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포천 성불사 국제정맥선원...대원 전법선사
[지상중계] 포천 성불사 국제정맥선원...대원 전법선사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8.12.21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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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엔 승속 없다… 절실한 마음내라”

주제 : 깨달음을 위한 바른 수행법

2018년 무술년이 가고 2019년 기해년이 온다. 한 해를 보내는 불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이어가야 할까. 국제정맥선원 지도법의 특징은 대원선사와 독대해 직접 깨달음을 지도한다는 점이다. 대원선사는 12월 7일 선원서 본지 기자와 만나 ‘바른 불교 공부법’을 주제로 법문을 설했다. 선사는 “깨달음을 향한 사무친 발심이 있고, 눈 뜬 선지식에게 참문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환지본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원 선사는… 1953년 18세에 깨달음에 뜻을 두고 구도에 올라 이듬해 해인사서 출가했다. 1962년 대구 동화사서 전강선사의 인가를 받았다. 현재 성불사 정맥선원을 본사로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6개 선원의 불사와 교화, 역경,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바로보인 선문염송〉 〈바로보인 전등록〉 등이 있다.
대원 선사는… 1953년 18세에 깨달음에 뜻을 두고 구도에 올라 이듬해 해인사서 출가했다. 1962년 대구 동화사서 전강선사의 인가를 받았다. 현재 성불사 정맥선원을 본사로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6개 선원의 불사와 교화, 역경,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바로보인 선문염송〉 〈바로보인 전등록〉 등이 있다.

“마음이 ‘나’ 되는 공부가 佛法”
깨달음 향한 절실한 마음내기와
참스승 만나야 ‘바른 수행’ 가능

‘내’가 된 삶을 사는 수행자가 
진정한 불보살 삶을 사는 불자

 

올해를 보내며 불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살면 됩니다. 우리 불교는 초지일관 바른 것입니다. 불교인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바른 안목으로 볼 수 있어야 바르게 사는 법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른 안목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깨달아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른 불법이란
-몸이 내가 아닌 마음이 내가 된 삶

불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몸이 내가 아니고 마음이 내가 되는 공부’입니다.

우리 몸은 사람이 태양 아래를 걸을 때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 그림자를 나로 삼기 때문에 생사와 속박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너는 오늘의 내가 아닌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너였노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요, 부처가 중생이다’란 의미로, 깨닫고 나니 바로 안팎 없는 자체여서 부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이 다르지 않아 두 마음이 똑같다는 말도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란 깨닫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공부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승속을 불문하고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과

둘째, 중생을 이끌어 마음바탕에 사무쳐 들게 하여 마음자리를 짚어줄 수 있는 일체종지를 이룬 선지식과

셋째, 줄탁동기(緖啄同機)와 같이 두 인연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바른 스승이란
-일체종지를 이룬 선지식

‘선방은 있어도 수좌들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실상은 수좌들이 있어도 그들을 이끌만한 눈 밝은 선지식이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깨달아 보림(保任, 깨달음을 얻은 후에 업을 닦고 지혜덕상을 다 갖춰가는 수행)을 해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룬 선지식이어야 비로소 수행자들을 바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일체종지를 이룬 경지란 어떤 것일까요? 불법의 진리나 어떤 공안이라 할지라도 누가 물으면, 질문한 사람의 두 입술이 닫히기 전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을 향한 마음내기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

옛 선지식들께서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더 쉽다’고 했는데 지금은 도리어 가장 어려운 것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덜 갖추고, 더 갖춘 문제가 아니라 승속과 수행여부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깨달음을 향한 절실한 마음만 내십시오. 일체종지를 이룬 선지식을 만나 지도를 받는다면 불교 공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간단한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이란
-꿈이 꿈인줄 알면 삼라만상 모두 마음의 능력

법계의 ‘법’은 개개인의 자성을 말하고, ‘계’는 밖으로 펼쳐져있는 삼천 대천세계를 말합니다. 깨달아 사무친 그 순간, 안도 없고 밖도 없는 그자리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고 할 수 있는 경지를  ‘법계화’ 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나고 죽음이 당초에 없습니다.

이를 꿈에 비유해보겠습니다. 꿈보다 더한 법문이 없습니다. 

꿈꿔본 적 있습니까? 꿈은 누가 만들어놓고 내가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쓸 때는 언제입니까? 잘 때인가요? 깨어있을 때인가요? 보통은 깨어있을 때 내 마음을 제대로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째서 깨어있을 때가 아닌 잠잘 때 그런 능력이 나올까요?

방 안에서 잠을 자며 꿈을 꿀 때 잠자는 사람이 꿈속에서 아무리 방 안을 활보하고 다녀도 방 안에 있는 이들과 잠자는 사람이 서로 전혀 볼 수도 없고 걸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한 몸에서도 업을 달리하면 다른 세계를 이룹니다. 또한 죽은 지 얼마 안 돼 아직 몸을 받지 않은 귀신들이 이 공간에 무수히 있다 해도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서로 걸리지도 않습니다.

한편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각각 업을 익혀서 각각 과보를 받고 있는 상대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내가 저지른 바는 상대에 의해서 반드시 되돌려 받습니다. 그러나 꿈속의 세계는 나 혼자 내 여래장에 심어진 것을 꺼내어 연출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마음의 업이 더욱 깊어질지언정 과보는 받지 않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은 거의 송장과 다름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필이면 송장이 다 됐을 때 꿈꿀 때와 같은 재주가 나오는 이유는 몸뚱이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몸뚱이를 벗어난 체성일 때만 그런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중생의 내가 완전히 죽어야, 현상계가 완전히 없어져야 참나가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엊저녁 꿈을 깨고 보니 꿈속의 모든 상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깨닫지 못해 몸뚱이를 나로 알 때는 현상계가 따로 있는 것으로 인식하다가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불성의 익힌 바에 의해서 나툰 마음들의 빛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꿈속 모든 현상이 내 밖의 경계가 아니라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성에서 발하는 청정광명이며, 자성 밖의 것이 아니어서 자성에 본래 갖추어진 지혜의 능력에 의해 그 빛을 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 만덕(萬德)이라는 것이 엊저녁 몽중의 현상과 같아 자성이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무정인 나무의 몸으로도 나투고 유정인 인간의 몸으로도 나투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꿈에 나툰 것처럼 그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이어서 선정 중에 우리가 빛을 나투었을 때 그 빛이 본 체성과 나뉨이 없는 것처럼 ‘안팎 없는’자체일 뿐입니다.

업에 빠져 굳어져서 업상을 이루고 있을 뿐, 업상만 벗으면 그대로 극정에서 빛을 나툰 것과 같습니다. 있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어서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만덕은 밖에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안에서 끌어내어 형성된 것도 아닙니다. 꿈이 꿈인 줄 알면 꿈속의 현상이 자성 밖으로 나온 것도,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다만 스스로의 능력을 발했을 뿐인 것처럼 삼라만상과 만덕 역시 밖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기에 거두어 들여서는 거둬들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는 순간 바로 이 몸이 내가 되어버립니다. 몸뚱이가 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깨어있을 때는 절대 그런 능력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깨달아서 보림을 마치면 꿈꿀 때처럼 그런 세상을 능히 나툴 수 있습니다. 

<화엄경>은 바로 이러한 마음의 세계, 즉 부처님의 누림의 세계를 드러낸 경전입니다. 중생이 수행해서 궁극에 이를 자리를 그려놓은 것입니다.

듣는 곳을 관조하는 공부를 일상생활 가운데 지극하게 지어가다 보면, 일체 상이랄 것 없이 허공처럼 텅 비어 온통 마음뿐일 것이니 이것이 본래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결정신을 내려 마음이 내가 된 삶이 불보살의 삶이며 진실한 불자들의 삶입니다. 여기서 경계해야할 것은 마음 바탕의 실증 없는 공에 떨어져 안주하는 것이니 반드시 인가받은 선사를 참문하여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정법을 가섭존자로부터 육조대사로 전수되고 육조대사로부터 전해 내려와 수덕사 경허, 만공 선사를 거쳐 전강 선사로 이어진 법과 용성 선사로부터 이어진 강맥을 전강받아 선교양종의 정맥을 꽃피우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도량입니다. 

금생에 깨닫기를 간절히 서원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승속과 종파를 초월해 입·방선을 허락할 것이니 금생에 꼭 대오견성해서 생사해탈하시기 바랍니다.
 

청정본자연(淸淨本自然) - 청정해서 본래 스스로 이러함이라 
막론거래상(莫論去來相) - 오고가는 상을 논하지 마라
삼삼번성구(三三飜成九) - 삼삼은 뒤집어도 아홉을 이루느니라
회마(會投)             - 알겠는가?
악(喝)                 - 악!
                                       
- 동안거 결제 법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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