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들은 색(色) 성(聲)을 필연적으로 쫓아 따라 가는 꿈의 세계에 살고 있으나 ‘이 뭣고’ 수행은 내안의 공성(空性)으로 회귀(回歸)시키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인 것이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 입니까? 구지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묻든 지간에 일생동안 검지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였다. 구지 선사 곁에서 시봉 하던 시자가 있었는데, 어느날 선사가 출타중 마침 어떤 스님이 찾아와 “요즘 스님의 법문은 어떠신가?”하고 물으니 아무 말없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여 주었다.

매일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니 스님의 흉내를 낸 것이다. 선사께서 돌아오셔서 “누구 찾아온 자가 없었더냐” 말하니 시자가 말했다. 하루는 선사께서 주머니 칼을 몰래 숨기시고, 시자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 인고” 말하니

시자가 검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자, 선사께서 얼른 그 검지 손가락을 잡고 칼로 잘라 버리니 피를 흘리며 달아나자, 구지 선사께서 “아무게야”하고 시자를 부르셨다. 시자가 울면서 고개를 돌리자, 재빨리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 인고” 하시니, 시자가 얼른 검지 손가락을 세우려다가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보고 홀연히 깨쳐 버렸다. 손가락의 뿌리(空性)를 본 것이다.

관색관공(觀色觀空) 즉색공(卽色空)이라, 즉 ‘이 뭣고’로 색을 관하니 색에서 공을 본 것이다. 중생들은 색(色) 성(聲)을 필연적으로 쫓아 따라 가는 꿈의 세계에 살고 있으나 ‘이 뭣고’ 수행은 내안의 공성(空性)으로 회귀(回歸)시키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인 것이다.

구지 화상이 태산에 토굴 짓고 정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날이 저물어 가는데 웬 비구니 스님이 혼자 육환장을 짚고 삿갓 쓰고 찾아와 예를 갖추지도 않고 거만하게 선상(禪床)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자 구지 화상이 “비구니는 비구니의 예를 갖추어야지” 말하자 “스님의 본래 면목을 바로 일러 주시면 삿갓을 벗고 오체투지하여 예를 올리겠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죽자 살자 수행한다고 했지만 비구니에게 꾸짖음 당한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분한 생각이 들어, 내일 토굴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백발 노인이 나타나 현몽하며 “내일 큰 도인 스님이 와서 너에게 법을 주실 것이니 기다리고 있거라”고 명했다.

저녁때가 되어서 노스님이 토굴에 찾아오니, 구지 화상이 실제 비구니에게 당한 일을 설명드리며 가르침을 청하자, 묵묵히 계시다가 찰나에 검지 손가락 하나를 세워드는 순간 구지 화상은 확철대오 했다.

이 사람이 바로 천룡(天龍) 스님이다. 그는 마조 스님의 제자 되는 대매법상(大梅法常) 스님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공안(公案)에 대한 성철 스님의 송(頌)은 이렇다. “삼천대천세계에 큰 불이 일어나 부처도 조사도 다 타고 없어 천지(天地)가 텅 비었는데, 다시 거기에 청산은 옛날과 같이 흰 구름속에 솟아 있네. 혀끝을 삼천리 밖에서 놀리니 유리 항아리 속 별천지의 해와 달이 스스로 분명하다”고 하였다. 유리 항아리 속 별천지에 해와 달이 분명하다는 이 뜻을 바로 알면, 구지 화상이 확연히 깨친 소식을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야부 스님 송(訟)에 “천척사륜직하수(天尺絲綸直下垂) 일파재동만파수(一波動萬波隨) 야정한수어불식(夜靜寒水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라는 것이 있다. 이를 풀이하면 “천길이나 되는 낚시줄을 깊은 바다에 드리우니 한 물결따라 만가지 파도가 뒤따르네. 밤은 깊고 물이 차니 고기 하나 물지 않으니 빈 배에 허공(虛空)만 가득싣고 달빛속에 돌아오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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