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스님이 풀어 쓴 김시습의 법성게 선해/설잠 스님 찬, 무비스님 강설/담앤북스 펴냄/1만 5천원

해동화엄의 초조로 일컬어지는 의상 스님이 〈화엄경〉의 핵심 사상을 간단명료하게 간추려 210글자로 표현한 것이 법성게(法性偈)이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에서 시작해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로 끝나는 7언(言) 30구(句)의 게송으로 법계연기사상(法界緣起思想)의 요체를 서술했다.

이 30구의 게송 210자에 그림을 더해 보충한 것이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한마디로, 의상 스님이 210개의 글자와 여러 개의 네모난 그림을 그려서 〈화엄경〉에서 밝힌 법계연기사상을 서술한 그림 시(圖詩)를 말한다. 화엄일승법계도는 법계도인(法界圖印)과 법성게(法性偈)로 구성돼 있는데, 의상 스님은 화엄사상을 하나의 도인(圖印)과 7언 30구 210자의 게송으로 드러낸다. 이를 깨달음의 경지에 나타난 우주 전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법계도(法界圖)’라 하고, 바다에 삼라만상이 도장을 찍은 듯이 다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해인도(海印圖)’라고도 한다.

210자에 화엄 요체 드러낸 법성게
선과 화엄 회통시켜 선리로 해석


이 ‘화엄일승법계도’를 매월당 김시습(설잠스님)이 주해를 내고 서문을 써서 ‘법계도’의 사상을 설명했다. 그것이 〈화엄일승법계도주(華嚴一乘法戒圖註)〉이다. 조선시대의 천재 학자이자 생육신의 한 명인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는데, 법호가 ‘설잠(雪岑)’이다.

김시습은 의상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두고 후대 사람들이 표면적인 교리해석에 치우치자 “동토의 의상법사가 처음 이 그림을 만든 것은 삼세간과 십법계의 장엄하고 다함이 없는 뜻을 나타내어 몽매한 사람을 인도한 것이다. 전문의 구학이 거듭 부연하고 유포하여 변기와 녹초가 세간에 두루 가득하게 되었으니, 왕자로 탄생하였으나 이미 서인이 된 것이다.”라고 탄식하면서, 기존의 교학적 해석과 달리 선사(禪師)의 안목으로 선리(禪理)에 맞게 다시 해석하였다. 법계도 30구의 구마다 주(註)를 달았으며, 〈증도가〉 〈벽암록〉 등 선미(禪美)가 풍기는 선시(禪詩)로 착어했다. 그러나 선적 표현 가운데서도 경전의 요체를 잘 파악하여 선의 어록을 구사하면서 ‘법계도’의 참뜻을 밝힌다.

이 〈화엄일승법계도주〉를 무비 스님이 우리말로 풀고 강설했다.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에 수록된 설잠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주〉를 얻어 번역하고 탐색하면서 강설을 써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저자 무비 스님.

무비 스님은 〈법성게〉의 게송 가운데 ‘능입해인삼매중’에 대한 기존의 오류를 바로 잡으며 올바르게 해설했다. ‘능입해인삼매중(能入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로 이어져서 ‘능히 해인삼매 가운데 들어가서, 마음대로 부사의한 경계를 무한히 만들어 낸다’로 풀이하면서, “능입(能入)은 능인(能人)이라고 되어 있는 곳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한 번 잘못 표기하게 되니 그것이 그렇게나 고쳐지지 않고 세상에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다음 구절인 번출(繁出)이라는 말과 서로 대칭을 이루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법성게〉의 게송 구절구절에 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밝힌다. 조선시대의 설잠 스님이 주해를 내고 선(禪)과 화엄(華嚴)을 원융(圓融)·회통(會通)시켜 선리로 해석한 법성게를, 이 시대의 대강백 무비 스님이 우리말로 풀고 강설해 이해를 돕는다.

▲저자 무비 스님은?
1958년 출가해 덕흥사, 불국사, 범어사를 거쳐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역경연수원에서 수학했다. 1977년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하고 전법, 이후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 문수선원서 200여 스님과 300여 재가 신도들에게 〈화엄경〉을 강의중이다. 또한 다음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 yumhwasil)을 통해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김으로써 이 땅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한다’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전 81권) 〈신 금강경 강의〉 〈직지 강설〉(전 2권) 〈법화경 강의〉(전 2권) 〈신심명 강의〉 〈임제록 강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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