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의 불교강의/리처드 곰브리치 지음/송남주 옮김/불광 펴냄/2만 5천원

초기불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예술사의 고전 〈서양미술사〉의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아들이기도 한 리처드 곰브리치 박사. 그는 붓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이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붓다는 인도 브라만교의 업(業, karma)과 제의(祭儀)라는 오래 묵은 사유를 윤리화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지적 도약을 이루어냈다. 붓다의 윤리관은 철저한 개인의 판단과 책임이 뒤따른다. 윤리적 행동과 책임은 각자에게 있고, 여기에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외부의 강요가 아닌 올바른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대에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2,600여 년 전 계급 사회였던 인도에서 이러한 사상이 태동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는 놀랍게도 19세기 유럽의 후기 계몽주의 사상과 유사할 만큼 혁신적이었다.

붓다 사유 근원 다가간 과감한 탐험
종교 걷어내면 비로소 보이는 ‘붓다’
붓다의 진정한 사유 밝히는데 초점


인도 사회서 업과 윤회,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의는 붓다가 태어나기 전부터 깊게 뿌리내린 종교적 토대로 계급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됐다. 하지만 붓다는 이를 과감하고도 대담한 방법으로 재해석해 윤리화시킴으로써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풍자와 비유를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풍자와 비유로 인해 후대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붓다의 제자들조차 붓다의 가르침을 오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특히 브라만교의 교리를 차용한 내용일수록 이 문제가 자주 불거졌다. 저자는 초기불교 경전과 브라만교 경전의 세밀한 비교 분석을 통해 그 오해의 내용은 어떤 것이 있고, 붓다의 진정한 사유는 무엇인지 규명한다. 이를 통해 종교의 창시자로서의 붓다가 아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흄과 같은 사상가의 범주서 붓다를 조명하고, 붓다의 위대한 독창성의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한다.

붓다의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고 시도하기보다 심오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선입견부터 갖게 된다. 이 책은 먼저 독자들에게 그러한 마음 상태에 주의를 준다. 붓다를 오로지 종교 지도자로만 보고 신비하게 여기는 것은 무익하며, 불교를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대단히 지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붓다는 설령 스승이라도 부적절한 발언을 하거나 잘못된 내용을 말했을 때, 제자들은 그것을 바로잡을 의무를 진다는 규칙마저 세웠을 정도였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이런 붓다 사유의 근간에는 모든 개인이 각자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스승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던 브라만교 입장에서 보면 매우 도발적이고 위험한 발상이었다. 붓다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가르쳤을 뿐, 장대한 이론체계를 만들거나 고매한 이상 같은 것은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번잡한 이론과 신비로움으로 치장된 브라만교의 용어를 적극 차용하여 일반화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붓다는 자신의 사상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것이 가장 상대방을 설득하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단어로 업(karma)과 법(dharma)이 있다.

붓다는 브라만교서 ‘제의를 거행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뜻하던 업의 의미를 일반인의 행동 범주 안에 포함시켰다. 다시 말해 브라만교만의 종교적 의미였던 ‘업’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행위’라는 보편적 의미로 재해석했다. 이점이 붓다 사유의 독창성이며, 이것은 후에 ‘방편(方便)’이라고 불리는 붓다만의 독특한 설법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방편은 비유와 반어법을 풍부하게 사용한 설법 방식이다. 하지만 방편과 브라만교 교리의 차용은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사상을 오해하게끔 만들었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는 데 주력한다. 그래야만 붓다의 진정한 사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의 초기경전과 브라만교의 베다 성전을 비교 분석하여 오해를 밝히고, 진정한 붓다의 생각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곰브리치는 업설(業說)이야말로 붓다 세계관 입문에 가장 좋은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업은 붓다가 삶을 조망하는 근본 사상일 뿐만 아니라 기본 교리들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업을 기본으로, 다양한 불교 용어의 사례를 짚으며 붓다 사유의 근원을 알려주는 이 책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붓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불교보다 ‘붓다’를 알고 싶은 독자들은 우선순위로 필독해야 한다.

리처드 곰브리치는 미술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 〈서양미술사〉를 쓴 세계적인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의 아들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사〉가 복잡한 서구의 미술사를 알기 쉽게 정리, 미술사가 낡은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재와 닿아 있는 생생한 연결고리임을 보여 주었듯, 이 책은 2,600여 년 전 붓다의 독창적 사유를 치밀하게 좇으며 불교에 대한 다음 의문에 답한다.

- 붓다는 왜 위대한 사상가인가?
- ‘업(業)은 작용이지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 붓다는 브라만교와 자이나교의 교리를 훔쳤는가?
- ‘무아(無我, No Soul)’인데 무엇이 ‘윤회’하는가?
- ‘열반(涅槃)은 언어의 세계를 초월한 상태’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 이 책은 믿을 만한가?

 ▲저자 리처드 곰브리치는?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그는 1970년 옥스퍼드대학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기불교 권위자인 그는 ‘옥스퍼드 불교학센터(Oxford Centre for Buddhist Studies)’를 설립했으며, ‘영국불교학협회(UK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회장이기도 하다. 2004년 옥스퍼드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할 때까지 28년 동안 산스끄리뜨 강좌 주임 교수(Boden Chair), 발리올(Balliol)대학 교수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200여 편의 논문과 단행본을 저술하였으며, 현재 세계 각지의 대학에서 강연을 계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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