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마음수행법

선지식의 가르침대로 ‘어머니는 허약해서 내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다’라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니, 내 안에 있는 불쌍하게 보는 마음(소질)을 어머니에게 단단히 붙여 놓고, 정말 불쌍한 존재로 착각한 것이 분명하게 알게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분별심을 상대에게 탁 덮어씌우고 보니 상대가 제대로 보일리가 있느냐는 선지식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마음(분별심)이 바로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공감하며 일체유심조의 진리가 실감났습니다.

“네가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너를 효자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밝은 이가 보면 네가 어머니를 불쌍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네가 네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네 어머니는 실은 네 어머니가 아니요 어머니라는 네 생각일 뿐이다. 그것은 네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마음 밖의 모든 현상(어머니를 포함)은 네 분별심이 만들어 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네가 어머니를 불쌍하게 보는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 세상에 나간다면, 너는 세상에 나가서 반드시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 이치로 네가 세상을 꾸짖는 것은 실상 세상을 꾸짖는 것이 아니요, 바로 자신을 꾸짖고 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딱하고 불쌍하게 보는 사고방식이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도장에서 어머니를 불쌍하게 보는 그 마음을 해탈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나는 불쌍하고 무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지식께서는 어머니와의 업보를 해탈하지 않는 한, 즉 내 마음 속에서 사람을 불쌍하게 보는 사고방식을 없애지 않는 한,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은 불교수행과 사회생활을 연관시키는 법문인데, 이 법문이 처음에는 상당히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불교 수행이 사회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불교는 마음 닦아 생사해탈을 하는 가르침일 뿐, 현실에서 잘 사는 것이나 무능력자가 인재가 되고 영재가 된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소질이 어머니를 불쌍한 존재로 보게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그 생각을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나는 내 마음속 불쌍하게 보는 소질에 대고 ‘미륵존여래불’을 정진한 결과,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에는 반드시 어머니의 딱한 모습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 얼굴에 대고 ‘미륵존여래불’을 계속 염송합니다.

정진을 하는 중에 어느 때는 어머니가 노란 옷을 입고 나를 향해서 오는 모습이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이면 어머니가 노르스레한 옷을 입고 수도장으로 나를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금강경〉 공부를 통하여 어머니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어느덧 내 속에도 부처님처럼 무엇인가 아는 능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금강경〉 공부 결과 비몽사몽 간에 알게되거나 보는 현상을 우리는 ‘경계’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경계로 현실을 파악해 알 수 있었고, 또 꿈으로도 궁금하였던 여러 가지를 알게 되어 해답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해답은 분별이 소멸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큰 분별심이 사라지면 더 큰 지혜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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