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마음의 가짜들이 진짜를 위협한다
내 몸과 마음의 가짜들이 진짜를 위협한다
  • 천미희 한마음선원 부산지원 기획실장
  • 승인 2018.12.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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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환경 호르몬

아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 곁을 지날 때면 아들과 나는 거의 동시에 숨을 멈춘다. ‘담배 피우는 사람을 만나면 숨 참고 빨리 지나가기’라는 이 행동 수칙은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다. 유치원에서 담배 속에 들어 있는 유해물질에 대해 배운 아들이 담배 피우는 사람 곁을 지날 때마다 내가 민망할 정도로 싫은 내색을 팍팍 하는지라 그러지 말고 우리가 숨을 멈추고 빨리 지나가자고 제안한 이후부터다. 물론 그런다고 완벽하게 담배 연기와 냄새를 피할 수는 없다. 발 없는 연기가 어딘들 못 가랴 싶게 연기는 멀리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 자라나는 어린 아들이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싶은 이유는 담배 연기 속에 청산가리보다 1,000배나 강한 독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고 할지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담배 판매가 허용될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 굳이 따지자면 딱 맞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또 따져 들어가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담배 연기 속에는 다이옥신이라는 환경호르몬이 들어 있다. 다이옥신 1g이면 몸무게 50kg인 사람 2만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이며 이는 청산가리 1,000배보다 강한 독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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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은 뭐고 또 다이옥신은 어떤 물질일까? 우리는 너무나 많이 들어서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환경호르몬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너무 모른다. 환경호르몬이 대체 무엇인지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말이다. 환경호르몬은 언뜻 들으면 호르몬 같지만 정확한 용어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다. 생체 외부에서 들어와 내분비 기관 안에서 호르몬의 생리 작용을 교란시키는 화합물을 말한다. 환경호르몬은 일본식 용어로 우리 몸속에 들어와 ‘호르몬’인 척해서 진짜 호르몬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몸은 키를 키워주는 성장호르몬,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드러내는 성호르몬 등 생식, 성장, 대사, 수면, 감정 등 각종 생리 활동과 신체활동에 필요한 호르몬을 몇몇 장기에서 분비한다. 호르몬은 적게 분비돼도, 그렇다고 많이 분비돼도 탈이다. 곧바로 신체 이상이나 생체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론 인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몸 안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닌, 몸 바깥에서 들어온 화합물질이 호르몬인 척 하면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몸은 그 가짜 호르몬에 속아 남성의 정자 수 감소, 청년의 정소염 증가, 자궁내막증, 질암 발병, 성 조숙증 등 여러 가지 부작용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여러 종의 야생 동물의 생태 조사 결과에서도 생식 불능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생식기가 퇴화되거나, 암수 동체가 된 경우도 발견되었다.

환경호르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심각하다.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석하게도 환경호르몬은 우리 너무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어 피할 수가 없다. 아마도 환경호르몬이 있는 곳이나 검출될 가능성이 있는 곳에 일일이 붉은 표시를 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금방이라도 붉게 변할 것이다. 70여 종이 넘는다는 환경호르몬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서 호시탐탐 우리 몸속을 노리고 있다. 우리 일상의 필수품인 비누, 세정제, 영수증 등 광범위한 곳에 침투하고 있어 환경호르몬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향수, 네일 폴리시, 헤어스프레이 등에는 암이나 자궁내막증을 일으키는 프탈레이트가 들어 있다. 이 물질은 태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임산부나 수유부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물질이다. 유기 염소계 살충제가 있는데 농약 등에 들어 있는 이 성분은 채소나 과일 등에 흡수돼 우리 몸으로 들어와 축적되는데 엄마보다 태어난 지 10개월 된 아기의 몸속에서 더 많은 양의 염소계 농약 성분이 검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한 놀랍게도 우리가 마트에서 받는 종이 영수증이나 은행에서 받게 되는 순번대기표에도 환경호르몬이 들어 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비스페놀-A는 핸드크림을 사용한 후 만지게 되면 흡수율이 1,000배 가까이 올라간다. 미국 환경실무그룹 EWG가 2010년 연구한 결과, 영수증 한 장에 있는 비스페놀-A의 양은 캔 음료나 젖병에서 나오는 양보다 250~1,000배 정도 많다고 하니 영수증 받기가 꺼려진다. 이 물질은 영수증을 만질 때 피부로 흡수될 수 있으며 지폐 등 다른 물체와 함께 두면 그마저도 오염시킬 수 있다. 대형 마트 계산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데 신세계, 홈플러스 등에서 일하는 계산원들의 소변 검사 결과, 근무 전후 비스페놀 농도에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감열지 영수증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힐링 바람을 타고 사용량이 늘고 있는 향초도 포름알데히드, 벤젠 화합물, 나프탈렌 등 발암물질이 배출되어 안심할 수 없다. 또한 여성 1인당 소비량이 일생동안 1만개에 달한다는 생리대 또한 환경호르몬 위험 품목이다. 제조사들이 영업 비밀을 빌미로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2014년 몇몇 국내 제품을 분석한 결과 발암물질인 스틸렌, 클로로포름 등이 검출됐다. 면 생리대 사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이다. 비누, 탈취제, 항균세정제 등에 들어있는 트리클로산 역시 유방암, 불임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성호르몬을 교란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에스트로겐 흉내를 내는 파라벤은 화장품, 식품, 의약품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부제로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배달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비닐 랩을 부드럽게 만드는 가소제(DEHP)에 노출되어 있다. 이 성분은 가열되거나 뜨거운 기름에 닿으면 배출된다. 생식기 기형 등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또 너무 친숙하고 당연히 사용하는 것들 속에 숨어 있어서 우리는 환경호르몬에 더욱 무방비 상태다.

환경호르몬의 붉은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코팅 프라이팬에서는 과물화혹탄산(PFOA)이라는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2004년 소비자들에 의해 밝혀지기까지 20년 이상 유해 성분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들에도 은폐된 유해 성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아웃도어 용품 역시 안전하지 않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웃도어 제품 40개 중 유해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C)가 검출되지 않은 제품은 4개에 불과했다. PFC는 방열, 방수, 방유성이 우수해 아웃도어 제품, 일회용 컵, 배달피자 박스 등에 사용된다. 이 성분은 제조 과정, 유통, 사용, 페기 전 과정에서 물과 대기 중으로 유출되며, 수백 년간 분해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체내에서 암을 유발하고 호르몬 체계에 혼란을 주는 성분이다.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고 각종 운동을 하면서 착용하는 아웃도어 용품이 오히려 해를 주고 있는 모순 앞에 놓여 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숨이 찰 정도로 가득한 환경호르몬에 대해 설핏 곁눈물질만 하다가 지난해 SBS에서 방영된 환경호르몬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경각심은 더욱 높아졌다. 10년 전 ‘환경호르몬의 습격’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생리통과 자궁내막증 등 자궁질환과 환경호르몬과의 상관성이 매우 높음을 보여 준 데 이어, 이번에는 인체 내 특정 유해인자 혹은 화학물질의 총량을 나타내는 ‘바디버든(Body burden)’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바디버든은 몸 안에 들어와 배출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화합물질의 총량을 말한다.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자각하면 바디버든 줄이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과 식물성 기름을 먹고, 하루 권장량의 물을 마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으로 가짜 호르몬을 몸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편리함에 한 번 속고, 그 편리함 속에 교묘히 파고들어 있는 가짜 호르몬에 두 번 속지 않으려면 까칠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줄도 알아야겠다.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야채를 길러 먹거나 사 먹는 것, 또 가소제를 사용한 플라스틱 용기에는 가소제가 녹아나거나 우러나올 수 있는 음식물은 넣지 않는다거나 되도록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 등은 깐깐하게 챙겨봐야 할 항목들이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쓰는 제품 속에 들어가 내게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몸 속의 바디버든 줄이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구의 바디버든 줄이기로 화두를 전환해야 한다.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공기, 물, 토양, 식품 등에서 환경호르몬이 없도록 만들거나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환경호르몬이 든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선택보다 그런 물건을 만들지 않아 지구라는 커다란 유기체의 바디버든 총량을 줄이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구는 거대한 나의 몸이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아이들의 몸이기도 하므로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의 바깥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내 안을 이룬다는 걸 깊이 인식한다면, 지구의 바디버든 줄이기가 내 몸의 바디버든 줄이기만큼이나 시급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환경호르몬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 같지만 어쩌면 우리가 편리함을 위해 부지불식간에 초대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손님 덕에 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짜들을 발견한다. 내 몸에 들어와 배출되지 않고 머무는 화학물질처럼 내 안의 참 나를 교란시키며 끈질 지게 나를 괴롭히는 가짜가 많다. 이 참에 내가 산다, 내가 옳다는 아상과 분별 등 나 인척 하며 근본 자리를 못 보게 하는 마인드버든도 줄여나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공생의 가치야 말로 지구의 바디버든 줄이기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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