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中道의 배’로 격랑 넘어서자
[한 해를 마무리하며] ‘中道의 배’로 격랑 넘어서자
  • 방영준/성신여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2.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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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중부전선 DMZ의 겨울밤은 바로 공포였다. 눈보라와 칼 추위 속에서 철책선 군복무를 한 경험은 내 일생의 가장 큰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비무장지역의 GP를 철거하고 남북 군인이 함께 이를 확인하는 뉴스 영상을 보고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과 무서움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공자는 흐르는 강물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서글퍼 했고, 붓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깨달음을 보았다. 새해 기해년의 새 달력에 황금 돼지가 웃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시간을 측정하는 달력의 제작과 함께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시간은 변화와 함께 한다
한국사회 변화도 심상치 않아
변화의 깊이·넓이 더욱 커져

‘패러다임의 전환기’인 현 상황
극복 여부 따라 흥망성쇠 결정

격동 변화 넘을 新사유 필요해
변화의 핵심 보는 깨달음 ‘연기’
연기 바탕한 중도 지혜가 절실


태양계의 인간은 참으로 기이한 존재다. 바람 같은 시간을 태양의 빛으로 측정하여 자연과 자신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간의 바다’를 항해한다. 

식물은 태양의 빛에 따라 새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낙엽을 떨구면서 겸손하게 사는데. 아마도 인간이 시간을 측정한 제일 큰 원인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서 나온 행위일 것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나도 너도 아무도 못 봤지./ 그러나 나뭇잎이 매달려 떨고 있을 때/ 바람은 질러가고 있다.
 

위 시구는 영국의 여류 시인 로세티(C. Rosseti)의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에서 인용했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은 결코 지각될 수 없다. 모든 시간은 변화와 함께 온다. 그 변화는 사람을 혼란케 하고 고뇌를 일으키고 또한 망각하게 만든다. 시간은 인간 삶의 가장 큰 주제다. 인생은 시간에 실려 가는 삶의 지속이고, 그 시간은 무상하다. 고집멸도 사성제의 첫 번째 고성제가 이 변화 속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파고가 심상치 않다. 남쪽 대통령이 평양의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위인 김정은 위원장’을 환영한다는 집회도 열린다.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그 변화는 깊이와 넓이가 매우 크고, 속도는 엄청 빠르다. 또한 변화의 풍향도 어지러워 방향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잘못하다간 엄청난 파고 속에 침몰하거나 부평초처럼 이리 저리 표류할 것이다. 

지금의 시기를 학문적 용어로 ‘패러다임의 전환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이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달려 있음을 본다.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징후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 현상 등은 과거에 우리가 착용했던 사유의 안경으로는 그 본질을 볼 수 없다. 이 격동의 변화 속에서 항해 지도를 만들 새로운 사유의 틀이 필요하다. 여기에 연기법의 위대성이 새삼 다가온다. 붓다의 연기법은 바로 변화의 핵심을 보는 깨달음이다. 

방영준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방영준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이제 혼돈과 격랑의 무술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이하고 있다. 엄청난 삼각파도의 격랑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이 삼각파도 속에 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할 수도 있다. 여기에 격랑의 바다를 헤쳐 갈 배가 있다. 이 배는 바로 연기법을 질료로 하여 만든 붓다의 ‘중도(中道)의 배’다. 

중도의 지혜를 이 세간에 펼칠 방편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할 때 기해년의 황금빛 돼지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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