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려불교, 지속가능한 문화”
“찬란한 고려불교, 지속가능한 문화”
  • 윤호섭 기자
  • 승인 2018.12.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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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랭카스터 교수, 國博 ‘대고려展’ 명사 강연서
루이스 랭카스터 UC버클리 명예교수.
루이스 랭카스터 UC버클리 명예교수.

고려는 이웃국가들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매우 개방적이고, 성찰을 중시했습니다. 기술과 불교적 가르침을 흡수해 문화를 재해석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제 고려에 대한 후세대의 비판은 진부합니다.”

후삼국 통일 이후 474년간 한반도를 지배한 고려시대에 꽃피운 불교문화가 현대사회서 지속가능한 문화로 남기 위해 그 가치를 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 참석해 주장
고려청자와 불교 인연 소개
불교문화, 고려 이해 도와

불교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루이스 랭카스터 UC버클리 명예교수는 123일 국립중앙박물관서 기획특별전 대고려 918·2018’과 함께 마련된 명사 초청 국제심포지엄서 불교문화가 고려시대 발달하게 된 요인 등을 조명하며 이 같이 밝혔다. 심포지엄은 고려 건국 1100주년 통합과 화해의 시대, 문화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랭카스터 교수는 고려시대를 불교 영향으로 한반도 삶의 수준이 고양된 시기로 규정한 뒤 고려청자와 불교와의 인연을 중국 510국 시대 오월(吳越)’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오월은 당에서 송으로 이어지는 한족 영토를 나눠가진 10국 중 하나로, 불교순례자들이 양쯔강을 따라 오월의 항구를 목적지로 순례했다. 이후 오월은 중국불교성지이자 동아시아 불교의 구심점으로 발전했다.

특히 오월은 풍부한 점토자원을 바탕으로 수백여 개의 가마를 만들어 자기를 제작했다. 이를 통해 오월은 수준 높은 자기와 유약을 만들어냈으며, 청자의 본국이 됐다. 하지만 송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도공들이 배를 타고 한반도와 일본, 태국 등으로 피난했다. 도공들은 순례자와 무역상들이 이용하던 항로를 통해 한반도 전남 강진 지역에 정착했다. 당시 강진은 오월과 비슷한 지질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도공들은 호남지역 불자들과 교감하기 시작했다는 게 랭카스터 교수 설명이다.

랭카스터 교수는 오월에서 이어진 항로는 한반도 남단 끝자락에 닿았다. 여기서 도공들은 자신들의 본국과 비슷한 토양을 찾아냈다불교를 통해 지역에서 환대받으며 정착한 도공들에 의해 고려청자 전통이 확립되고, 현대사회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됐다고 강조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이어 청자와 불교경전 사본이 고려 주변국과의 선린을 위한 선물로 활용됐음을 주장했다. 그는 목판인쇄술이 발달한 북송이 11세기 중국불교대장경 사본을 고려에 보내고, 이후로도 다양한 사본들이 넘어왔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선물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결국 송나라는 문화강국으로 등극했다. 고려는 이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송나라를 뛰어넘기 위해 자체적으로 인쇄판을 제작했다. 하지만 몽골 침략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그럼에도 고려가 재차 심혈을 기울여 13세기 제작한 국보 제32호 해인사 대장경판을 높이 평가하면서 ··요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오직 고려만이 남긴 가장 오래된 중국불교의 목판경전이 전해진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랭카스터 교수는 도자기를 비롯한 각종 유물과 불화 등은 고려의 예술·종교·상업·정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특히 하나의 민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대고려전이 고려국과 고려의 종교, 고려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렌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려의 문화가 지속가능한 문화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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