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피스메이커’ 창립자… 35년 넘게 봉사 펼쳐

버니 글래스만. 사진출처=트리사이클

긴 머리와 슬픈 눈, 늘 물고 있던 담배. 세계적 선 수행 지도자 버니 글래스만(Bernie Glassman)은 전통적인 선 수행자라고 보기에 어딘가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렬하고도 자비로운 불교 선구자였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CNN은 지난달 4일 79세 나이로 타계한 글래스만의 업적을 조명했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글래스만은 불교 공동체 젠 피스메이커(Zen Peacemakers)의 창립자로서, 인정받는 선 지도자이자 불교 선구자다. 젠 피스메이커는 전 세계 25개 지부를 두고 약 1200명에 달하는 신도를 보유한다. 서구 불교 커뮤니티로서는 꽤 큰 규모다. 헐리우드 스타와 함께 간화선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해 미국에서 간화선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지난달 별세, CNN 업적 조명
사회적 기업 창립·약자 지원
약물중독자와 장애인 등 고용
미국사회선 수행 전파 선구자

사회복지사이자 때론 광대로
빈곤층 돕기 위한 활동 펼쳐


특히 그는 ‘쉼 없는’ 자비 보살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불교 정신을 기반으로 빵집을 운영하면서 사회봉사에 몰두, 결국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1982년 젠 피스메이커를 창립할 당시 함께 연 빵집은 ‘열린 고용’을 통해 약물 중독자, 장애인 등을 고용했다. 수익금은 공익 재단에 기부해 에이즈 환자를 위한 주택 제공, 사회복지 서비스 등에 활용됐다. 훗날 1000만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해 세계적인 ‘불교 사회적 기업’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시설인 젠 호스피스(Zen Hospice) 설립자 프랭크 오스타세스키(Frank Ostaseski)는 “글래스만이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었다”며 “그는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를 채워주고, 정신적 생계를 유지시켜줬다”고 치켜세웠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대학살로 유대인이 강제 수용됐을 때는 그곳에서 그들을 위한 영적 치료도 진행했다. 또한 35년 가까이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에도 임했다고. 

CNN은 “글래스만은 항상 주변을 둘러보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며 “많은 미국 불자들이 사회참여보다 자기계발을 선호할 때 글래스만은 마네킹명상(mannequin meditation)을 벗어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선 센터를 ‘공기 좋은 곳’에서 혼잡한 도시 거리로 옮겨 붐비는 공원에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글래스만은 2년 전 뇌졸중을 앓으면서도 불교 명상 전파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명상’을 삶을 치유하는 근본 방법이 아닌 ‘생활’로 가르치는데 힘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세 번째 아내는 “그는 명상이 삶으로부터 피난처가 아니라는 사실에 매우 확고했다”고 회고했다. 

글래스만은 생전 인간들을 배가 부르고 목구멍이 좁은 ‘아귀(hungry ghost)’의 존재로 봤다고 한다. 불교 윤회 사상에 입각하면, 생전 탐욕에 쌓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은 후 환생을 할 때 인간계나 축생계가 아닌 아귀계에서 태어난다. 이 중 아귀는 항상 굶주림을 느끼는 귀신(또는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즉 글래스만은 인간을 ‘욕망에 가득 차 늘 불만족한 존재’로 보고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평생 봉사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글래스만은 자비행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선 수행’을 전파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 처음 명상이 유입될 당시 미국인들은 명상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겼다고. 그런데 그가 아시아권의 불교 명상법과 미국인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버클리 선 센터의 호잔 앨런 세나 우케(Hozan Alan Senauke)는 “(미국에서) 불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어느 정도의 빚이 있다”고 평가했다. 

CNN에 따르면 그는 1996년 “우리 주위의 다양한 갈망과 존재를 보는 것은 문자 그대로 형성적인 경험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불교언론 ‘트리사이클(tricycle)’ 또한 버니 글래스만을 ‘영적 수행과 사회운동에 대한 열정을 함께 실천한 선구자’로 평가했다. 트리사이클에 따르면 글래스만은 사회복지사이자 엔지니어, 그리고 광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70세이던 2009년 ‘젠 하우스’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가난한 이웃들 가까이에 주거형 다르마 센터를 지어 선 수행자들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글래스만은 이외에도 ‘삶을 살아가는 선스승의 교훈’ ‘선의 가르침’ ‘평화를 이루기 위한 선’ 등의 책을 다른 선수행자들과 함께 썼다.

트리사이클은 “수년간 글래스만의 친구로서 그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영광이었다”고 그를 추모했다.
 

세계적 선 수행 지도자 버니 글래스만(Bernie Glassman)은 생전 긴 머리를 하고 담배를 즐겨 피웠다. 외형은 전형적인 선 수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서양사회에 불교를 전파한 선구자로 꼽힌다. 사진출처=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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