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보시·공생의 확대 ‘공공복지’, 행복 첩경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보시·공생의 확대 ‘공공복지’, 행복 첩경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11.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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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경전 속 불교 이상국가는?

불교는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일까?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셨다고 했다. 고통의 해결은 과연 행복일까? 〈숫타니파타〉에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여라’고 설해져 있다. 행복하려면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불교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지만 수행을 하는 이유는 피상적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따라서 불교는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득수준과 행복은 상관있어
복지수준 높으면 행복 증대
조합 등 경제공동체 구성 필요

매년 3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무관심한 나라다. 유엔의 행복평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보통 50위 정도를 맴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행복도가 낮은 나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요즘 자주하는 말로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있다. 헬조선에서 국민이 행복할 리가 없다. 방글라데시, 인도, 부탄의 국민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유엔의 행복평가에 의하면 방글라데시, 인도, 부탄 같은 나라는 행복도 순위가 매우 낮다. 행복평가 방법에 따라 이들 국가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유엔의 평가방법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국민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본 사람에 의하면 그들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으며 결코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예전 인도 빨래공과의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인도에서는 하루 종일 빨래만을 하는 사람을 빨래공이라고 한다. 긴 노동시간과 독한 세탁제를 사용하기에 끔찍한 직업이라 생각되는데 뜻밖에도 자신은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인터뷰할 때 독한 세탁제로 젖은 몸을 솔로 닦고 있었다. 그는 싱글 벙글하면서 자기가 행복한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했다. 기자가 이 일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겠느냐고 하자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기자가 방금 행복하다고 했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힘들기 때문에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말만 반복한다.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방법은 행복측정의 적정한 방법이 아니다. 행복하느냐고 물으면 방글라데시, 인도, 부탄 국민의 행복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유엔은 다른 방법으로 행복도를 측정한다. 유엔은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삶을 10으로 놓고 최악의 삶을 0으로 놓을 때 당신 삶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렇게 물으면 인도의 빨래공은 2나 3으로 답하지 않을까? 그러나 마이크를 대고 얼마나 행복하느냐고 물으면 엉뚱하게도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다.

유엔의 행복도 측정 방식에 의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부탄 사람은 별로 행복하지 않다. 부탄은 2016년 평가에서 84위를 차지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뒤떨어진다. 유엔의 측정 방법은 ‘최고의 삶’이면 최고로 행복하다고 가정하고 조사하는 방법이다. 인도 빨래공의 사례처럼 부탄 사람은 자신의 삶이 최고의 삶에서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 마이크를 대고 부탄 사람에게 행복하느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부탄은 독재국가이며 매우 폐쇄적인 국가이다. 독재국가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부탄이 행복한 국가로 보이게 하는 여러 가지 잔재주를 부리고 온 세계가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지 모른다. 부탄을 방문한 사람의 의견도 엇갈린다. ‘정말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사람들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엔의 행복평가에 의하면 소득수준과 행복은 상관관계가 있다. 부자나라의 국민이 더 행복하다. 다만 이에는 예외가 있는데 한국, 일본, 싱가포르처럼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낮은 국가가 있고 남미 국가처럼 소득에 비해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가 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유교국가, 권위주의 국가를 요인으로 거론한다. 황금만능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남미는 혹시 소득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 문화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경우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가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의 하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엔의 행복평가에서 우리는 돈에 관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대체로 돈이 행복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엄연한 사실, 둘째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사실이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돈이 중요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다만 돈 밖에 모르면 다른 방법으로 행복해질 길이 없으니 돈에 의해 행복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거다.

상위 10위권 국가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캐나다, 아이슬란드이다. 이들 국가는 서로 순위만을 바꿀 뿐 다른 나라가 좀처럼 10위권에 진입할 여지는 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행복에 관한 한 10위권 국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행복한 10개국의 공통적인 특징은 복지국가라는 점이다. 그 어떤 국가도 복지국가가 아닌 나라가 없다.

불교는 어떤 국가관을 가지고 있을까? 부처님은 어떤 나라를 좋은 나라라고 말씀하셨을까? 경전에서는 전륜성왕의 도리가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임을 설하고 있다. 〈중아함경〉은 “나라 안에 빈궁한 자가 있거든 재물을 내어 구제하여 주라”고 설한다. 전륜성왕은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주다. 전륜성왕은 복지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견노념왕이 아들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장아함경〉은 “나라에 외로운 이와 노인이 있거든 마땅히 물건을 주어 구제하고 가난하고 곤궁한 자가 와서 구하는 것이 있거든 부디 거절하지 말라.”고 설한다. 또한 〈장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왕과 대신의 대화에서 왕의 말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모든 인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몸이 아프면 치료해주고 배고프면 밥을 주고 머물 곳을 마련해서 침구까지 마련해주는 총체적인 복지국가가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모형이다.

〈증일아함경〉은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사문과 바라문을 공양하고 외로운 노인을 모셔 기르며 빈궁한 이에게 보시하였다. 네 성문과 성 복판에 창고를 만들어 두고 금, 은, 잡보, 코끼리, 말, 수레와 의복, 침구, 의약, 향, 꽃, 음식을 쌓고, 고독한 이를 위해서는 그 아내를 주선해 주며 갖가지로 보시하되…”라고 설한다. 고독한 사람에게 아내를 주선해주라는 구절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부처님은 의식주, 즉 생존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차원을 넘는 복지국가를 설하신 것이다. 인간의 외로움까지도 해결해주고 가정까지 마련해주는 삶의 질 차원의 복지라고 생각된다. 복지의 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서도 이런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륜성왕의 사례로 간주되는 아쇼카 왕은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하였지만 경전에서 주장한 수준에는 훨씬 못 미쳤다. 과연 오늘날 불교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까?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기 때문에 경전에 이러한 구절이 없다고 하더라도 불자는 가난한 사람의 생존기본권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경전에 나타난 구절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개인차원에서 보시를 통해 가난을 구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직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서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불자가 개인적으로 복지정책에 반대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부처님의 생각에 심각하게 반대하는 견해를 갖는 것이 된다. 경전은 너무나 명백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불교복지국가의 이상을 펴고 있기 때문에 불자로서 부처님의 제자라면 불교복지국가의 이상을 외면할 수 없다. 대승불교의 중생구제 사상도 알고 보면 불교복지국가의 연장이다.

복지국가망국론이 워낙 수 십년 동안 대한민국 언론에서 강조되었기에 우리는 불교가 복지를 내세운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십년동안 복지국가망국론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은 국민소득과 국민행복도에 있어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도 경제성장율, 실업율 등 이들 국가의 경제성적표가 훨씬 더 좋았다. 적어도 복지국가 망국론은 틀린 말이니 불교복지국가의 이상을 추구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현명하게 추진하면 된다.

최근에 그리스가 망한 것은 복지국가를 추구한 때문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지만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스 공무원 복지가 방만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복지정책을 공부하면서 단 한 번도 그리스가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진국에서는 그리스가 부패하여 망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옛말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처지를 비관하며 '집도 없고 절도 없고…'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에는 절에 가면 먹여주고 재워 주었다. 집이 가난하면 아이를 절에 맡기기도 했다. 사찰은 가난한 사람에게 의지처였다. 불교경제공동체는 역사상 많은 사례들이 있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는 사찰이 경제공동체의 역할을 한 수많은 기록들이 있다. 무진장(無盡藏)같은 금융기관은 대표적인 불교경제공동체였다. 사찰은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승려 이외에 일반 농민과 노비들이 소속되어 있었고 수공업에 의한 생산활동도 활발했으며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사찰의 경제력이 너무 막강하여 중국과 한국에서는 왕권을 위협할 수준까지 되었고 결과적으로 불교를 탄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자본주의가 사찰에 의해 그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학문적 관점까지 있다. 박규상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탄생된 일본상업자본은 진종에 의하였으며 일본의 진종은 단순히 종교단체임을 뛰어넘어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불교경제공동체는 마을을 단위로 구축될 수도 있고, 협동조합 같은 소비자 혹은 생산자의 모임 형태로 성립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도는 물론이고, 중국, 한국, 일본에서 사찰이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처님도 금융업을 장려할 정도로 불교에서 금융은 바람직한 경제기능으로 간주되었고 사찰이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교리적 논란은 없었다. 과거의 금융기관 역할이 반드시 자금을 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건을 대여해주고 전당포의 역할도 수행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은행이나 금융기관보다는 더 넓은 개념이었으며 한 때는 사찰이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이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불교경제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불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 정보만 정직하게 교환해도 자신에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자리이타가 된다. 어느 기업의 제품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정보, 음식점에 대한 정보, 각종 점포에 대한 정보, 수퍼마켓에 대한 정보, 은행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 등은 모두에게 필요한 정보다. 생산자 협동조합과 소비자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삶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구매활동을 하면 불자끼리 불교교리에 입각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불교경제공동체는 바람직한 경제활동 모델을 제시하여 불교적 모범을 보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불자의 경제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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