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전 상서] 23. 반계 이용현의 편지
[초의 전 상서] 23. 반계 이용현의 편지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12.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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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로 초의와 교류한 지방 관리

이용현(李容鉉)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추사·초의와 교유했다. 그의 호는 반계(磐溪)다. 그의 행적은 일부분만 알려졌는데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니 〈순조실록〉15권, 1832년(순조 12년) 2월 29일 기사에 “전 선전관(宣傳官) 이용현(李容鉉), 의병장 송지렴(宋之廉) 등과 함께 윤제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들어갔는데, 회(灰) 2천여 석을 운반해 한쪽 편에다 쌓아 화살과 탄환을 막고, 겸하여 성을 넘을 사닥다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굴토군(堀土軍) 11명에게는 몸을 막을 수레를 만들어 주어 일시에 아울러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또 〈철종실록〉 3권, 1852년(철종 2년) 12월 10일에 “서헌순·이용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서헌순(徐憲淳)을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이용현(李容鉉)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로” 재임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이용현은 이근주의 아들로, 선전관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관리이며 한 때 전라 우수사와 제주목사를 역임했던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초의를 만난 건 어느 때였을까. 아마 그가 제주목사로 재임했던 1843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초의는 추사의 귀향지 제주를 찾았고, 이곳에서 반년을 머물다가 대흥사로 돌아왔기에 이용현은 이때 만났을 터이다.

추사·초의와 교류했던 이용현
전라·경사 등 지방관으로 활동
추사의 제주 귀향시절에 조우
“좋은 차 나눠달라” 청하기도


이보다 앞서 제주목사를 역임했던 인물은 이원조(李源祚, 1792~1872)이다. 그의 재임 기간은 1841~1843년 6월이다. 그러므로 이용현은 이원조의 후임으로 부임돼 1843년 6월에서 1844년까지 제주목사로 재직했던 것이다.

이용현과 초의는 제주에서 만난 이후에도 교유가 이어졌는데 이는 그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된다. 더구나 그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2통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1849년 6월에 보냈고 같은 해 윤달에 보냈다. 이 무렵 이용현은 전라우수사로 재임 중이었다. 우선 1849년 6월의 편지를 살펴보자. 이 편지의 크기는 38.1×25.4cm이며 그 내용은 이렇다.

오랫동안 막혀 있어 그리웠습니다. 범해 스님이 와서 전해 준 그대의 편지를 펴보니 위로됨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됨을 보니 연하의 기운을 띠고 있어 찬찬하고 자세하여 여유가 있으니 선생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머문 곳이 일미의 맑고 아름다운 것임이랴. 그릇을 만드는 노역의 성과를 알리고 기와를 덮는 날을 기약하니 만약 부지런한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이르겠습니까. 그러나 한 그루의 소나무도 범할 수 없습니다. 공사(公私) 간에 요행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상황은 근래 감기와 기침으로 고통스럽고 민망한 중에도 오직 돌아가기로 기약한 날이 이미 다 되어 다행이라 여겨질 뿐입니다. 보내주신 차와 과일은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라 여깁니다만 과일이 도리어 차보다 많음을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어찌 차 봉지 수가 하나같이 과일 덩어리만 못합니까. 정말로 감사하지만 이어지는 공은 탄식할 만합니다. 돌아보니 이곳에서 아직 돌아가지 않을 때이니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하산하시어 서로 보며 막힌 것을 풀어도 해 되지 않는 좋은 일일 겁니다. 비록 힘들겠지만, 반드시 이에 부응하여 의자 쓸어 놓기를 바라며 (스님이)올 때 차를 넉넉하게 포장하여 주머니에 담아 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모두 남겨두었다가 뵙고 말하겠습니다. 오직 병고에 의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어떻습니까.
1849년 6월 8일 반계옹 이용현. 김 250폭을 땀과 함께 보냅니다.
 
久阻嚮戀 海?來傳手滋 披慰沒量 而第見其爲人 帶得烟霞氣 安詳有餘 可知爲先生弟子 綎審炎威中啓處一味淸休者乎 陶役告功 覆瓦有日 如非勤念 何以及此 而不犯一箇松木云 公私之幸 如何可言 拙狀近患感嗽 苦悶中 惟以歸期已滿 爲幸耳 來茶果可認情? 而果反多於茶 非其所望 何不以茶貼之數 一如果綏乎 良謝之餘 繼功可慨 顧此未歸前早 一日携툵下山 相對圻阻 不害爲好事 雖勞 必副此掃榻之望 而來時印茶 優數入삋 如何如何 自餘都留面展 惟冀勿托病故 如何如何 己酉 流月 八日 磐溪翁 海衣二百五十幅 伴汗

위 편지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우선 대흥사 사중에서 임의대로 소나무를 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편지에 “한 그루의 소나무도 범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 대목이다. 소나무와 관련된 송사는 1841년 10월에 소치 허련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언급된 바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소나무를 해친 것은 단지 소란하게 논할 수 없습니다. 비록 영읍의 도움이 약간에 있다할지라도 승가에서 답하고 행하는 것을 보면 공적인 것을 빙자하여 사적으로 행하여 송추(松楸, 산소 가에 심은 소나무)를 함부로 잘랐고 해변은 엄하게 금하는 것인데 이처럼 함부로 하였으니 약간의 무리가 결코 마음먹은 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결백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 하루 저녁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하게 되면 대수롭지 않게 큰 절이 폐막(고치기 어려운 폐단)에 이를 것입니다.

而松木之亂犯 不可但以駭然論 雖有營邑之許助 看作僧家之應行 憑公行私 亂斫松楸 海邊重禁 若此蔑然 若箇輩 決不可尋常處之 方欲發廉之際矣 一夕陪話於對軒之次 尋常語到大寺弊踵

소치의 편지 내용에 해변의 방풍용 소나무나 무덤가에 심은 소나무는 마음대로 벨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엄격히 법으로 금지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흥사에서 소나무를 자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송사를 무마하기 위한 초의의 노력은 이 편지의 행간에도 드러난다. 아무튼 이 송사를 무마하기 위해 초의는 소치의 인맥을 동원한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소치가 초의에게 요청한 것이 초의차(草衣茶)였다. 이미 초의차는 경향에 이름이 있는 명사가 원했던 차였고 지방 관리도 얻고자 했던 차였다는 것이다.

이용현도 차를 즐겼던 관료였다. 초의가 그에게 차와 과일을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도 “보내주신 차와 과일은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라 여깁니다만 과일이 도리어 차보다 많음을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어찌 차 봉지 수가 하나같이 과일 덩어리만 못합니까”라고 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러기에 과일보다 차를 더 원하는 이용현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또 다른 그의 편지는 1849년 윤달에 보낸 안부 편지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까마득히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설령 일이 많아 번거롭고 바쁘더라도 힘든 정무 속에서도 회상합니다. 마음으로 계획할 즈음에 모든 사정을 알았으니 하물며 손해가 날 것은 없을 것이니 정말로 위로가 됩니다. 다만 생각건대 구운 기와(燔瓦) 만 장은 많다고 생각하여 괴로울 것입니다. 소나무와 잡목을 함부로 벨 수 없고 불쏘시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는 관청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이 말을 방심하여 버릴 수 없을 따름입니다. ‘시냇물은 비파소리요, 송풍은 거문고 소리(澗瑟松琴)라, 여린 푸름, 새가 우네(鳥啼뗷綠)’은 모두 시를 짓는 데 도움이 되는 재료입니다. 걸출한 시구를 하나하나 기록해 보이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단오절에 부채 한 자루를 보냅니다. 파리를 쫓는 도구로 삼으시길. 햇차는 만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차의 맛을 자주 나눠 주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흔들리고 빠뜨려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1849년 윤월 20일 반계

春盡夏啓 漠然無聞 雖在륲劇 懷想政勞 際接心劃 備認爲워無損 良慰 第念燔瓦万張 想多爲惱也 能不犯松雜木 以柴草爲之否 顧此典守也 故不得放心又此說去耳 澗瑟松琴 鳥啼뗷綠 俱助詩料 如有傑句 一一錄示 如何如何 節?一把送似 以爲揮蠅之資也 新茗想製 優數分味 是望是望 自餘擾漏 不究 己酉 閏月 卄日 磐溪

이 편지는 그가 전라우수사로 재임할 때 초의에게 보낸 것인데, 대흥사에 “구운 기와(燔瓦) 만 장은 많다고 생각하여 괴로울 것”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바로 대흥사에 구운 기와 만 장을 요구한 것이다. 조선 후기 대흥사에 부과된 토공(土貢)은 대개 차, 동백기름 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운 기와도 공출되었음을 드러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나무와 관련된 송사는 대흥사 사중이 늘 연루될 소지가 많았던 듯한데, “소나무와 잡목을 함부로 벨 수 없고 불쏘시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는 관청의 법입니다”라고 한 점이다. 이 밖에도 이용현은 “햇차는 만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차의 맛을 자주 나눠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초의가 차를 만든 시점이 대략 입하(立夏)라는 점에서 이 편지는 5월 무렵에 보낸 것이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초의에게 시를 요구한 점이다. 당시 선비의 소통언어는 시였다. 그러기에 그도 “시냇물은 비파소리요, 송풍은 거문고 소리(澗瑟松琴)라, 여린 푸름, 새가 우네(鳥啼뗷綠)는 모두 시를 짓는 데 도움이 되는 재료입니다. 걸출한 시구를 하나하나 기록해 보이는 듯한데, 어떻습니까”라고 하여 초의에게 화답 시를 요청했다.

아무튼 이용현의 편지는 전라우수사로서 대흥사에 기와 공출을 요구했다는 점, 소나무와 관련된 관청의 법을 대흥사에 통보했으며, 초의차를 걸명(乞茗)하는 편지였다. 
초의에게 보낸 그의 걸명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걸명과는 결이 다르다 할지라도 차로 우환을 씻고자 했던 이용현의 뜻은 분명했다.

아무튼 그가 지방관으로서 공출과 송사를 언급했지만 초의에게 부채를 보내는 미덕은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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