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박원자 지음/동국대출판부 펴냄/1만 8천원

‘청정 수좌의 표상’ ‘정화불사(淨化佛事)의 기수’ ‘무처무시선(無處無時禪)의 수행자’ 

이는 모두 학월 경산(鶴月 京山)(1917~1979) 대종사의 수행 이력을 담은 수식어이다. 또한 스님의 63년 일생을 오늘날 후학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회고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3대와 9대 총무원장, 동국대 이사장 역임
동국대 역경원 개설, 종비생 및 군승제도 확립 등 큰 치적  
1975년 불교계 숙원인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에 큰 공헌 
“출가자 본분은 수행이지, 큰 절 차지하는 것 아니다” 강조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으로 인해 허기지고 혼란한 이 땅에 불교가 중흥하기를 발원했던 수행자” “선·교·율의 정립이 수행 근간이자 교단 화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믿고, 그 실천을 위해 종단을 떠나지 않았던 선지식” “종단이 비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할 때마다 불려 나와 화합으로 종단을 일으켜 왔던 원력보살, 경산 스님” “한평생 종단과 교단을 선방으로 삼고 화합을 화두로 삼아 정진한 청정 비구” 등등. 이판과 사판을 아우르는 완벽한 이력의 수행자라 평가 받고 있는 경산 스님.

이런 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이 3년전 부터 문도들과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은 끝에 이번에 출간한 <청정 율사, 경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은 평생 불교 중흥의 원력을 실천하고 정화 불사의 완성과 종단 화합의 성취를 위해 앞장서며, 묵묵히 수행자의 길을 걸은 경산 스님의 일대기를 조망한 책이다.

자광 스님은 “스승인 경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차례 역임하는 등 종단 핵심에 있었지만, 끝내 교구 본사를 자신의 문중 절로 만들지 않았다. 제자들이 스님께서 노년에 머무실 만한 교구본사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문도들 역시 교구본사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건의하자, 출가자의 본분은 수행하는 것이지, 큰 절을 차지하는데 있지 않다며 오히려 나무랐다고 회고했다. 자광 스님은 “그래서 경산 스님 제자들은 거점 사찰이 없어 뿔뿔이 헤어졌다. 문도회 구성도 안돼 있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는 스승의 본심을 알기에 제자들은 서운해 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 스러워 한다. 작금의 시대에 이 가르침을 우리 한국불교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책을 출간한 가장 큰 목적”이라고 밝힌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 1장 <출가와 수행>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나라를 빼앗긴 환경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불교에서 그 출구를 발견하고 출가를 결심한 후 제방의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을 모시고 정진한 내용을 담았다. 2장 <한국불교의 정화불사 현장>은 ‘정화불사’라는 시대적 과제를 접하자, 그 험난한 파도에 온몸을 던져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종회의장 등의 행정 수반으로서 종단 발전을 위해 일로매진한 시기의 이야기다. 제 3장 <무문관 수행>은 총무원장직서 물러나 천축사 무문관서 4년간 정진한 후 회향하기까지의 내용을 전한다. 마지막 제 4장 <종단의 화합과 포교불사>는 무문관 회향 후 다시 총무원장으로 복귀해 정화의 완성과 종단의 안정을 발원한 현장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입적하기까지를 조명했다. 

책 속에는 경산 스님이 수행자로서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대목도 대거 수록돼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큰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용서할 줄 알아야 그릇이 큰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을 쓸데 없이 비난 말고 자비의 눈을 갖고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에 힘쓰라”고 틈만 나면 후학들에게 강조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평생을 청정 비구, 율사, 선사이며, 정화불사에 헌신해 한국불교 정화의 기수 역할을 했고,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큰 강물의 발원지에 서 계신 경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고 있다. 더구나, 여러 선지식의 책들을 기획·정리해 엮은 박원자 작가가 경산 스님이 생전에 일생을 회고한 이야기를 담은 테이프를 기초자료로 삼아 쓴 책이어서 스님의 목소리를 생생하고 진솔하게 느낄 수 있다.

역사가 요구하고 불보살이 증명하는 불사만을 하겠노라 선언하고 정화의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정화가 완성되고 종단이 안정되는 날 산사의 평범한 수행자로 돌아가리라 하고 걸망을 풀지 않았던 스님이 불과 세수 예순셋에 끝내 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복잡한 종단의 현장에서 열반하신 지 약 40년이 지났다. 

이 책을 통해 묵묵히 정화불사와 종단 화합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학월 경산 스님의 대승적인 삶과 일상에서 공부하자. 각자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입하는 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고 참선하는 것이다. 평소 계율을 지키며 생활하는 그 자체가 그대로 도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독자들의 가슴에 오롯이 깊게 새겨질 것이다. 
 

학월 경산 스님.

▲학월 경산 스님(1917~1979)은?

한국불교서 청정 수좌의 표상이자 정화불사(淨化佛事)와 통합종단을 주도한 스님은 1917년 6월 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 황수원서 태어났다. 20세 이던 1936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다가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했다. 유점사 불교 전문 강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금강산 마하연사서 정진을 시작, 정혜사 만공 선사·칠불암 석우 선사·통도사 경봉 선사·상원사 한암 선사·범어사 동산 선사·미래사 효봉 선사를 모시고 안거를 나며 정진했다. 1954년, 비구종단의 정화가 시작되자 정진처를 떠나 입적할 때까지 대한불교조계종 정화불사의 기수로 불리며 종단과 교단의 발전에 헌신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3대와 9대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동국대에 역경원을 개설, 종비생 제도와 군승 제도를 확립했다. 1975년, 불교계의 숙원사업인 ‘부처님 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성취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 

계율의 수호와 종단의 화합·사부대중의 화합을 평생 화두로 삼으며, “교단의 생명은 계율이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라고 역설하였다. 

평소 ‘심즉시불(心卽是佛)’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주요 가르침으로 대중을 교화한 스님은 종단 화합을 위해 애쓰던 중 1979년 12월 25일, 법랍 44세이며 세수 63세에 입적했다.

1962년 1월 22일, 불교재건위원회 구성에 앞서 문교부에 모인 비구와 대처 양측 대표들(사진 맨 왼쪽이 청담 스님, 왼쪽서 세 번째가 경산 스님)
‘부처님 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기념하는 행사(사진 왼쪽서 두 번 째가 경산 스님)
1963년, 동국대 이사장 취임 후 남산 팔각정에서(왼쪽부터 상좌인 현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 가운데 경산 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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