2월 : 1일(초하루). 승당(僧堂, 선당, 좌선당)에 설치되어 있는 화로(火爐)를 철거한다(閉爐). 2월 15일은 부처님 열반일이다.

△해설 : 승당의 화로(火爐)는 음력 10월 1일에 설치하여 다음 해 2월 1일에 폐쇄한다. 화로를 설치하는 것을 개로(開爐)라고 하고 폐쇄하는 것을 폐로(閉爐)라고 한다. 개로일(開爐日)과 폐로일에는 주지(방장)의 상당법어가 있다. 이것을 개로상당(開爐上堂), 폐로상당(閉爐上堂)이라고 한다. 화로는 승당 복도 몇 곳에 땅을 약간 파고 설치한다. 연료는 숯인데, 숯불을 피워서 냉기(冷氣)를 제거하는 정도이다.

▲3월 : 1일. 당사(堂司, 유나)는 초단(草單ㆍ안거 방함록)을 꺼내서 승당 앞에 게시(揭示)한다. 한식(寒食), 청명일(淸明日)에 고사(庫司ㆍ총림의 살림 일체를 관리하는 소임으로 감원, 都寺)는 조사당과 여러 조사의 탑(塔)에 공양을 올리고 대중을 모아 경전을 외운다(諷經). 이 달(3월)에는 방(榜)을 걸어서 차순(茶筍ㆍ찻잎) 채취를 금한다(3월에는 아직 찻잎이 어리기 때문에 채취를 금하는 것이다).

▲4월 : 1일. 단과료(旦過寮ㆍ객실)의 문을 닫는다.

△해설 : 당송시대 중국 선원총림의 하안거 입방 마감일은 3월 말까지이다. 결제 15일 전에 마감했던 것은 총림의 다례(茶禮)와 다탕법(茶湯法, 차 마시는 법도) 숙지(熟知)를 위해서였다. 방부는 3월 말로 마감하고 4월 1일에는 객실을 폐쇄하고 방부를 받지 않는다. 4월 4~5일 사이에는 주지(방장)는 보설(普說ㆍ법문)하고 입방승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해설 : ‘보설(普說)’이란 송대에 생긴 법문의 일종으로서 신도를 비롯하여 모든 대중들이 다 함께 듣는 법문.

4월 8일은 불탄일(佛誕日, 浴佛日)이다. 고사(庫司, 오늘날 원주)는 흑반(黑飯)을 지어서 부처님께 올린다.

△해설 : ‘흑반’이란 천촉초(天燭草)의 잎과 즙(汁)으로 마지(밥)를 청흑색으로 물들인 것. 오반(烏飯)이라고도 한다. 4월 초파일 즉 불탄일(부처님 생일)에는 특별히 부처님께 흑반(黑飯)을 올린다. 4월 13일에는 능엄회(楞嚴會)를 계건(啓建)한다.

△해설 : 능엄회를 계건한다는 것은 4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능엄주를 독송하는 능엄회가 시작됨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 거는 것을 말한다. 남송 말, 원대부터 선종 사원에서는 결제 2일 전에 능엄단(楞嚴壇)을 차리고, 능엄주를 독송하는 능엄회가 있었다. 이 담당자(소임)를 능엄두(楞嚴頭)라고 한다. 매일 불전(대웅전)에서도 대중들이 함께 능엄주를 염송했다. 능엄주를 염송하는 것은 기복(祈福)과 제마(除魔)를 위해서였다. 선종 사원에서 능엄회 유행은 남송 후기로서, 북송 때(1126년)까지는 없었다. 1103년 장로종색이 편찬한 <선원청규>에는 능엄회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 그런데 원대 중기인 1274년에 편찬된 <함순청규>에 처음 능엄회에 관한 기록이 나오고 있고, 이어 1311년(원나라 초기. 1264년 원 건국)에 편찬된 <선림비용청규(禪林備用淸規)>와 1338년 편찬된 <칙수백장청규>에는 능엄회에 대한 것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원나라 때에는 총림의 모든 의식과 행사에 능엄주와 대비주가 필수 염불문이었다. 능엄회의 기원에 대하여 <선림비용청규> 3권(1311년, 원나라 건국은 1264년)에는 진헐청효(眞歇淸了)가 보타산에 있을 적에 하안거 때 병승(病僧)을 위하여 보회향문을 지어서 외웠는데, 이것이 능엄회의 시작이라고 한다(불광사전 5493쪽 상단).

4월 15일은 하안거 결제일이다. 날씨를 보아서 승당 안의 난렴(暖簾ㆍ겨울용 커튼)을 걷어내고 량렴(凉簾ㆍ여름용 커튼)을 친다. 참고; <무문관> 26칙에는 이승권렴(二僧卷簾) 공안이 있다.

▲5월 : 5월 5일 단오날. 조신(早晨ㆍ오전 9시)에 지사(知事)는 승당 안에 향을 사르고, 다두(茶頭)는 창포차(菖蒲茶)를 다리고, 주지는 상당하여 법문을 한다(단오상당). 또 청묘회(靑苗會, 풍년을 위한 기원회)를 계건(啓建ㆍ풍년을 위한 기원문을 내다가 건다)하며, 당사(堂司, 유나)는 모든 요사의 요주(寮主, 요사 책임자)에게 청묘회에서 독송하게 될 경단(經單ㆍ경전 명단)을 알려 준다. 직세(直歲ㆍ당우 관리 담당 소임)는 모든 곳에 누수(漏水)가 없는지 살피고 물길을 정비한다. 방장은 모든 요사와 탑두(塔頭, 해당 사찰의 고승 부도)에 나아가 차를 올리고 보살핀다. 승당 안에 문장(蚊帳ㆍ모기장)을 친다.

△해설 : 단오 때는 창포차를 달여서 마신다. 일반에서도 단오 날에는 머리에는 창포 꽃을 꽂고, 또 창포물로 목욕을 함. 이 때부터 승당 안에 모기장을 친다. 당시 모기장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굵은 삼배가 아닐지. 경단(經單)이란 법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강설에 쓰일 경전의 이름을 고지해 주는 쪽지,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다.

▲6월 : 1일. 더위가 대단할 경우 수좌는 선당의 좌선판(坐禪板)을 치지 않는다.

△해설 : 좌선판을 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더워서 좌선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복이 되면 유나가 제조(提調ㆍ지휘 감독)하여 선당의 장련상(長連床ㆍ좌선상)에 깔았던 자리를 꺼내서 먼지를 털고 햇볕에 쬔다.

▲7월 : 초순에 유나(維那)는 우란분절 때 간경(看經)ㆍ염송(念誦)할 경전을 정하여 모든 요사(寮舍)게 통보한다(주로 <부모은중경>을 독송함). 미리 중재(衆財ㆍ대중들로부터 각출하는 것)를 거두어서 우란분절 때 아귀에게 공양시킬 음식을 마련한다. 7월 13일에는 능엄회를 해산한다.

△해설 : 능엄회는 4월 13일에 시작한 능엄회를 해제 2일 전에 해산하는데, 남송 후기에 생긴 것이다. 8월 15일은 하안거 해제일이다. 당일 밤에 우란분회를 설치하고 경전을 외우고 아귀에게 시식(施食ㆍ공양을 베품)한다.

▲8월 : 1일. 단과료(旦過寮ㆍ객실) 문을 다시 연다.

△해설 : 동안거를 대비하여 객승 즉 방부를 받기 시작한다는 뜻. 지난 5월에 쳤던 승당의 모기장을 거두어들인다.

▲9월 : 1일. 유나의 감독 하에 승당의 창문을 다시 바른다. 량염(凉簾ㆍ겨울용 커튼)을 내리고 난렴(暖簾ㆍ겨울용 커튼)을 친다. 9월 9일 중양일(重陽日) 조신(早晨ㆍ아침 9시)에 지사는 향을 사르고 산수유차(茱萸茶)를 달인다.

△해설 : 9월 9일 중양절에 산수유 열매를 따다가 차(茶)를 담가서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는 속설이 있다.

▲10월 : 1일. 승당(僧堂, 禪堂)에 화로를 설치한다. 설치 후에는 상당법어가 있다. 이것을 개로(開爐, 화로설치) 상당이라고 한다. 방장의 대상간(大相看ㆍ접견)이 있다. 10월 1일에는 객실을 폐쇄한다(동안거 입방은 15일 전인 9월 30일로 마감한다). 10월 5일은 달마조사의 기일(忌日)이다.

△해설 : 10월부터 기온이 내려가므로 승당에 화로를 설치한다. 철거는 다음해 2월 1일에 한다. 대상간(大相看)은 많은 대중들과 만남을 뜻하는데, 특히 10월 1일 대상간(大相看)은 입방하고자 하는 납자들을 한꺼번에 모두 면접하는 것을 가리킨다.

▲11월 : 동짓날이 되면 고사(庫司, 감원, 副寺)는 미리 자과(籤果ㆍ버무려서 만든 떡의 종류)를 준비한다. 방장은 동안거에 앞서 대중들에게 점심(點心)을 청한다.

▲12월 : 8일은 성도일이다. 고사(庫司, 감원, 副寺)는 미리 홍조(紅糟ㆍ팥죽)를 만든다. 세말(歲末ㆍ연말)에는 여러 가지 장부(帳簿)를 마감, 정리하여 주지화상에게 올린다(1년 수입 지출을 총결산하는 것).<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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