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만행과 운수 행각

만행길에서 법 묻다가 깨달아
운수행각은 여행아닌 ‘보임’

해제를 하면 납자들은 너도나도 걸망을 지고 정처 없는 여정(旅程)에 오른다. 수행의 여정, 공(空)의 여정이고 무집착의 여정이다.

 

선종 사원에는 1년에 두 번 해제(解制)가 있다. ‘재계(齋戒)를 풀다.’ 즉 3개월 금족의 규제를 풀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제를 하면 납자들은 너도나도 걸망을 지고 정처 없는 여정(旅程)에 오른다. 수행의 여정, 공(空)의 여정이고 무집착의 여정이다. 그것을 ‘만행(萬行)’ ‘행각(行脚)’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유행(遊行)’이라고 한다. 선승들의 오도기연(悟道機緣)을 보면 적지 않은 선승들이 만행하면서 법을 묻다가 깨달았다. 따라서 만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고, 법을 묻기 위한 수행의 행각이다. 곧 절차탁마이다.

만행, 행각은 해제 날부터 시작된다. 해제 날에 행해지는 해제의식에서 하이라이트는 주지(방장)의 해제 법어이다. 이것을 정점으로 90일간의 안거는 종료된다. 이어 점심공양이 끝나면 주지(방장), 감원·수좌·유나 등 총림의 중요 소임자들은 떠나는 대중을 위하여 차(茶) 공양을 낸다. 차공양이 끝나면 소임자와 문도 등 일부만 남고 모두 행각 길에 오른다.

오늘날 만행은 여행의 하나지만, 당송시대 행각(만행)은 곧 행각 청익(行脚請益, 법을 묻는 행각)이고, 참선 문법(參禪問法)의 하나였다. 두루 천하의 선지식들을 역참(歷參), 편력(遍歷)하면서 법을 묻는 것이 당송시대 행각의 본래적 의미이다.

불교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구법 행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행각이다. 부사의한 사사무애의 법계로 들어가기 위하여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편력(遍歷)ㆍ참방한다. 지난한 여정(旅程) 속에서 갖가지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미륵보살을 만나 일탄지경(一彈之頃)에 깨달음을 이룬다. 그렇게 긴 여정은 마무리 된다.

납자들의 행각도 이와 같다. 유명한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 바둑판(法談의 바둑판)을 펼쳐 놓고 고수로부터 한 수(一着子)를 배우는 것, 즉 절차탁마하는 것이 행각의 본래 의미이다. 선어록에는 종종 ‘짚신 값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헛된 행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안거 동안 공부한 것을 점검ㆍ테스트해 보고 탁마하기 위한 것이지 여행을 위한 행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각의 의의에 대하여 <조정사원(祖庭事苑)> 8권 ‘잡지(雜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행각(行脚)이란 고향(본사)을 떠나 멀리 천하를 편력하는 것을 말한다. 정루(情累, 정과 속박)로부터 벗어나 스승과 벗[師友]을 탐방하며, 법을 구하고 증오(證悟)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편력(遍歷) 행각을 귀중하게 여긴다. 선재동자는 남쪽으로 가서 법을 구하였고, 상제(常啼, 常啼普薩)는 동쪽으로 가서 청익(請益, 가르침을 청하는 것)했으니, 이것이 곧 선성(先聖)의 구법 방법이다. 영가(永嘉) 선사가 말하기를 강산을 다니고 스승을 찾아서 도를 묻고 참선한다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산천(山川)과 도량, 그리고 인간에 정(情)이 들게 된다. 그러나 납자에게 정은 금물이다. 행각을 통해서 정(情)과 애착, 집착 등 속진으로부터 벗어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한다.

2. 행각안(行脚眼)

선어 가운데 ‘행각안(行脚眼)’이라는 말이 있다. ‘행각을 통해 얻어진 안목’이라는 뜻인데, 곧 남다른 안목, 탁월한 지견(知見)을 가리킨다. 천하를 행각하면서 수많은 선승들과 일전(一戰)을 통해 터득한 안목이므로[行脚眼] 그 기략(機略)은 전광, 석화와 같고, 그 안목은 사방으로 막힘없는 통방작가(通方作家)라고 할 수 있다.

당 중기의 선승 약산유엄(藥山惟儼ㆍ745~828)은 행각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행각안(行脚眼)을 갖추어야 한다(須具行脚眼始得, <전등록> 14권 약산유엄 章)”고 했는데, 행각하면서 많은 이들과 문답해 보아야만 지견과 안목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암자(庵子)에서 닦은 ‘독살이 안목’ 가지고는 한 산문의 종장(宗匠)이 될 수가 없다. 임제 같은 고수를 만나면 얼굴이 빨개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실전에서 얻어진 안목이라야 힘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무리 헤엄을 잘 친들 1미터 이내이다.

경청 화상도 행각을 중시했다. “무릇 행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줄탁동시의 안목과 줄탁동시의 기용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납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여, 안목을 갖추고 행각하지 않으면 소득이 없다고 말하였다.

향림 화상도 시중법문에서 “무릇 행각하여 선지식을 찾아다닐 때는 안목을 갖추어서 흑백을 구분하고 심천(深淺)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역시 안목이 없는 상태에서 행각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소한의 안목은 갖추고 나서 행각해야만 절차탁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암록> 31칙 마곡진석(麻谷振錫) 평창에서 원오극근은 “고인이 행각할 때는 여러 총림(선종 사원)을 두루 다니면서 오직 이 일만을 생각했다. 저 목상(木床, 법상) 위의 노화상이 과연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古人行?, 遍歷叢林, 直以此事욇念, 要辨他曲錄木床上老和, 具眼不具眼)”라고 말하고 있다.

조주 선사(778~879)는 120세를 살았다. 그는 이미 깨달았지만 60세에 다시 행각의 길에 올라 80세 때까지 행각했다. 일곱 살 아이라도 나보다 안목이 뛰어나면 배우고, 100살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가르치겠다는 서원(誓願)으로 행각했다고 한다.

조주 선사를 일컬어 ‘천하 조주’ ‘조주 고불(古佛)’ ‘구순피선(口脣皮禪, 막힘없이 禪理를 설파)’이라고 하는 것은 행각을 통해서 얻은 행각안(行脚眼) 때문이었다.

선어록에는 ‘갱참삼십년(更參三十年)’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30년을 더 참구해야 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30년이란 선승으로서 수행해야할 기본적인 세월이다. 적어도 선승이라면 30년 정도는 공부, 행각해야만 정법의 안목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방장의 자리에 올라가서 납자들을 지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수행각(만행)이 곧 보임이고, 일사일지(一事一知), 일기일회(一機一會)가 경험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는 상사각(相似覺)이 있다. ‘깨달음 비슷한 것’을 말하는데, 적지 않은 수행자들이 상사각, 사이비각(似而非覺)을 가지고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환영 등 조금 이상한 경계를 맛보면 거기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행각을 통하여 절차탁마하지 않으면 지견 없는 암선(暗禪), 부딪치면 깨지는 유리병자선(琉璃甁子禪) 신세를 면치 못한다.

송대를 대표하는 선승 대혜종고(大慧宗苑ㆍ1089~1163)는 17세에 입산했는데, 30여 년만인 49세 때 처음으로 항주 경산사(徑山寺) 방장(주지)이 되어 개당설법(開堂說法)했다.

3. 객승의 여비(旅費)는 짚신 2-3결례 값

총림에서는 행각(만행)하는 납자(객승)들에게 약간의 노자(路資ㆍ여비)를 준다. 액수는 보통 짚신 2~3켤레 값 정도로 오늘날로 치면 고무신 2~3켤레 값이다. 그것을 총림에서는 ‘초혜전(草鞋錢ㆍ짚신 값)’이라고 하는데, 짚신 두 세 켤레면 다른 절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선원이든 객승이 오면 통상적으로 짚신 두세 켤레 값만 준다.

초혜전과 관련하여 <임제록> 13~24단에는 의미심장한 법문이 나온다. 임제 선사는 “천하를 행각하면서 허송세월한다면 행각할 때 여기저기서 받았던 짚신 값을 내 놓으라”고 다그친다.

“여러분! 참으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불법은 매우 심오하지만 알 수는 있소. 산승은 종일토록 그대들을 위하여 설파해 주지만, 학인들(수행자)은 관심이 없소. 천 번 만 번 밟고 다니면서도 도무지 깜깜하오. 아무런 형체도 없지만 분명하고 뚜렷한 이것을 학인들은 믿지 못하고 언어문자(사량분별) 위에서 이해하려 하오. 나이가 50이 넘도록 단지 송장을 짊어지고 여기 저기 천하를 쏘다니고 있소. 반드시 ‘짚신 값을 갚아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오.”

임제 선사의 준엄한 일갈(一喝)이다. 진정으로 수행하지 않고 빈둥빈둥 제방(諸方)을 다니면서 시간을 죽인다면 그는 짚신 값만이 아니고, 무노동으로 공양한 밥값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수행하는 납자들은 깊이 새겨야할 법문이다.

초혜전(草鞋錢)을 ‘양문전(兩文錢)’이라고도 한다. ‘동전 두 닢’이라는 뜻인데, 근래 우리나라 선원의 해제비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운수행각을 한답시고 신발이나 떨구는 납자를 칭하여 ‘백답승(白?僧)’이라고 한다. 백답(白?)은 ‘헛된 걸음’을 뜻하는데, 오도(悟道)에는 별로 생각이 없는 납자를 가리킨다. 여행이나 할 뿐, 구도행각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야반승(野盤僧)은 산이나 들녘에서 노숙하는 납자로, 진정으로 운수행각하는 납자를 가리킨다.

4. 객승의 예의범절

행각승(객승)의 예의범절에 대하여 <선원청규> 1권 ‘단과(旦過)’에는 “산문에 들어서면 먼저 단과료(旦過寮, 客室)의 소재를 묻되, 단과료에 들어가면 짐을 풀어 놓은 다음 위의(威儀)를 갖추어 지객료(知客寮)에 가서, ‘잠도(暫到, 객승> 상간(相看, 문안)이오’라고 말하라. 지객스님이 나오면 3배하고 나서 하루저녁 묵고 갈 것인지, 괘탑(입방)하러 온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생략)”고 말하고 있다.

하룻밤 묵고 가는 객승(客僧, 행각승)은 ‘잠도(暫到, 잠시 온 스님)’라고 하고, 새로 입방하고자 온 객승은 ‘신도(新到, 새로 온 스님)’라고 한다.

그리고 객실(客室)을 ‘단과료’라고 부른다. ‘단과료(旦過寮)’란 ‘하루 묵고 가는 집’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저녁에 와서 아침이 되면 가야했기 때문이다. 청규에는 “신도(新到)든 잠도(暫到)든 객승은 단과료에서 3일 이상 묵을 수 없다. 괘탑(입방)하고자 하는 이는 괘탑하고, 잠도는 3일이 되면 다른 절로 가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운수 행각을 할 때는 반드시 도첩(度牒), 계첩(수계첩), 면정유(免丁由), 좌하유(坐夏由)를 꼭 휴대해야 한다. 도첩은 국가에서 발행하는 승려증이고, 계첩은 수계증명서이고, 면정유는 병역 및 노역면제증이고, 좌하유(坐夏由)는 전년도 하안거 증명서이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다른 총림에 가서 괘탑(掛塔, 입방)을 할 수 없다.

그 밖에도 운수행각하는 스님은 삼의일발은 물론이고, 산립(山笠, 삿갓)ㆍ주장자(柱杖子)ㆍ계도(戒刀, 작은 칼), 발낭(鉢囊)ㆍ양지(楊枝, 버드나무를 이겨서 만든 칫솔. 齒木이라고도 함)ㆍ조두(逗豆, 세정제로서 녹두 등 콩으로 만든 가루 비누)ㆍ정병(淨甁, 물병)ㆍ좌구(坐具, 앉거나 누울 때 까는 깔개)ㆍ여수낭(濾水囊, 물을 거르는 주머니. 여수라濾水羅, 녹수낭艾水囊이라고도 함) 등 20여 종은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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