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상사 일요가족법회…도현 스님

주제 : 불교미술로 본 붓다의 세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서울 길상사(주지 덕일)은 12월 2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서 일요가족법회를 열고, 도현 스님을 법사로 초청했다. 이날 스님은 “불교만다라는 수인(手印), 색상 등의 표현을 통해 불보살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강의했다.

도현 스님은… 서울 조계사서 해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91년 사미니계를, 1998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미술전공으로 석사졸업 및 박사를 수료한 스님은 현재 용인 구현선원에 거처하며 동국대 예술대학 등에 출강하고 있다.

인간 형상으로 불상 조성된 이래
부처님마다 대표적 手印 나타나
門 4개·壇 8개 만다라 공통도상
동서남북 상하좌우 佛세계 의미


여러분들은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불교미술과 만납니다. 일주문을 들어오면서부터는 부처님의 세계이고, 건축물과 회화, 단청 등 사찰 내 모든 것들이 바로 불교미술입니다. 

불교미술로 표현한 부처님
부처님은 불교미술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표현됐고, 그 표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찰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 산신각 등 많은 전각들이 있습니다. 그 전각 안에 계시는 주인은 각각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대사찰을 형성합니다. 다시 말해 사찰로 들어온 것은 부처님의 세계, 화엄세계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웅전에 들어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십니다.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린 불화를 보겠습니다. 사찰 벽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부처님의 탄생’ 장면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이 세상에 가장 얻기 어려운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삼매에 들었습니다. 참선하는 부처님 왼편에는 마구니의 왕 파순이 그려져 있습니다. 관능적인 옷차림을 입은 화신들을 보내 유혹해도 흔들림이 없자, 모든 마구니들이 활을 쏘고, 번개를 내리며 총공격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때 살며시 깼다가 오른손으로 땅을 지긋이 누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물이 의지하는 이 대지. 움직이는 것이건 움직이지 않는 것이건 모든 것에게 공평한 대지가 나를 위해 진실한 증인이 될 것이다. 대지여, 나를 위해 증언해주십시오.”

그러자 대지의 여신이 깨어나 땅에서 솟아오릅니다. 다음 그림은 땅에서 솟아오른 여신이 부처님은 깨달을 것이니 너희들은 물러나라고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는 장면인 이 그림이 곧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마구를 항복시키는 모습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트레이드마크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땅을 짚어서 마구를 항복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좌선할 때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 무릎에 얹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이죠. 이 수인을 한 부처님 그림을 보면 누가 봐도 석가모니 부처님인 것을 알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다음 3장의 사진을 보면, 석굴암 석가모니불과 부다가야 대탑 본존불, 미얀마 석가모니불이 있습니다. 수인이 모두 같죠? 시대에 따라 부처님 모습은 약간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약간 통통하다든가 마르다든가, 표정 등 변화는 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징인 수인은 바뀌지 않습니다.

불상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부처님 열반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불상이 나타나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부처님을 나타냈을까요? 무불상시대(BC6~AD1세기 후반) 부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존귀하고 위대하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이죠. 부처님 대신 법륜, 불탑, 스투파, 보리수, 불족적, 금강대좌, 산개 등 대표적인 상징물로 표현했어요. 이 시기 불교미술로는 산치대탑, 바르후트탑, 아마라바티탑 등이 있습니다.

AD1세기 경 이후부터 부처님 모습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부처님 모습의 형상을 불상으로 조성하면서 불교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까지 신행생활은 스투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불상이 등장한 뒤에는 불상 중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를 불상시대라고 합니다.
 

만다라 표현에 담긴 의미
저는 불교미술 전공자로서 주로 만다라를 그리고 있습니다. 만다라는 오로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는 미술입니다. 만다라는 ‘본질적인 것을 가진 것’ ‘최고·최상의 것을 가진 것’이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다라의 어원은 인도 고대문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리그베다>에서는 신에 대한 찬가를 시로 썼는데, 이 시를 묶은 단락을 만다라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만다라란 단어는 일상에서 쓰는 표현이 됐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수행자들이 더 나은 수행환경을 위해 산중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산으로 오게 되면 그곳에 수행자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표시하는 줄을 치게 됩니다. 산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행자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행자가 수행하고 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청정한 신의 세계와 신의 세계가 아닌 곳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죠. 불단 역시 청정한 부처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를 구분해 높여 놓습니다. 이처럼 불교만다라에는 부처님이 계신 최상의 세계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앉은 이 세계가 중생계, 단이 모셔져 있고 부처님이 계신 곳이 만다라의 세계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시죠?

그렇다면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세계, 만다라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대일경>에서는 만다라의 집합을 여래의 진실한 공덕이 한 곳에 모인 것으로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맛으로서 불성에 비유합니다. 만다라는 모든 불보살이 있는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다라는 표현 방법에 따라 종류를 나눌 수 있습니다. <법만다라경>에서는 만다라의 성질에 따라 자성·관상·형상 만다라 세 가지로 나눕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형상만다라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형상만다라에는 존상 만다라, 상징 만다라, 문자 만다라, 입체 만다라 총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존상만다라’는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회화입니다. 둘째, ‘상징만다라’는 부처님을 대표하는 보리수, 상계, 불족적, 도검, 연화, 보주 등 상징물을 그린 경우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상징 만다라라면 보리수가지를, 지장보살님은 석장 등을 그릴 수 있겠죠. 그 상징만 봐도 어떤 부처님인지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세 번째 ‘문자만다라’는 그야말로 범자로 표현한 그림이겠죠? ‘옴’ 자 등 압축적인 글자 하나만으로도 부처님을 뜻하는 문자 만다라가 됩니다. 불자들이 사경을 하는 것 역시 이 만다라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체만다라’는 목상, 소상, 주상 등과 같이 형상을 입체화한 존상에 해당합니다.

만다라 표현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 가운데 부처님 옆에 또 다른 부처님의 세계가 있는 모습들인데요. 이는 동서남북 좌우상하 모든 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다라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원을 ‘화염륜’이라고 합니다. 화염륜은 내부에 외적이 침입하는 것을 막고 신성한 공간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또한 중생의 무지함을 붓다의 지혜(불꽃)로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 안쪽에 있는 ‘금강원’은 차츰 부처님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인데요. ‘금강저(바즈라)’는 인드라신의 무기로서 부처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마음 속 어리석은 망상의 분별을 파멸시키고, 지혜광명을 발현하는 보리심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는 연꽃을 표현한 ‘연화륜’이 있습니다. 연꽃은 청정한 세계를 의미하며 법계의 본성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의 세계를 성(城)의 모습으로 구현한 입체 만다라를 보겠습니다. 부처님 세계 내부는 동서남북 4개의 문으로 영역이 나눠집니다. 앞서 부처님마다 고유한 수인이 있어 이를 통해 부처님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었죠? 수인과 마찬가지로 색상으로도 어떤 부처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앙에는 대일여래 즉, 비로자나 부처님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을 대표하는 색은 흰색입니다. 모든 곳을 빛으로 비춰준다는 의미입니다. 서쪽엔 적색의 아미타불이 선정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선정인은 애정을 갖고 살아있는 자를 조용히 바라보는 자세입니다. 남쪽에는 황색의 보생불(보배를 낳는 여래)이 모든 것을 다 들어준다는 자세인 여원인을, 북쪽에는 녹색의 불공성취불(일체 원하는 바를 반드시 만족시키는 여래)이 시무외인을, 동쪽에는 청색의 아촉불이 거짓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고 대지의 신에게 맹세하는 자세인 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만다라에서 화엄세계를 동서남북 4개의 문으로 표현한 것은 4무량심을 상징합니다. 4가지 한량없는 마음, 자·비·희·사는 수행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4무량심 수행을 해야만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慈),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비(悲), 남이 즐거우면 함께 기뻐하려는 희(喜), 남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사(捨)를 닦으면 평온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4개의 문 안쪽에는 8개의 단이 주변을 둘러싸고 중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8개의 단은 곧 팔정도인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상징합니다. 

결국 만다라는 4무량심을 근본으로 삼고, 8정도를 수행의 기초로 닦는다면 부처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가운데 본존불에 따라 주변에 그려진 상징물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4개의 문과 8개의 단은 모든 만다라의 공통적인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만다라에 표현된 부처님의 세계를 살펴봤습니다. 여러분의 만다라는 어떤 모습인가요? 잠시 입정에 들어 나의 만다라는 어떤 세계인지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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