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절제·중도소비는 부자되는 지름길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절제·중도소비는 부자되는 지름길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10.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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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불자의 저축과 부채

 

요즘은 경기예측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경기가 침체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등했고 경기가 활성화되다 과열되면 다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침체기를 겪는 파동을 보였다. 요즘은 경기가 침체하면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다시 침체하는 장기 침체 현상이 생겼다. 예를 들어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뒤에 다시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돈을 찍으면 인플레가 생겼는데 요즘은 반대로 디플레가 발생한다. 이처럼 과거의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새로운 현상을 뉴노멀 즉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고 부른다. 경제침체가 전 세계로 퍼지다보니 모든 국가의 경기침체를 일본화(Japanization)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주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일본은 최근 아베노믹스에 의해 돈을 찍어대고 수출이 증가하여 기업 일자리가 늘어 경제가 활성화되는가했지만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미래에 대비하여 저축만 하고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란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니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저축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저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지갑을 닫고 소비는 꽁꽁 얼어붙는다.

소득보다 소비가 적어야
절제와 중도적 소비 필요
부채는 분수에 맞아야 해

과거에는 이자율이 올라가면 저축이 늘었는데 요즘은 이자율이 내려가야 저축이 는다고 한다. 이것도 뉴노멀이다. 저축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자 저축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말도 자주 나오고 있다. 과연 저축은 미덕이 아닐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저축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돈을 써야 한다고해서 우리가 억지로 소비할 필요는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구태여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방법을 쓸 필요는 없다. 정부도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가 늘도록 해야지 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소욕지족의 삶을 추구하며 단순 소박한 경제생활을 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게 불교적인 삶이다.

일본에서는 장기침체가 계속되자 젊은이들이 소비를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산다. 일본 사람들은 사고 싶은 것도 억제하고, 한 때 해외여행을 많이 했었는데 해외여행까지도 억제한다. 단순 소박한 삶에 만족하는 삶의 양태를 보고 사토리 세대라고 표현한다. 즉 득도한 세대, 도통한 세대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대별 행복도를 조사하니 젊은이들이 가장 행복도가 높았다. 취업도 어렵고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세 가지 즐거움도 포기한 삼포 세대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이유를 젊은이들이 큰 욕심 갖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본의 뒤를 따라 간다고 했던가? 일본의 사토리 세대처럼 우리 젊은이들도 득도한 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과연 저축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중아함경〉은 “재물을 구한 뒤에는, 그것을 나누어 4분(四分)으로 만들라.’ ‘1분으로는 음식 만들고, 1분으로는 농사 장만하고, 1분은 모두 간직해 두어, 급한 때의 쓰임에 이바지하고.’ ‘농사꾼이나 장사꾼에게 주어, 나머지 1분에는 이자(利子)를 나게 하고…”라고 설한다. 이 구절이 유명한 사분법(四分法)에 대한 설명이다. 돈을 벌면 1/4은 음식에 사용하고, 1/4은 농사 짓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직업을 위해 혹은 업무를 위해 사용하며, 1/4은 저축하여 비상시에 사용하고, 1/4은 농사꾼이나 장사꾼에게 주어 이자를 받으라는 지침이다. 여기서 1/4이라면 매우 많은 액수에 해당한다. 오늘날은 1/4은 고사하고 1/10도 저축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결혼한지 몇 년이 지나도 저축을 못하여 전세값이 오를 때마다 부모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자 한 번은 자식을 불러 놓고 치사하지만 일일히 지출을 따졌다고 한다. 자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저축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늘날은 그저 벌어서 겨우 생존하기에 급급한 시대이다. 1/4은 고사하고 1/10도 어렵지만 이럴 수록 조금씩이나마 저축해서 미래의 험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급한 때의 쓰임’이라고 힘든 상황에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조금이라도 목돈이 생기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지만 저축이 없으면 위기 상황에서 빚에 내몰리게 된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저축할 수 없을만큼 힘든 경제생활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저축밖에 길이 없다. 커피 마시지 말고 택시 타지 말고 외식을 줄이면 조금이나마 저축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언제까지나 내 탓만 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삶이 이렇게 힘든 것은 나의 능력과 ‘노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제구조와 분배가 잘못된 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과거 저축률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이 안 갈 정도다. 물론 옛날에는 이자율이 높았지만 지금은 저축 성향이 줄어든 탓도 크다. 요즘 젊은이는 한 달 벌어서 모두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은 소득보다 소비가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소득과 소비의 차액은 저축이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절제도 중요하다. 다만 인색하면 안되고 중도적 소비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은행에서 보통 사람이 돈을 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심지어 부동산 담보를 제공해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은행이 가진 돈은 정책금융으로 기업에게 제공되었다. 선진국에서는 담보도 없는 보통 사람이 신용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과거에는 목돈이 필요하면 반드시 저축해서 목돈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의 신용만 있으면 담보 없이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릴 수 있다. 게다가 저금리 현상이 오래 지속되어 누구나 부채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심심치 않게 경제 위기의 요인으로 언론에 보도된다.

부처님은 부채를 허용하고 이자의 증식도 허용하고 있지만, 분수에 넘게 부채를 부담하는 것이 고통이라고 설하셨다. 〈중아함경〉은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빈궁한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이자가 늘어 가는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빚 주인의 독촉을 받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의 빚 주인이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빚 주인에게 묶이는 것은 큰 고통이라 하느니라”고 설한다.

지출과 소비에 있어서 분수에 맞고 적정해야 중도적이듯 부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부채는 분수에 맞아야 한다.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서 이자가 늘어간다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부채를 조달하여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둘째 부자는 부채가 많아도 갚을 수 있기에 분수에 어긋나지는 않다. 그러나 필요하지도 않은데 이자가 낮으니 일단 은행에서 빌려 현금을 확보해놓자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 게다가 부자는 신용이 높기에 이자율이 낮고 가난한 사람은 신용이 낮기에 이자율이 높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빌리려할 때 부자가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빌려가버리면 가난한 사람이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돈을 빌려야 한다.

어떤 부자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투자자를 모으고 부채를 조달하느라 열심히 노력하기에 내가 ‘사장님은 돈도 많으신데 왜 투자자를 모으고 돈을 빌리려 하십니까?’라고 묻자 ‘사업은 내 돈으로 하는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때 부자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만약 사업계획이 전망이 없으면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기에 투자자가 모인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한 사업계획이 사람들에게 먹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주식회사는 파산해도 투자한 자본만 포기하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경영권을 쥐는 수준에서만 투자하고 남의 돈을 투자받거나 빌리려고 한다. 망하면 내가 투자한 일부 지분만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유능한 사업가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재벌 총수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은 어렵다. 사람의 능력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돈을 얼마 빌릴 수 있는가도 중요한 능력이다. 따라서 부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지나친 부채가 문제일 뿐이다.

은행 이자가 낮다보니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것을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채는 인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항상 불확실이라는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은행 이자가 2%이고 빌딩의 임대수익율이 6%라고 하자. 돈을 빌릴 수 있다면 빌딩을 구입할수록 돈을 번다. 6%의 임대수익에서 이자와 세금 등을 제외해도 3%의 순수익은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을 빌리면 빌릴 수록 이익이다. 그러나 만약 은행 이자가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순수익이 은행이자가 오른만큼 줄어들게 된다. 순수익이 줄어들면 빌딩을 내다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만약 빌딩이 쉽게 팔리지 않거나 구입가 이하로 팔리면 부채도 못 갚을 수 있다. 경제가 악화되면 은행 이자가 오르지 않아도 빌딩의 임대 수익이 하락하기에 복병은 여러 곳에 있다.

〈장아함경〉은 “어떤 사람이 남의 돈을 빌어 장사하여 큰 이익을 얻고 돌아와 본 주인의 재물을 돌려주고도 남는 재산이 쓰기에 넉넉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원래 남의 돈을 빚내어 뜻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익을 얻고 돌아와 본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고도 남은 재산이 쓰기에 족하다.’하고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큰 환희심을 내는 것과 같다.”고 설한다. 비록 부처님이 부채와 이자수익을 적극 장려하지만 부채가 없는 상황을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꼭 필요한 적정 부채만을 조달하되 결코 분수에 어긋나는 액수를 빌려서는 안되고 가능하면 부채는 빨리 상환하는게 좋다.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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