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불교의 위대성, 절대성, 실용성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라 하셨습니다. 

이 말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 ‘내 마음이 운명을 만들고 길흉화복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산하대지를 만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즉 우리 마음은 이 우주의 창조주라는 뜻이요, 시시각각으로 소원을 이루는 위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각종 재앙, 무지, 무능의 근원인 탐진치를 사라지게 한다면, 또 반대로 우리 마음에 부처님 전에 복짓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우리 앞에 그야말로 축복과 능력 그리고 지혜의 극락세계가 당장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우리 마음 속에 재앙, 무지, 무능의 근원인 탐진치를 몰아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우리 마음에 행복, 능력, 지혜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선지식께서는 바로 〈금강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라. 금강경 뜻을 잘 해석하라 그리고 그 내용을 실천하라. 금강경의 골자는 금강경 제 3분, 4분, 5분에 있다. 이것을 종합한다면, 무슨 생각이든지(자신의 마음속에 올라오는 모든 생각은 거의 다 탐진치) 그것이 착각인 줄 알고 부처님께 바쳐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궁리를 가지고 있으면 불행이 오고, 병이 오고, 무지가 되고, 무능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각종 궁리를 착각인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친다면, 불행이 변하여 행복으로, 무능이 무한 능력으로, 무지가 참 지혜로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3년 동안을 금강경 가르침대로 실천하게 된다면, 자신의 길흉화복을 만드는 우주의 주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선지식이 계시는 수도장으로 출가를 하였습니다. 선지식의 수도장은 정갈한 참선도량이 아니었습니다. 소젖을 짜는 목장이었습니다. 오후 불식 및 중노동의 결과 오후가 되면 몹시 배가 고픕니다. 배고픈 생각도 착각으로 알고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면 졸립다는 생각도 착각으로 알고 부처님께 바칩니다. 배고프다는 분별심, 졸리다는 분별심이 소멸됨에 따라 자신 속에 내재된 무한 능력이 발동되는 모양인가? 그런 과정에서 안된다, 못한다, 모른다는 생각이 점차 엷어지며 드디어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아니 된다〉가 〈된다〉로, 〈싫다〉가 〈좋다〉로, 〈모른다〉가 〈알수 있다〉로 바뀌는 과정에서, 저는 저 자신의 위대성 다시 말씀드리면 불법의 참 위대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자신이 꽤 대견하고 훌륭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나마 자신이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지 아니하고 궁리에 빠져들 때에는, 여지없이 재앙으로 연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한시라도 부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발견하면서 부처님의 절대성을 느낀 것입니다.

뒤늦게 수도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수도생활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격적 성숙은 물론 밥 먹여주는 데도 절대로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과정에서 생긴 긴 공백을 딛고도 되기 어렵다는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교수생활을 하면서 탁월한 논문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무료급식을 통하여 빈곤한 마음을 풍요로운 마음으로 바꿀 수 있었으며, 마음이 넉넉하니 물질에도 부족함이 없게 변하였습니다. 외로움을 잘 타던 나는, 주위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의 실용성은 참 대단하다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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