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원각경(圓覺經) 2

중생이 일체 모든 생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불교를 만나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불자들은 법문을 사찰에서 직접 듣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TV, 라디오를 통해 많이 접한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수행을 하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일방적인 깨침에 대한 정보만 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세계다. 고통을 어떻게 참고 인내해야 할 것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를 보고, 듣고, 이해하여 반드시 실천하면서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娑婆世界 見聞解行處).

수행은 단계별로 이루어진다. 단 한 번의 수행이나 공덕으로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 학습, 끝없는 정진이 행복을 가져온다.

〈원각경〉을 중생의 행복을 위한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안내서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의 완성인 원각이 원융불이(圓融不二)함을 밝히고, 동시에 그 곳으로 안내하는 수행의 길을 단계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처음 불교에 입문한 사람이 부처님의 지위(佛地)까지 이르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과정을 인지법행(因地法行)이라고 한다. 인지법행을 통해 수행자의 안목을 알아볼 수 있고, 수행법도 만나게 된다. 능엄경 편에서도 말한 삼매의 3가지, 사마타, 위빠사나, 선나를 적절히 섞어서 수행방법을 늘리면 ‘25가지 수행법’이 된다. 물론 상근기 수행자는 믿고 이해하여 즉시에 깨닫지만, 중근기는 이해한 뒤 실천행을 통해, 하근기는 방편에 의해 원각묘심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중생들의 근기에 맞춘 눈높이 수행법이 담겨져 있다. 청정한 원각, 일심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우리도 〈원각경〉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바가바께서 신통한 대광명장에 드시어 삼매를 바로 수용하시니 모든 여래들이 광명으로 장엄하여 머무시는 자리이며, 이곳은 모든 중생들이 청정한 깨침을 하는 곳이며, 몸과 마음이 적멸하여 평등한 근본자리로서 시방에 원만하여 불이(不二)를 수순하시며, 불이의 경계에서 모든 정토를 나투었다. 대보살마하살 십만명과 함께 하시니 그 이름이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보안보살, 금강당보살, 미륵보살, 청정혜보살, 위덕자재보살, 변음보살, 정제업장보살, 보각보살, 원각보살, 현선수보살 등이 모든 권속과 더불어 상수가 되어 삼매에 들어 여래의 평등한 법회에 함께 참여하였다.”

바가바는 부처님의 이칭(異稱)이다. 법신이나 보신의 의미가 깊은 부처님 명호다. 이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니 모든 여래의 광명이 함께하고 중생들도 모두 깨친다는 그 곳은 정토, 즉 불국토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각양각색으로 차별되어 있지만 적멸인 이곳에서는 중생이나 부처님이 모두 평등하다. 부처님과 중생이 평등하니 이 둘이 차별 없음은 당연한 일이라 불이수순(不二隨順)이라 한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 중에 ‘평등’, ‘불이’, ‘청정’, ‘자유자재’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마도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도 이 말을 듣기만 해도 평온한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그대들은 모두가 나와 더불어 평등하니 청정한 부처의 마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거라.”


12명의 제자들 중에 제일 먼저 문수사리보살(Manjusri, 묘길상)이 부처님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① 부처님이 최초에 일으켰던 마음으로 수행한 즉 인지법행에 대하여,

② 보살들이 대승법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모든 병을 여의는 방법에 대하여,

③ 말세중생으로 하여금 대승을 구하는 이들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빠지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어떤 방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했는지 돌직구로 물었다.

“대견하고 기특하구나, 너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미래의 말세 중생을 위하여 이렇게 묻는구나. 자세히 듣거라.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해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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