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선원총림의 납자지도 방법(독참(獨參, 入室)과 청익(請益)

독참ㆍ방장 1:1 개인지도
        수행자 공부 상태 점검

청익ㆍ의문점 개별 문의
         ‘개인’ 살핀 합리적 제도

 

1. 독참(獨參), 입실(入室)

선원총림은 불공이나 기도도량이 아니고 ‘작불학교(作佛學校)’이다. 종교적 집단 이전에 깨달음을 추구하는 곳이다. 조실과 방장은 교장이고, 상당법어 등 법어는 고준한 작불(作佛) 강의이며, 좌선은 작불 실수(實修)’라고 할 수 있다.

선원총림은 상당법어 등 법문을 통하여 전체적인 지도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납자와 1:1의 개별적인 지도를 한다. 그것을 ‘독참(獨參)’이라고 한다. 단독으로 참문(參問)한다는 뜻이다. 방장(주지)과 1:1로 독대하여 공부 상태를 지도 점검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스승의 방에 들어가 지도받는다고 하여 입실(入室)이라고도 하고, 또는 두 단어를 이어서 ‘입실독참’, ‘입참입실(入參入室)’이라고도 한다.

독참 입실은 정기적ㆍ의무적인 성격으로 5일에 한 번씩 한다. 독참은 방장과 독대하여 공안이나 화두 참구에 대하여 지도, 점검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대중들은 5일에 한 번씩 독대하여 점검받아야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개별적인 지도 및 점검’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실 독참의 의미와 기능에 대하여 <칙수백장청규> ‘주지’ 장(章) ‘입실’ 편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입실이란 곧 스승이 학인(수행자)을 감판(勘辦ㆍ감별, 판단)하는 일이다. 아직 그 이르지 못함을 경책하고, 허항(虛亢ㆍ건방진 것)함을 쥐어박고, 그 편중(偏重ㆍ치우침)됨을 쳐버린다. 그것은 마치 용광로에서 금을 녹일 적에 연홍(鉛汞ㆍ납과 수은. 즉 雜銀)이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과 같으며, 장인이 구슬을 다룰 때 무부(珷?ㆍ옥과 비슷하나 옥은 아닌 돌)가 모두 제거되는 것과 같다. 처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행했으므로 옛적에 납자들은 항상 작은 향을 소지하고 있다가(입실ㆍ독참 시에는 향을 사른다) 북이 세 번 울리면 곧 달려가서 입실했다. 지금 3일과 8일에 입실하는 것은 옛 일[古事, 제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정리하면 독참은 ①수행자의 공부 상태를 점검하고, ②허황됨과 치우침(非중도) 등 잘못된 것을 제거하고 ③가짜를 걸러 낸다. 이상이 대략 독참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청대 후기에 편찬(1823년)된 <백장청규증의기(百丈淸規證義記)> 5권 ‘입실청익’ 편에는 입실(독참)의 의의와 목적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입실할 때 수행자는 반드시 진실하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해야 하고, 스승은 반드시 노파심으로 지도 점검해 주어야만 비로소 입실청익의 목적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수행자로서 참학(參學ㆍ묻고 배우는 것)하는 것이 진실하지 못하고, 또 스승도 도안이 밝지 못하면, 비록 모양에 따라 그대로 고양이를 그린다 해도, 실제로는 옛 것을 따르는 데 불과할 뿐일 것이다. 요즘 제방 선원 가운데 진정으로 수행하는 총림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실이 드물게 시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안목 있는 스승이 제대로 점검해 주지 못하고, 또 수행자도 진실하게 묻지 않는다면 그 독참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독참은 모양(그림 본)에 의거하여 고양이를 그리는 것과 같이 형식적인데 불과하다.

그런데 인용문 가운데 “요즘 제방 선원에는 진정으로 수행하는 총림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실이 드물게 시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는 말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미 청말에도 독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납자를 점검할 능력을 가진 방장, 안목과 지견을 갖춘 방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시대, 근현대 자료에서는 독참을 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역시 수행자의 공부 상태를 점검, 감파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가진 선승이 없기 때문이다.

독참은 수행자 개개인이 참구하고 있는 공안(화두)에 대하여, 방장이나 조실이 제대로 참구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이다. 당사자는 나름대로는 잘 참구하고 있다고 해도 스승의 눈으로 볼 때는 사견(邪見)에 빠져 있는 경우, 사량 분별심으로 참구하고 있는 경우, 도가(道家)의 신심단련법에 빠져 있는 경우 등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백장선사가 <백장청규>를 제정하면서 좌선은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입실(독참)과 청익은 반드시 하도록 규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1103년) 2권 입실(독참) 편을 참고해 본다면, 당ㆍ북송시대에는 2일에 한 번 독참을 했다. 그런데 남송시대(1264년)에 편찬된 <입중수지(入衆須知)>에는 “입실은 3일과 8일에 하는데, 이것은 총림의 정해진 규칙이다. 때론 시절에 구애받지 않기도 한다(入室. 三八入室, 叢林定則, 或不拘時節).”고 하여, 5일에 한 번씩, 즉 매달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이렇게 여섯 번 했고, 이것은 총림의 정해진 제도였다. 1274년에 편찬된 <총림교정청규(함순청규)> ‘입실’ 편의 내용도 일시(日時) 등에 대해서는 거의 같다.

방장과 납자의 1:1 개인지도를 독참이라고 한다.

 

2. 독참 입실의 형식과 절차

독참이 있는 날에는 하루 전이나 몇 시간 전에 고지(告知)한다. 입실이 있음을 알리는 패(牌)를 법당과 승당, 중료(衆寮ㆍ대중방, 큰방) 등 건물 벽에 내다 건다. 그것을 입실패(入室牌)라고 한다.

입실할 시간이 임박해지면 납자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주지(방장)로부터 참구 상태에 대하여 점검을 받는 것이므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마치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독참 시간이 되면 먼저 북을 세 번 친다. 그러면 대중들은 모두 도착순으로 방장 외실(外室)에서 대기한다(但聞三下鼓鳴. 卽趨入室. <칙수백장청규> 2권 ‘입실’ 편). 자기 차례가 되어 방장실로 들어가면 먼저 방장화상을 향하여 오체투지의 3배를 해야 한다. 방장은 의자(즉 禪椅)에 앉아서 참선자를 직시한다. 이어 문답이 시작되는데, 먼저 납자가 자기의 소견(所見)이나 의문점을 피력하면 방장화상이 질문하는 형식이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입실’ 편에는 문답하는 시간과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따라서 문답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이내이다.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하거나 세속적인 것을 물어서도 안 된다.

대체로 방장은 수행승을 향하여 냉엄하게 질타한다. 수행자는 나름대로 상당히 준비했을 터이지만 무용지물이다. 독참이 끝나면 참선자는 거의 지옥을 다녀온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렇게 단련시키지 않고는 재목을 만들 수 없다. 독참이 끝나면 참선자는 승당으로 돌아와서 다시 참구한다.

당송시대 방장들은 3~4번만 문답해도 공부 상태를 100% 감파했다. 금(金ㆍ진짜)인지, 수은(水銀ㆍ汞. 가짜)인지, 납(鉛ㆍ가짜)인지를 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고, 병통(문제점)에 대하여 즉시 처방전을 내릴 수 있는 투시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못하면 수행자를 지도ㆍ점검할 수가 없다.

방장의 처방전은 파주(把住ㆍ혹은 把定)와 방행(放行) 두 가지이다. 파주는 현재 납자가 잘못 참구할 경우 질타, 지도하는 것을 말하고, 방행은 잘 참구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놔두는 것을 말한다. 잘 참구하고 있으면 격려해 주고 잘못 참구하면 호되게 질타한다.

참선자의 수행 상태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독참 시스템을 둔 것인데, 단체 수업에서 오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개별적인 점검 시스템을 둔 것이 독참이다.

임제 선사(臨濟ㆍ?~867)의 처방전은 주로 ‘할(喝)’이었고, 덕산 화상(782~865)의 처방전은 주로 ‘방’(棒ㆍ몽둥이)이었다. ‘덕산방, 임제할’은 유명하고 한데,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인 ‘방’이나 ‘할’이 아니다. 번뇌 망상과 분별심을 질타하는 ‘방할’도 있고, 잘 참구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방할’도 있다. 참선자로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의 ‘방’이고 ‘할’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입실 독참(개인지도)은 매우 체계적이고도 과학적인 납자 지도 방법이었다. 그로 인하여 당송시대에는 많은 훌륭한 선승들이 배출되었다. 당ㆍ북송시대 선불교가 중국의 전통 종교인 도교와 자웅을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불교를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교육 시스템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에는 독참 시스템이 없다. 독참을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적어도 근대 150년 동안에는 행해진 적이 없고, 조선시대에도 시행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독참 시스템이 없으므로 납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참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선원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화두를 준 뒤에는 방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본 임제종이나 조동종은 여전히 독참을 잘 지켜 오고 있다.

3. 청익(請益)의 형식과 절차

‘청익(請益)’이란 ‘보탬[益]을 청하다’는 뜻으로 ①재삼 가르침을 청하다는 뜻이다. ‘더 자세하게 가르침을 바라는 것’으로, 평소, 또는 법문을 듣고 나서 미진(未盡)한 점이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묻는 것이 청익이다(請益者, 已受敎而再問未盡之蘊也). 대학에서 정규 강의가 끝난 후 별도로 교수실로 찾아가서 묻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청익 역시 설법, 독참 등과 함께 총림의 납자 지도시스템 가운데 하나이다. 다만 독참과 같이 정기적ㆍ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수행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청익 절차와 방법에 대하여 <칙수백장청규> 2권 ‘대중’ 장(章) ‘청익’ 편에는 “무릇 청익을 원하는 자는 먼저 시자를 통하여 주지화상에게 아뢰게 한다. … 청익 시에는 공손하고 엄숙하게 가르침을 살펴 듣는다. 마치면 향을 사르고 9배한다.” <선림비용청규>에 있는 청익 내용도 이와 거의 같다.

방장화상에게 묻는 것은 언제든지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대중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리석은 질문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공부가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인 대화, 개인 면담(청익)을 통하여 지도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청익(請益) 제도는 백장회해(720~814)의 <고(古)백장청규>(양억, <선문규식>)에서도 매우 중요시하여 명문화했다. 이것을 본다면 백장총림 때부터 제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익은 선종 사원 이전에 중국 고대부터 있었다. <논어>에 보면 공자와 제자 자로(子路) 사이에 있었던 청익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도 청익은 보충 설명이나 추가 질문을 가리킨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스승 공자에게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정치를 잘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솔선수범하고 노력해야 한다.” 자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것을 청했다[請益]. 공자가 말했다. “게으르지 말라.”(<논어> 子路篇. “子路問政. 子曰. 先之勞之. 請益. 曰, 無倦.)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다. 학자든 수행자든 정치인이든 게으름이나 매너리즘에 빠지면 그 사람의 생명은 거기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으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노력하는 자만이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고타마 붓다도 마지막 유언이 “게으름 피우 말고 열심히 정진 노력하여라”(팔리본 <대반열반경>)였다. ‘열심히 노력하라’ 이것은 종교와 인류를 초월하여 불변의 진리이다.

수행자나 학자는 욕심을 버리고 부단히 탐구, 사색하고 노력해야 한다. 편안하게 살아도 죽고 고단하게 살아도 죽는다는 것 역시 불변의 진리이다. 스스로를 채근하여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자만이 불사(不死)의 경지를 체득할 수 있고, 영원(永遠)과 동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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