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그리고 마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내는 순간 온갖 인위적인 기교가 개입하게 되고 자연스러움은 사라진다. 고객은 귀신처럼 알아챈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는 듯이 돈을 벌라는 말이다. 돈을 벌겠다는 것을 우선순위 1로 만들지 말고 고객 만족을 우선순위 1로 만들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자기는 한 번도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만들지 않고 가족과 친구가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물건을 만들었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지 않은가? 미국 부자를 조사한 랜들 존스도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부자가 되려고 하면 부자가 안 된다. 부처님은 깨달음조차도 추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불자는 누구나 깨달음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추구해야 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 추구하되 끄달리지 않아야
재산 증식에 들뜬 기분이 문제
수행 통해 정념(情念) 소지 중요

살다보면 돈이 늘어난다. 돈이 늘어나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돈이 늘어날 때 너무 좋아하면 마가 낀다. 더 큰 욕심을 내다 일을 망치기도 하고 사기에 넘어가기도 한다. 따라서 돈이 늘어나면 너무 좋아하지 말고 담담하게 돈이 늘어나는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돈이 줄어들면 누구나 기가 죽고 우울하다. 좋은 기회가 와도 비관적으로 보다보니 기회를 놓치고 돈은 더욱 줄어든다. 따라서 돈이 줄어들면 너무 기가 죽거나 우울하지 말고 담담하게 돈이 줄어드는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돈이 늘어날 때 돈이 줄어들 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과연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불교적 방법이란 무엇일까?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불자다. 아무리 법당에서 철야 기도를 해도 돈 앞에 흔들리면 소용이 없다. 돈 앞에 흔들리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본다. 몸은 더럽고 본능적이고 탐욕적이고 마음은 깨끗하고 고귀하다고 보는 사람조차 있다. 불교는 무엇이든 이분법을 경계한다. 불교의 핵심교리는 연기다. 연기법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독자적 실체가 없으니 몸과 마음이라는 것도 독자적 실체가 없다.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현상은 원래 비불교적인 오류인데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불교 신도조차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몸과 마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운동을 한 뒤에 인내심과 균형 감각이 생기고 마음이 더 평온해진다. 반대로 마음이 불안하면 몸도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친다. 연세대 전용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체육활동에 많이 참여하는 청소년일수록 행복도가 더 높았다. 안구를 자주 움직이면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하니 몸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양팔을 하늘로 쭉 뻗는 동작을 2분 정도 유지하면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호르몬이 증가한다. 뇌를 다치면 착하고 배려심이 많던 사람이 갑자기 난폭하고 자기 중심적인 괴물로 돌변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은 서로 구분이 모호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상대에 의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마음몸, 몸마음이라고 부르는게 좋다. 우리는 마음이 몸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다보니 스트레스가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기사가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몸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제는 너무 ‘마음 마음’할 게 아니다.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마음은 몸과 구분이 어렵다. 만약 뇌를 다친다면 마음은 어떻게 될까? 도대체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몸의 일부분인 뇌에서 나오므로 몸과 마음이란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구분은 ‘일체유심신조’라고 몸과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올림픽 2관왕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는 경기 전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자기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금메달을 놓쳤으리라. 그러나 이상화 선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최선을 다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 선수는 별명이 ‘애 늙은이’였다고 한다. 아이답지 않게 전혀 동요하지 않아서 붙인 별명이다.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는 잘 흔들리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일본 스포츠 평론가가 아사다 마오의 흔들리는 성향을 분석하면서 김연아 선수를 이기려면 자신을 먼저 이겨야 한다고 평했다. 운동 선수에게 흔들리는 않는 자세, 침착한 태도, 강한 정신력은 실력보다 더 중요하고 사실 이게 실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돈 앞에서 이상화 선수나 김연아 선수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면 돈에 관한 의사결정을 더 잘할 수 있다.

돈 때문에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 철학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면 플라톤, 칸트, 헤겔을 연상한다. 우리에게 개똥 철학이라도 있다면 흔들리는 우리를 잘 잡아줄 수 있다. 불교 신도에게는 불교교리가 바로 철학이다. 개똥 철학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데 불교 철학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철학인가? 철학이 있어야 나의 재산과 남의 재산을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소비 생활을 담담하게 할 수 있다. 철학이 있어야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가진 것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여 재물을 늘릴 수 있다. 철학이 있어야 부처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벌면서 나쁜 방법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철학이 있어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 걸’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둘째 몸과 마음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뇌신경회로와 호르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오랜 수행을 해야 뇌신경회로와 호르몬이 변화되어 일시적인 몸과 마음의 변화가 아닌 체화된 몸과 마음의 변화가 된다. 부처님께 절하며 온갖 잡념을 떠올리면 수행이 아니라 그냥 체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불자라면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을 해야 부처님의 제자다.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프로작이라는 약은 우울증 치료제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약을 안 먹기로 또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정신과 관련 약을 먹는다는 것을 끔찍한 일로 생각한다. 정신과에 가보라고 하면 ‘나보고 미쳤다는 거야?’라는 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우울증 환자가 프로작이라는 약만 먹어도 자살률이 상당 부분 하락하리라는 예측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울증이 증가하다보니 급기야는 건강보험에서 우울증 치료비도 보장해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울증에 약을 처방하는 대신 불교명상을 처방하면 보험회사에서 치료비를 보장해준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관리공단은 고사하고 민간 보험회사도 아마 불교명상으로 인한 치료비는 보장해주지 않을 거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의대 병원에서 존 카밧진이라는 교수가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명상 기반 치료법을 개발했고 이 치료법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카밧진 교수는 얼마 전에 한국에도 다녀갔다.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명상은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mindfulness)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하셨던 명상법이고 지금도 남방불교에서 수행할 때 사용하는 명상법이며 위빠사나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알아차림이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절한 번역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맞는 말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미얀마 등지에서 명상을 배우고 돌아와서 위빠사나 선원을 세우는 수행자도 생겼다. 서양과학계에서는 불교명상의 좋은 효과에 대해 많은 연구가 쌓여 있다. 아주 오래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에 명상과목이 개설되었다는 뉴스를 봤는데 아직도 개설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구글이라는 유명한 인터넷 검색회사는 회사에서 명상을 지원해주는데 명상을 주도한 직원이 한국에 다녀가기도 했다. 구글 뿐만이 아니라 많은 기업과 기업인이 명상의 강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상은 몸의 건강에도 좋지만 정신적으로 좋은 점이 많다. 우울증 치료는 그 중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불교명상을 한다는 것은 정념을 소지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정념이란 영어로는 바른 알아차림(right mindfulness)으로 번역하며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인 8정도의 하나이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셨다고 했다. 금색왕경에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말한 가난으로 인한 고통, 즉 돈으로 인한 고통이라고 했으니 불교는 돈으로 인한 고통도 해결해야 한다. 부처님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8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8정도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의 8가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등을 의미한다. 부처님은 죽는 날까지 정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돈에 관해서 고민할 때 언제 사고 언제 팔 것인가를 결정할 때 반드시 정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매순간 어떤 생각, 말, 행동을 할 때 항상 정념을 소지하고 있으면 고통을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의사결정 오류와 행동의 실수를 최소화한다.

정념은 꼭 알아차림 수행법만으로 소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화두선으로도 가능하다. 화두선이 어렵다고 느낀 불자가 최근에는 남방불교 위빠사나 수행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화두선, 위빠사나 모두 어렵게 느껴진다면 염불선을 해도 좋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정념을 잃으면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잡념 속을 헤매게 되며 영어로는 ‘마음이 없는 식사(mindless eating)’이다. 이에 반하여 ‘마음이 있는 식사(mindful eating)’는 잡념에 빠지지 않고 음식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고 집중하는 식사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눈을 감은채로 생각에 몰두하는 사업가는 마치 정념을 소지한 사업가처럼 느껴진다. 돈에 대해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가 잡념에 빠져 있으면 의사결정을 그르치기 쉽다. 정념을 소지하고 있으면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의사결정 오류가 최소화되고 마음도 훨씬 편안해진다.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죽는 날까지 정념을 잃지 말자.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돈으로 인한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빈부격차 또한 더욱 벌어지리라 예측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끊임없이 해고되고 끊임없는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하는 일이 반복된다. 삶은 그만큼 불안해지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기에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불자는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위한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염불을 하건 기도를 하건 염불로만 기도로만 하지 말고 수행으로 해야 한다. 수행을 해야 진짜 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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