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제주불교 4·3 진실규명 세미나...한금순 제주대 외래교수
[지상중계] 제주불교 4·3 진실규명 세미나...한금순 제주대 외래교수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8.12.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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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만 할 수 있는 역사 ‘치유’ 고민을”

주제 : 제주불교의 4.3 사건 기억사업 및 평화정착 필요성 
 

한금순 제주대 교수는 12월 7일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서 열린 ‘제주불교 4·3 진실규명 세미나’서 제주불교의 4.3 기억사업 및 평화정착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발표했다. 한 교수는 “불교계는 4.3 항쟁기 제주 사회 현안의 중심에서 활동했다”며 “일부에 불과한 사찰과 스님 등 피해 및 유적 조사와 더불어 불교적 치유, 추모, 역사교육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3 당시 무장대를 도운 신홍연 스님은 외꼴절에서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 복원되지 못한 사찰에는 신홍연 스님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4.3 당시 무장대를 도운 신홍연 스님은 외꼴절에서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 복원되지 못한 사찰에는 신홍연 스님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4.3사건 당시 사회현안 적극 참여한
제주 불교계…인명·사찰 피해 상당
교육 및 추모·위령시설 건립 필요
최대 격전지인 관음사 유적 사업도


제주 불교계는 한국사회 8·15광복 정국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가에 걸맞은 활동을 모색했다. 1945년 8월 20일경 조선불교혁신회가 구성, 같은 해 9월 22일과 23일 전국스님대회가 개최됐다. 새로운 교단을 만들어 친일불교를 혁파하고 수행승 위주의 민족 전통 불교를 정립하기 위한 의안을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제주불교 역시 조선불교혁신 제주도스님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제주불교는 새로운 시대가 일제 규제로 인한 구속에서 벗어나 자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불교 교단의 통합을 통해 불교를 재건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스님대회는 당시 제주도의 82개 사찰 중 80개의 사찰이 참여한 제주불교 전체의 움직임이었다. 스님대회에서는 제주교무원 운영, 강원 설치 및 인재 양성, 대중불교 실현, 사찰 정화, 건국정신 진작에 관한 건을 논의했다.

이러한 제주불교의 사회참여 인식은 더 나아가 제주사회의 현안에 깊숙이 참여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제주스님대회 준비위원장 이일선 스님은 제주4.3 발발 원인이 된 ‘3.1기념행사 제주도위원회’의 선전동원부에 소속돼 활동에 참여했다. 제주위원회는 1947년 3.1절 기념행사를 전도민의 행사로 치르기 위해 구성한 제주도의 관공서와 사회단체, 교육계 등이 망라된 조직이었다. 3.1절 기념행사는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준비를 주도했다. 제주불교의 이일선 스님은 민전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일선 스님은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의 사회를 맡았으며, 안세훈 현경호와 함께 의장단에 선출됐다.

당시 제주 민전의 활동내용을 보면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3.1절 기념행사의 평화적 진행, 민생문제 해결책 제시 등을 논의하고 의견을 표명했다.

미군정은 3.1절 행사 때 시위를 불허한다는 등으로 민전과 이견이 있었다. 민전 의장단과 미군정 당국은 몇 차례 협의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3.1절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제주북초등학교에 제주읍·애월면·조천면 3만여 주민이 모였다. 행사가 끝난 뒤 시위 도중 경찰이 주민 6명을 총으로 사살하면서 제주4.3의 도화선이 됐다.

민전 활동에 적극 참여한 이일선 스님 이외에도 원문상 스님은 2.7사건 단독선거 반대에 참여 했으며, 이세진 스님은 4.3항쟁 발발 이후 입산해 무장대 수뇌부에서 활동했다. 또한 제주불교교무원은 3.1사건의 희생자 유가족 조위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제주4.3으로 인한 불교 피해
제주불교 또한 제주4.3으로 인한 인명 및 사찰의 손실이 막대했다. 광복시기 제주불교 사찰로 기록이 남은 곳은 82곳이지만 아직도 전 사찰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제주불교사연구회의 2004년 조사 결과만 있을 뿐이다. 올해 재조사한 결과, 다수의 증언자들이 더 이상 당시를 증언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 빨리 82곳 사찰 전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제주불교사연구회는 35개 사찰 및 14개 사찰 소속 스님 16명의 피해를 조사해놓았다. 35개 피해 사찰 중 34개 사찰은 토벌대에 의해, 1개소는 무장대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피해 상황별로는 강제 매각을 당해 사찰을 잃어버린 경우 1개소, 사찰 당우의 일부가 소각당한 곳이 3개소, 사찰 내 모든 전각을 다 불태운 경우가 18개소, 사찰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파옥한 곳이 9개소, 폐허가 돼버린 곳이 4개소로 조사됐다. 소개령 발령 이후 사찰 전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불을 지르거나 파옥시킨 경우와 소개된 이후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폐허가 돼버린 경우이다.

스님의 피해는 16명이 조사됐다. 물론 스님이 아닌 사찰 소속의 인명 피해도 있었다. 가해자는 모두 토벌대이다. 피해 시기는 제주4.3과 마찬가지로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초토화 작전 시기에 집중돼있다. 사찰 경내에서 총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2.7사건 및 3.1사건, 보도연맹 관련 등의 이유로 예비 검속했고, 산채로 돌을 묶어 바다에 수장 혹은 집단학살 과정 등에 의해 스님들이 살해당했다. 수장과 집단학살은 정식재판에서 죄를 묻지 않고 군경이 임의로 인명을 살상한 불법적인 일이다.

제주 4.3사건으로 사망한 스님들은 조선불교혁신 제주도스님대회 준비위원장을 비롯, 관음사 주지 스님 등 당대 제주불교 활동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한 스님들이다. 

피해 상황별로 정리해 보면, 수장당한 스님은 이일선·이세진 등 2명, 사찰 경내서 총살당한 스님 5명, 경내서 죽창에 찔려 사망한 스님 1명, 집단 처형 4명,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스님 1명이 있다. 행방불명 스님 1명과 예비검속 당한 스님 1명은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외에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도망간 스님 1명이 있다.

구좌읍 함덕리에 있던 외꼴절 피해 사례가 있다. 외꼴절은 제주4.3으로 폐사된 이후 복구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사찰이다. 외꼴절은 700평가량 규모에 40~50평 초가 법당과 요사채, 정자 등이 있는 사찰이었다. 외꼴절은 함덕에서 대흘로 가는 외곽인 외꼴 지경에 있어 외꼴절이라 한다. 주지 신홍연 스님은 지역 경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것으로 증언됐다. 신홍연 스님은 배추와 무, 시금치 등 새로운 농작물의 씨앗을 들여오고 신도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한편, 농사법을 함덕리 주민들에게 보급했다.

1948년 5.10총선거에서 제주도는 선거를 거부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효 선거구를 만들었다. 당시 함덕리 마을 주민들도 대흘리 지경으로 피신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거부했다. 선거 무렵인 5월 13일, 무장대는 함덕지서를 습격해 불태웠다. 5월 중순부터 군인 및 육지부 경찰들이 대거 제주로 들어왔다. 그해 6월 제주주둔 미군 사령관인 브라운 대령은 “제주도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8월에는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가 “최대의 토벌전이 있을 것”이란 경고내용이 포함된 포고문을 발표했다. 10월 17일 송요찬 9연대장은 제주 해안서 5㎞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시 이유를 불문하고 총살하겠다고 발표했다. 

1948년 10월 말 무장대는 제주읍 삼양지서와 조천면 관내 조천지서·함덕지서를 일제히 공격했다. 11월 1일 토벌대는 함덕리 주민들을 함덕초등학교에 모아놓고 무장대를 돕는 이를 색출한다며 총살했고, 무장대가 습격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군인들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폭행과 총질을 했다. 이 과정서 마을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했고 함덕리 청년 대부분이 입산했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신홍연 스님은 무장대에게 밥을 해먹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장대는 사찰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11월 중순경 법당 내 부처님 뒤에 은신한 무장대 수십 명이 토벌대에 발각됐다. 토벌대는 곧바로 스님을 끌고 가 나무에 묶고 마을 민보단원들에게 총으로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민보단원 전원이 스님을 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해 사격하자, 토벌대는 다시 죽창으로 스님을 찌르라고 강요했다. 결국 민보단원들은 울부짖으며 스님을 죽창으로 찔렀다고 한다. 토벌대가 떠난 뒤 8~9시간 가까이 스님은 살아 있었으며, 가부좌를 한 채 염불하면서 숨을 거뒀다. 무장대는 스님의 시신을 고구마 줄기로 감아 숨겨놓았고 그 위치를 편지에 적어 가족에게 전해줬다. 상좌 김두전 스님이 제발 몸을 펴십사하고 기도해 가부좌로 입적하신 스님의 몸을 펴 매장했다. 외꼴절은 이 시기인 11월 20일경 토벌대가 불 살랐다. 절과 함께 인근 대흘리 마을도 함께 토벌대가 방화했다.
 

기억사업 및 평화정착 필요
올해는 제주4.3 70주년이다. 끔찍한 피해와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이유는 과거의 아픔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제주4.3 역사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시기이다. 따라서 제주불교는 제주불교만의 제주4.3 기억사업이 필요하다. 제주도민과 제주역사를 함께하는 제주불교 활동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제주불교계에 사업 세 가지를 제안한다.

1) 제주4.3 사건에 대한 불교적 치유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자비명상을 위한 활동의 장이 필요하다.

2) 제주불교는 제주4.3을 추모하고 위령하기 위한 시설을 건립해야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성 회복과 평화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3) 관음사 경내에 있는 제주4.3 유적지를 상세히 조사하고 발굴함으로써 영역을 획정하는 등 사업이 필요하다. 현재 지표조사로 보이는 유적 규모가 상당하며 잘 보존돼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보존해야 한다. 관음사 유적지는 제주4.3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관음사를 활용한 제주4.3 역사의 기념 활동과 이를 활용한 사업이 필요하다.
 

한금순 교수.

한금순 교수는?

1960년 제주 출생이다. 제주 보리도량 주지 오성 스님과의 인연으로 제주불교사연구회에 참여했고, 제주대 사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제주불교사 전문 연구가로 제주대 사학과 외래교수, 제주4.3유적지관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성격’ 등 논문과 〈한국 근대 제주불교사〉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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