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을 성보들]19. 의성 운남사의 도난 성보
[다시 찾을 성보들]19. 의성 운남사의 도난 성보
  • 최선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홍은미 옥천사 학예실장
  • 승인 2018.11.09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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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위에 그려진 아름다운 불화들
1994년 도난된 운남사의 불화들. 사진 왼쪽부터 운남사 아미타불회도(연대 미상), 운남사 지장시왕도(1741년 제작), 운남사 신중도(1823년 제작)
1994년 도난된 운남사의 불화들. 사진 왼쪽부터 운남사 아미타불회도(연대 미상), 운남사 지장시왕도(1741년 제작), 운남사 신중도(1823년 제작)

경상북도 의성은 충청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있는 조령과 축령의 이남 지방에 위치한다. 북쪽은 안동과 접하며 남쪽은 군위, 대구로 이어진다. 동서로도 청송, 예천, 문경, 상주에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인근 지역의 사찰과 밀접한 교류를 통해 통일신라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시기의 불교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고운사(孤雲寺), 대곡사(大谷寺), 수정사(水淨寺), 운남사(雲嵐寺), 정수사(淨水寺), 지장사(地藏寺)가 있다.

이 가운데 운남사는 의성군 안평면 천등산(天燈山)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사찰의 명칭은 구름 운(雲)과 바람 람(嵐)을 사용하여 구름과 바람이 만든 절이란 의미를 갖고, 산신 기도처로 유명한 편이다. 운남사는 신라 의상대상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자세한 사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찰 내에 있는 삼층석탑은 원래 보광전 뒤편 서남쪽 산기슭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이운한 것으로, 최소한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는 이 지역에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알려준다.

현재 운남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고 사적기 정도만 남아있어 구체적인 연혁을 밝힐 수 없지만, 현존하는 유물을 통하여 대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사찰 내에는 1741년에 조성된 지장보살도(도난), 1774년에 주성된 금고(일명 반자), 1827년에 그려진 산신도 등이 남아있어 조선 후기에도 지속적으로 법등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전각은 근래에 건립된 보광전(1999년 건립), 삼성각, 산왕각, 요사 등이 있고, 보광전 내에 고려 말에 조성되어 1602년과 1704년에 중수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20세기 전반에 운남사에 소장된 불교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재산대장과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된 귀중품 목록을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재산목록(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의하면 운남사에 봉안된 성보문화재가 20건 46점이고, 이 중에 불상 3점, 불화 4점이 있었다. 또한 1932년 12월 23일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관보 1789호에도 동일하게 불상 3점, 불화 4점이 봉안되어 있었다.

따라서 운남사에는 20세기 전반에 소조관음삼존불,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신장도, 산신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전각만이 운영되던 작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시기에 천등산 운암사(雲岩寺)에서 고려후기의 불상과 조선후기에 제작된 석조보살상을 이운해 온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 운남사에서 문화재청과 조계종 총무원으로 도난 신고를 한 불화는 1994년 3월 27일에 잃어버린 연대미상의 아미타불회도와 지장보살도(1741년 작), 그리고 1823년도에 그려진 신중도이다(〈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2016)).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불화는 1827년에 금어(金魚) 법준(法峻)이 그린 산신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관음보살삼존상, 관음도, 신장도가 유출되거나 전쟁 중에 망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유물과 망실의 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이들 성보물에 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1987년으로,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간행한 〈의성군 문화유산 지표조사 보고〉에 의하면 당시 불화는 후불도, 지장시왕도(乾隆七年辛酉七月日畵成, 1741년, 174㎝×167㎝), 신중도(道光七年丁亥三月日, 1823년, 133㎝×119㎝)에 관한 간략한 내용과 사진(지장시왕도)이 게재되어 있다.

운남사 아미타불회도는 비단 바탕 위에 채색되었다. 조성연대는 정확하지 않고 조선후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미타불회도 화면의 크기는 세로 167㎝, 가로 261㎝이며,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대세지보살을 크게 그려넣은 뒤 사천왕과 여러 권속들을 화면 가득 배치하였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원형의 광배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삼존의 두광은 녹색으로 채색했으며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의 신광은 백색으로 아미타불의 신광은 여러 색을 사용하여 위신력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적색과 녹색을 주요색으로 사용하면서 중간색인 주황색과 백색을 부분 사용하고 있다. 아미타불회도 화면 곳곳에 보이는 금니가 화려함을 가중시키고 있어 극락에 왕생하기를 염원하는 불제자들의 한량없는 불심과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미타불회도 화면은 여백 없이 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아미타삼존과 권속 간의 크기 차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어 경상도 불화의 특징이 엿보인다.

아미타불이 입고 있는 가사의 끝자락에 그려넣은 동전문양이 운남사 지장시왕도에서 지장보살의 가사에서 보이는 문양과도 유사하다. 이는 양식적 요소로서의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18세기 경상도 지역 불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운남사 지장시왕도는 1741년(乾隆7)에 조성되었는데 화면 크기는 세로 120㎝, 가로 120㎝로 비단바탕 위에 그려졌다. 중앙에 위치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과 권속들이 원을 그리듯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는 구도이다. 비구형의 머리를 하고 있는 지장보살은 녹색의 원형두광과 신광을 두르고 있는데, 서기를 나타내듯 광배 주위로 채운이 가득 표현되었다.

통견의 붉은색 가사를 두르고 반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장보살의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려 있으며, 왼손에는 투명구슬을 쥐고 있는 형상이다. 붉은색 가사바탕에는 녹색으로 격자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가사 끝자락에는 동전 문양이 채색되어 있다. 지장보살의 상징 지물인 육환장을 대좌 바로 옆에서 시립하고 있는 협시 도명존자가 쥐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화면의 하단부분에는 박락이 있으나 윗부분과 좌우로 주황색과 녹색 등의 구름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짙고 어두운 색감을 보여준 반면 지장보살의 가슴에 표현된 화려한 영락에서 18세기 불화의 특징인 장식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1987년 간행된 〈의성군 문화유산 지표조사 보고〉와 2016년 발간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서 운남사 지장시왕도 화면의 크기가 다른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조선총독부 관보본에서 조사된 크기를 고려한다면  〈의성군 문화유산 지표조사 보고〉에 게재된 지장보살도 크기에 무게가 실린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전래된 신중신앙의 성행으로 꾸준히 조성되어 왔다. 운남사 신중도는 세로 132㎝, 가로 120㎝의 크기로 1823년에 조성되었다. 조성 당시 가람의 규모와 법당의 크기를 고려하여 제작되었을 운남사 신중도는 제석천과 위태천을 화면 좌우로 크게 배치하고 일천자(日天子)와 월천자(月天子), 그리고 무장신을 사이사이에 그
려넣은 단순한 구도를 보여준다. 모든 신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석천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가슴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석천은 전신이 보이고 두광을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위태천은 상반신만 보이고 있다. 위태천은 새의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있으나 그림 표면의 오염과 변색으로 인해 용모의 분간이 어렵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 보이는 하늘을 청색으로 채색하고 부분적으로 금니를 사용했다.

천부(天部)의 여러 선신(善神)과 주악천인을 함께 그려넣은 것이 일반적인 신중도라고 할 수 있으나 무장신 표현과 선신의 묘사에서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것처럼 배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얼굴 표정이나 자세, 지물, 의습의 윤곽 등의 표현에서는 활달한 필치가 살짝 보인다. 운남사 신중도는 도상과 화풍에서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19세기 경상도 지역의 요소가 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운남사의 불화들 각각의 조성 시기는 다르지만 고급재료에 속하는 비단재질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아 아름다운 불화를 얻고자 하는 발원자들의 정성과 불심을 엿볼 수 있다.

1994년 3월에 도난당한 의성 운남사의 불화 3점은 기존 문화재청과 종단에 신고가 된 규격이 일제강점기 귀중품 대장이나 1987년에 대학박물관에서 간행한 조사보고서의 규격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대학박물관 보고서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판단되어 도난 신고된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와 정보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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