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의 사십팔원 가운데 세 번째로 ‘동진금색원(同眞金色願)이 있다. 이것은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무상복락을 이루어 달라는 발원을 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통일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들떠있다. 남북으로 갈려 대치 상태에 있는지 70년이 다 되어 비로소 통일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겐 과거 수많은 통일의 조짐이 보였었다. 1972년 이후락 前 중앙정보부장이 밀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후 서울과 평양서 동시에 공동 성명이 발표됐다. 이때도 온 나라가 통일이 된 것처럼 통일 열기로 가득했다.

1998년에는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몰고 육로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간 일도 우리 기억속에 생생하다.

당시 소를 왜 1천마리면 천 마리지 천 한마리냐는 주위의 질문에 정주영 회장은 서슴없이 “하나는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절되지 않고 계속 되게 하기 위한 생각에서였다”고 즉답했다.

하지만 이 좋은 분위기들은 그때마다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북한의 핵 실험과 로켓발사를 계기로 한반도는 격변의 장으로 변했으며, 남-북간 대결현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회담으로 한반도는 다시 평화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제 한반도의 눈과 귀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쏠려있다. 가장 큰 기대는 비핵화일 것이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이제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에 발맞춰 북한과의 종교 문화 교류에도 불교계가 앞장서야 한다. 불교는 남북 공히 가장 중요한 민족문화유산이다. 북한서도 불교는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 팔 벗고 나선 종교이자, 고락을 함께한 종교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이 무궁화처럼 인욕하는 힘이 바로 불교에서 나왔다. 남북불교계는 현재 법회의식과 교리 또한 거의 같다. 이는 조금만 교류가 된다면 함께 융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도 된다. 이미 불교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외적, 내적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실천만이 남은 셈이다.

언제나 남북통일이라는 기대감이 커질 때면 어김없이 분단의 비극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계기로 대치 상황은 극에 극을 달리고, 국민들이 항상 뒤에서 “북한이 그러면 그렇지”하고 개탄 한다. 그러나 통일에 거는 기대와 희망만큼은 거의 똑같다. 아니 반세기가 지나면서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 같다.    
 

태안 보타락가사 주지 법진 스님

그러면 우리는 왜 수없이 실망하고 또 내려 놓으면서도 남북통일을 그토록 열망하고 바라는 것일까? 한마디로 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부처님 말씀으로 답과 의미를 대신한다.

부처님께서는 <사십이장경> 제29장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뭇 중생은 권속과 애욕 등에 걸려있는 것이 감옥보다도 더 무섭다. 감옥은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지만 혈육과 권속에 대한 욕망과 정은 죽어도 오히려 달게 아는 고로 고통에 쇠사슬인줄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느니라.” 이렇게 무섭도록 끈끈한 정을 우리는 70년이 다 되도록 이산의 아픔을 안고 지냈다. 빨리 그 고통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날이 빨리 오길 부처님전에 간절히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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