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법화경(法華經) 1

〈법화경〉은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는 경전이다. 일체 중생은 부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니(一切衆生實有佛性), 우린 모두 부처님과 더불어 평등하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는 가르침은 〈화엄경〉에서 52계위의 수행으로 펼쳐진다. 〈법화경〉은 이 정신과 수행이 실행되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신앙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부처님이 우리의 손을 잡고 낱낱이 “우리 모두는 아무 날 몇 시에 모두 부처를 이룬다”며 수기(예언)를 하여 〈수기(授記)의 경전〉으로 불린다. 아마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불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법화경〉의 본래 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 한글대장경 제 41책 pp1-260에 수록되어 있다. 경전 제목의 의미은 ‘무엇보다도 바른 백련과 같은 가르침’이다. 경전번역자인 축법호(266~313)는 본래 뜻에 따라 〈정법화경(正法華經)〉로, 구마라즙(344~413)은 이 정(正)을 묘(妙)로 해석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 번역하였다. 총 7권 28품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 이 경의 이름이 처음보인 이래로,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등장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며 사랑받고 있는 경전이다.

고려시대에는 사경전문기관인 금자원과 은자원을 설치하여 금과 은으로 사경했다. 바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국보 제234호), 취지금니묘법연화경(보물제 314호)과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제211호)을 비롯하여 단일경전으로는 문화재등록이 가장 많이 지정되었다. 사경한 경전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말할 수 없는 환희심이 솟아난다. 사경한 이의 숭고한 마음이 사무치도록 느껴지는 정교한 글씨의 아름다움에서 부처님을 향한 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전서사의 공덕이라는 신앙적인 입장, 한 점, 한 획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일자 삼배하는 수행의 입장과 고귀한 재료로 법사리를 장엄하게 공양하는 입장에서 사경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부처님이 열반을 앞둔 어느 날, 영취산으로 대중을 다 모이게 하시어 엄중한 말씀을 하신다.

“지난 40년간 그대들에게 한 나의 설법은 사실 성불하는 길을 안내하는 임시방편의 가르침이다. 획기적인 대승적인 가르침이 필요하다. 이 가르침을 받을 이는 남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떠나라, 나는 이제 새로 대승의 가르침, 이타의 가르침을 설하려 한다.”

이 말을 들은 대중은 충격으로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정진하고 성취한 모든 삶을 버리고 새 길을 따라 오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아라한이 되어 대중의 존경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자신들이 이미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비롯하여 모든 수행을 내려 놓아야 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들은 그동안 이룬 삼승(三乘)의 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성제로 수행한 성문승, 연기의 이치를 관찰하는 연각승, 육바라밀을 닦는 보살승까지 목숨을 걸고 수행했었다. 그러다 수행은 했으나 이타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 소승에 비해 대승은 자신들이 이룬 수행 위에 바라밀행을 통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로 자신의 수행을 완성하는 자리(自利)의 삶을 살고 있었다. 또한 방편, 원, 력, 지혜를 통해 불교의 목적인 이타(利他)의 삶을 통해 중생교화라는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이들은 40년 동안 이루었던 가치관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기로에 선 것이다. 죽도록 했던 이 수행이 다 불승(佛乘)으로 가기 위한 서막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에 낙담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위하여 가차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

드디어 비로소 대승불교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 첫 출발점에 대중을 이끈 가르침이 바로 〈법화경〉이다. 대승의 길, 바로 일불승의 길이 드디어 열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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