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풍

와사풍은 중풍과 달라
여러 풍병 중 가장 가벼워
입 비뚤어지고 눈 안 감겨
치료에 4~5주 소요

 

지난 1999년부터 2000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허준〉을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무려 63.7%의 시청률로서 국내 사극 드라마 사상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원작은 〈소설 동의보감〉이다. 그 중에서 허준 선생이 선조로부터 인정받은 사건이 바로 와사풍에 걸린 왕의 처남(공빈 김씨의 동생)을 완쾌시킨 것이다.

어의였던 양예수가 먼저 진찰을 했는데, “얼마간 치료하면 나을 수 있겠는가?”라는 왕의 질문에 “이레면 차도를 볼 것입니다”고 답했다. 게다가 와사풍은 풍(風)이 혈맥 속에 들어간 병이기에 그리 큰 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풍이 골수에까지 들었다고 겁을 주기까지 했다.

어의가 치료하던 왕의 처남을 어떻게 해서 허준 선생이 맡게 되었나?

어의의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내의원 판관으로 있었는데, 바로 ‘정작(鄭私)’이라는 유의(儒醫)였다. 그는 혜민서에서 안면마비 병자를 나흘 만에 쉽게 완치시킨 허준 선생의 실력을 이미 보았기에 내의원의 총책임자인 도제조에게 확실히 치료할 수 있는 의원으로 허준 선생을 추천했던 것이다.

허준 선생은 병자를 진찰한 뒤 병의 근원이 ‘위장’이므로 우선 위장의 기능을 회복시킨 연후에 ‘뜸’으로서 병의 뿌리를 흩어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니 탕약도 어의가 쓰던 ‘청담순기탕(淸痰順氣湯)’이 아니라 위장을 다스리는 ‘양위이공탕(養胃異功湯)’이었던 것이다.

VIP 치료 중 허준 선생의 고충

병자가 왕이 가장 사랑하는 후궁의 동생이라는 위세를 믿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 약이 쓰다고 먹기를 거부하여 벼루를 던지는 바람에 허준 선생이 약과 먹물을 뒤집어쓰는가 하면, 병자가 던진 바둑판에 발등을 찍히는 일도 당했다. 게다가 허준 선생을 불신하고 치료를 거부하더니 언제까지 확실히 낫게 하겠다는 약조를 하라고 강요받는데, 허준 선생은 병자가 먹는 음식도 일일이 지시를 받고 지킨다면 사흘 만에 완쾌시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병자의 마비된 얼굴이 제때 돌아오지 않아 허준 선생은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약속한 날짜의 정해진 시간에 병자의 비뚤어진 입이 돌아오지 못하자 오른손이 작두에 잘려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데, 그 때 ‘멈-추-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병자의 얼굴이 깨끗하게 돌아왔으니 형벌을 멈추라는 기별이 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허준 선생이 선조의 눈에 들어 혜민서에서 내의원으로 옮겨 왕이 총애하는 공빈김씨의 주치의가 되었고, 그래서 왕자였던 광해군과도 잘 알게 된다. 선조나 광해군이 허준 선생의 의술을 매우 신뢰했기에 뒷날 동의보감 편찬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것이다.

와사풍은 얼굴에만 풍을 맞은 병이다.

 

와사풍은 3,4일 혹은 5,6일 만에 낫게 되나?

드라마나 소설 속의 이야기는 실제와는 다르게 꾸며진 것이다. 와사풍은 적어도 4,5주는 치료해야 완치될 수 있고, 연세가 많거나 허약하거나 당뇨병, 고혈압 등이 있는 경우는 더 오래 걸린다.

‘와사풍(넽斜風)’은 풍병(風病)의 여러 종류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것으로서 얼굴에만 풍을 맞은 병이기에 ‘입 비뚤어질 와’자를 쓴 것이다.

풍은 갑작스레 발작하는 것이 특징이기에 별다른 징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 물론 며칠 전부터 마비된 쪽의 귀 뒤에 있는 튀어나온 뼈 주위로 통증을 느끼는 등 약간의 전구 증상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와사풍은 중풍과는 다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대개 치료도 잘 된다. 서양의학에서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라고 한다.

뇌신경은 12쌍의 말초신경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에 안면신경, 즉 7번째 뇌신경에 염증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해 손상이 온 것이다.

와사풍은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나?

와사풍을 ‘구안와사’라고도 하듯이, 입이 비뚤어지고 한쪽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흰자위가 보이는 것이 주된 증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발견하거나 혹은 양치질 하는데 입에서 물이 흐르거나 식사 도중에 음식물이 볼과 잇몸 사이에 고이거나 흘러서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한쪽 이마의 주름이 잡히지 않고 코를 찡긋하지 못하게 되며 한쪽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볼의 감각이 둔해지고 입에 바람을 넣어도 새어나오고 휘파람이 불어지지 않는다. 또 눈물이 많이 나거나 반대로 눈물이 흐르지 않기도 하고, 반쪽 혀가 마비되면서 발음이 부정확하기도 하고, 맛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안면신경마비는 어떤 원인으로 해서 생기나?

한의학에서는 찬 기운을 주된 원인으로 본다. 찬바람을 맞거나 창문이나 방문 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든 경우에 잘 생기므로 겨울에 많은 편이다. 술을 많이 마시고 밖을 돌아다닌 뒤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도 잘 생기고, 여름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거나 찬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자거나 혹은 캠핑 등으로 야외에 나가 찬 곳에서 잔 뒤에 생길 수 있다. 물론 질병을 앓은 뒤나 과로 등으로 몸이 허약해져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잘 생긴다. 아울러 열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서양의학적으로는 면역 기능 저하, 감기 등이 유발 요인으로 작용하며, 중이염 등의 염증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도 원인이다. 그밖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도 큰 원인이 되는데,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에 열이 많이 생겼거나 오래도록 기분 나쁜 것이 지속된 경우 등에서 유발된다. 특히 젊은 여성에서는 시기심이나 질투 등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로 잘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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