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하위직 소임-소직(小職)

‘두(頭)’자는 접미사 용도
소임과 존칭 잘 구별해야

 

(1) 다두(茶頭)

다두(茶頭)는 차를 끓이는 소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각(茶角)이라고 한다. 다두는 승당(僧堂, 禪堂)의 다두를 지칭하지만, 그 밖에도 각 요사마다 다두가 있었다. 방장(주지실)의 다두, 수좌료(首座寮)의 다두, 유나료의 다두, 지객료의 다두, 고원(庫院)의 다두 등이 그것이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처럼 중국 총림에서도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은 일상이었다. 방장과 승당의 다두를 제외한 각 요사의 다두는 보통 행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일컬어 ‘다두행자(茶頭行者)’라고 한다. 소임 끝에 붙어 있는 ‘두(頭)’자는 머리, 또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로서 앞 글자를 명사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원두(園頭)

원두(園頭)는 채소밭을 관리하며 채소를 제 때 재배(栽培)해서 고원(庫院, 주방)에 공급해 주는 소임으로 원주(園主)라고도 한다. 〈칙수백장청규〉 ‘열직잡무(列織雜務)’ 편에는 “원두는 근고(勤苦)를 아끼지 말고 몸으로 솔선해야 한다. 채소를 파종해야 할 시기를 놓치지 말고, 물을 주고 길러서 주방에 공급해야 한다. 채소가 결핍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원두는 우리나라의 농감(農監)과 같은 소임이다. 원두가 주로 재배하는 채소는 상추, 순무, 근대, 가지, 호박, 오이, 해바라기, 무, 장다리, 시금치, 난향(蘭香, 향신료의 일종), 결명자(決明子) 등이었다. 특히 결명자 씨앗은 간(肝)의 열(熱)을 내려서 눈을 밝게 하며 두통, 변비에도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3) 마두(磨頭)

마두(磨頭)는 마주(磨主)라고도 하는데, 정미(精米)ㆍ제분(製粉) 담당이다. 〈칙수백장청규〉에는 “마두는 반드시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는데, 쌀 한 알, 곡식 한 알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두 밑에 여러 명의 마두행자가 있는데, 그 유명한 6조 혜능 선사도 행자 시절(노행자)에 8개월 동안 이 일을 했다고 한다. 혜능 선사가 방앗간에서 디딜방아로 쌀을 찧는 장면은 사찰의 벽화에도 나온다.

선원총림에는 직영 정미소가 있었는데, 그것을 ‘마원(磨院)’이라고 한다. 정미(精米)나 제분(製粉)은 주로 연애(, 맷돌)라고 하는 큰 맷돌을 사용했는데, 말이나 당나귀가 돌리는 육연애(陸)와 물방아를 이용하는 수연애(水)가 있었다. 당대(唐代)는 주로 물을 이용하는 수연애를 사용했고, 송대에는 육연애를 사용했다. 수연애는 속도가 느리고, 육연애는 속도와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4) 수두(水頭)

수두(水頭)는 세면장 물 공급, 세면장 청소 관리를 담당하는 소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새벽 기상 때에 사용하는 온수를 끓여서 공급하는 일이었다. 〈칙수백장청규〉 ‘열직잡무’ 편에는 “반드시 오경(4시)에 탕(더운 물)을 끓여서 대중의 세수, 양치물을 공급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밖에 아약(牙藥, 치약), 수건(手巾), 면분(面盆, 세숫대야) 등도 항상 갖추어 두고, 또 겨울에는 수건을 잘 말려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5) 노두(爐頭): 노두(爐頭)는 승당(선당)의 화롯불 담당자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당송시대 강남의 선종 사원의 승당은 모두 마루(장련상)였다. 온돌방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여름에는 상관없지만 겨울이 되면 냉기가 돌아 화로를 피워 냉기를 제거했다.

화로는 승당 한 가운데를 조금 파고 설치한다. 연료는 숯(炭)이다. 가을에는 음력 10월 1일에 설치하여 다음 해 2월 1일에 철수한다. 화로를 설치하는 것을 개로(開爐)라고 하고 철거하는 것을 폐로(閉爐)라고 하는데, 설치하고 나서는 방장으로부터 법문을 듣는다. 개로한 후에 듣는 법문을 개로상당(開爐上堂), 철거한 이후에 듣는 법문을 폐로상당(閉爐上堂)이라고 한다.

(6) 탄두(炭頭): 탄두는 숯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소임인데 숯은 겨울철에 화로(火爐)ㆍ난로(煖爐)와 차를 달이는 데 사용했다. 청규에서 “노두(爐頭)와 탄두 이 두 소임은 서로 조화가 잘 되는 사람으로 택하라.”고 당부하고 있듯이, 화롯불 담당인 노두와 숯 담당인 탄두는 떼려도 뗄 수 없는 사이이다.

(7) 화두(火頭): 화두는 부엌에서 공양주가 공양을 지을 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을 맡은 소임이다. 〈선원청규〉 9권 작무제삼(作務第三)에는 “화두는 불을 지핌에 항상 긴만(緊慢, 화력을 강하게 하고 약하게 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불 조절을 잘해 주어야만 맛있는 공양을 지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대(火臺)는 주로 각 방에 불을 때는 소임이다.

(8) 욕두(浴頭): 욕두는 목욕탕을 관리하는 지욕(知浴)이나 욕주(浴主) 밑에서 잡무를 돕는 행자를 말한다. 지욕이나 욕주는 6두수의 일원으로서 상위직이고 욕두는 하위직이다.

(9) 등두(燈頭): 등두는 등불과 등유(燈油) 등을 맡은 소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명등(明燈)이라고 한다. 주로 장명등, 무진등 등 불전(佛殿)이나 대중전 등 전각 앞에 등불을 관리한다.

(10) 시두(柴頭): 시두(柴頭)는 땔나무를 공급ㆍ관리하는 소임이다.

(11) 반두(飯頭)ㆍ공두(供頭)ㆍ공사(供司)ㆍ공양주(供養主): 위의 4가지는 명칭만 다를 뿐 모두 부엌에서 밥을 짓는 소임이다.

(12) 채두(菜頭): 반찬 등 부식물을 만드는 소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채공(菜供)이라고 한다.

(13) 종두(鐘頭): 조석 예불 및 법회 등이 있을 때 종을 치는 소임이다.

(14) 정두(淨頭): 동사(東司), 즉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소임으로 지정(持淨)이라고도 한다.

(15) 마호(磨糊): 빨래에 먹이는 풀을 쑤는 일을 담당하는 소임이다. 어떤 책에서는 마호를 마두(磨頭)라고 한 곳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두는 정미소 담당이다.

(16) 정인(淨人): 정인(淨人)은 속인으로 절에 살면서 부목(負木) 등 잡무를 맡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정인(淨人)이란 인도불교 계율에서 나온 것으로, 비구는 농사도 못 짓고, 땅도 못 파고, 나무 하나도 베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곤충 등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대신 해 주는 사람을 정인이라고 하는데, 사찰에 종사하는 일반인을 지칭한다. 요즘 종무원들도 모두 정인에 속한다.

다두(茶頭)는 차를 끓이는 소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각(茶角)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 선원의 새로운 소임〉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에는 선덕(禪德)ㆍ선백(禪伯)ㆍ선현(禪賢), 한주(閒主), 열중(悅衆), 청중(淸衆)이라는 소임이 있다. 그런데 〈선원청규〉ㆍ〈칙수백장청규〉 등 청규에는 열중(悅衆)만 있고 나머지 소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즉 열중을 제외한다면 그 나머지는 모두 소임 명칭이 아니고 존칭이다. 선어록 등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한번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선덕(禪德)은 소임명이 아니고 선원의 대중들을 높여 부르는 말[존칭]이다. 우리말로는 ‘여러분’ 혹은 ‘대덕스님’ 정도가 될 것이다. 그 한 예를 보도록 하겠다.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질문했다. “도인들끼리 서로 만날 때에는 어떻게 합니까?” 조주 선사가 말했다. “칠기(漆器)를 드린다.” 이것을 두고 설두중현이 말했다.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조주의 뜻을 알겠습니까? 나와서 모두 함께 헤아려 봅시다. 만약 분명하게 가리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거론해 보시오. 그러면 그대를 점검해 주리다. 49는 36이오.”(〈禪林類聚〉 17권. “趙州禪師, 僧問. 道人相見時如何. 師云, 呈漆器. 雪竇顯云. 諸禪德, 還有識趙州底. 出來相共商量. 若未能辨明, 大好從頭擧. 與點破. 四九三十六.”(신찬속장경 67권 p.101a)

선백(禪伯) 역시 도(道)를 갖춘 스님에 대한 존칭(有道僧人的尊)이다. 백(伯)은 ‘어른’ ‘가장 우두머리’ 등의 뜻이다. 맏형님을 백씨(伯氏)라고도 한다. 이백의 시에는 “宗英乃禪伯(종영은 곧 선백이다)” “西菴禪伯多病(서암 선백은 병이 많다)” 등의 문구가 많이 나온다. 여기서 ‘선백(禪伯)’은 모두 존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려 보조국사 ‘정혜결사문’에도 “1188년 득재 선백(得才禪伯)의 초청으로 공산 거주사에서 합류했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선백은 소임이 아니고 덕이 높은 구참납자에 대한 존칭이다.

선현(禪賢) 역시 존칭일 뿐, 청규에는 그런 소임은 없다. 법명으로 사용된 경우는 있는데 지공선사(志空禪賢)이다. 한주(閒/閑主)는 한가하게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뜻인데, 이 역시 〈칙수백장청규〉등 청규에는 없는 소임이다. 이 역시 소임이라기보다는 무위자적하게 살아가고 있는 스님에 대한 존칭이나 덕담의 하나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선원에서는 ‘선덕(禪德)ㆍ선백(禪伯)ㆍ선현(禪賢), 한주(閒主)’가 소임으로 사용하고 있다. 용상방에 올라가 있는데, 어느 선원의 스님으로부터 “선덕(禪德)과 선현(禪賢) 가운데 어떤 소임이 더 상위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두 명칭이 청규에서 소임으로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누가 더 상위 소임이라는 자료가 없다. 선원장스님이 정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덕망 있는 스님에 대한 존칭일 뿐 청규에는 없는 소임이다.

다음은 열중(悅衆)과 청중(淸衆)이 있는데, 열중은 유나의 중국 명칭이다. ‘유나(維那)’라는 말은 법도(法度)를 뜻하는 강유(綱維, 三綱ㆍ四維)에서 ‘유(維)’와 범어 갈마타나(磨陀那, 일을 지시하다)에서 ‘나(那)’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이를테면 중인(中印)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열중은 곧 유나이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유나’ 장(章)에는 “범어로는 유나, 우리나라(중국)에서는 열중(悅衆)이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중(淸衆)은 소임 명칭이 아니다. 청중은 ‘청정한 선원의 대중’, 즉 청정대해중(淸淨大海衆, 청정한 대해 같은 대중)의 준말이다. 흔히 승당(선당)의 대중을 가리켜서 청중(淸衆)이라고 한다. 만일 꼭 소임 명칭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의미상에서는 열중이나 유나와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 근대에 용상방을 보면 선덕(禪德)ㆍ선백(禪伯)ㆍ선화(禪和)라는 소임이 있었다. 조선 중기 〈작법규감〉 용상방에는 선덕(禪德)ㆍ선백(禪伯) 등의 소임명이 나오고 있는데, 차례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證明·會主·秉法·衆首·禪德·禪伯·禪和·持殿·察衆·維那” 등이다. 위계(位階)는 선덕(禪德)ㆍ선백(禪伯)ㆍ선화(禪和) 순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는 선덕(禪德)ㆍ선백(禪伯)이 소임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기준에 따른다면 선백보다는 선덕이 상위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덕과 선백은 1928년에 발행된 〈조선승려(修禪提要)〉에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선덕과 선백은 우리나라에서는 존칭 겸 용상방 소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선현(禪賢)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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