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원각경(圓覺經) 1

가을이다. 나는 지난여름 엄청난 폭염에 시달린 탓인지 가을이 와도 심드렁하여 아름다운 산과 고요한 바다도 그립지 않았다. 그러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가르침에 깜짝 놀랐다.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에 강의를 위해 머물고 있는 계룡산 계곡과 문필봉에 푸른 잎이 사라지고 우아한 노란 빛으로 기가 막히게 물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아, 산도 정진하는구나 생각하니 난생처음 산이 멋져 보였다.

저 산이 날마다 자라고 물들어 가는 일에 일념을 다하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더위나 추위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말과 뜻과 같이 정진하면 수행의 힘이 그를 얼마나 격조 있는 인물로 만들어 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바람처럼 흘러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얼른 공부 길을 일러달라던 보살님처럼 금생에 인간의 몸 받아 깊은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 그 분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고결하다. 그 고결한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는 〈원각경〉을 드리고 싶다.

〈원각경〉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으로 한글대장경 163책 〈십지경〉 p.562에 수록돼있다.

제목의 의미는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내용을 가진 원각을 설명함이 모든 수다라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된다’다. 원각(圓覺)은 바로 깨달음의 완성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중생을 행복한 세계로 초대하려는 우리 부처님의 따뜻한 마음이다. 부처님처럼 살기를 원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바로 이 경이다.

고려 때 지눌 선사가 이 경에 반하여 〈요의경(了義經)〉이란 명칭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으며,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이 탄생한 후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으로 발간되었다. 당시 위대한 선승이었던 함허 득통선사께서는 〈원각경〉을 〈화엄경〉의 축소판이니 공부인은 누구나 읽고 수행하라고 불교전문강원 교재로 채택하게 되어 지금도 승가대학의 3학년 교재로 초심수행자들에게 탁월한 깨침의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처님과 12명의 제자들이 모여 수행의 모든 과정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 주제를 발표하고 질의응답하고 논의한 내용이다. 누구나 깨달음에 관한 수행계획서를 세울 수 있는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결론을 도출해 놓은 책이다. 〈원각경(圓覺經)〉은 〈유마경(維摩經)〉, 〈능엄경(楞嚴經)〉과 더불어 선(禪)수행의 3대 경전으로 한국불교의 선가(禪家)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경전을 읽고 배우는 데 길을 확실하게 열어 준 중국의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과 조선의 함허 득통(涵虛得通, 1376-1433)은 그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들이 바라본 부처님의 세계는 위대하고 찬란했고 그 길을 찾아가려는 이들에게 알려줄 깨침의 세계에 관한 방법도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았다. 규봉과 종밀은 〈원각경〉을 통해서 당시 민중들이 당면한 ‘앎에 대한 인지작용(因地法行)’에 관한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며 그 해답을 찾아 소와 초를 저술했다. 재가자인 배휴(裵休, 791-864)는 종밀의 〈대방광원각경소〉의 서문을 썼는데 경을 읽기 전에 보면 정진하고 싶은 힘이 마구 솟아나는 웅변 같은 명문장이다.

“대저 혈기 있는 이들은 반드시 알려고 하는 인지작용(知)이 있다. 무릇 인지작용이 있는 자는 반드시 바탕이 있으니 참되고 깨끗하고 신령하며 묘하고, 텅 비었으면서도 신령하고, 우뚝하여 홀로 존재한다. 이것은 중생의 본래 근원이므로 ‘마음의 땅(心地)’이라고 하고, 이것은 여러 부처님께서 깨달아 얻은 바이므로 ‘보리(菩提)’라고 하며, 서로 용납하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있으므로 ‘법계(法界)’라고도 하고, 적정상락이라 ‘열반’이라 부른다. 더럽지도 않으니 ‘청정’하다고 하고, 허망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니 ‘진여’라고도 하며, 허물과 잘못이 없기 때문에 ‘불성’이라고도 하고 선을 하도록 부추겨주고 악을 막기 때문에 ‘총지(總持)’라고도 하고, 가려서 덮어주고 품고 있어서 ‘여래장’이라고도 하고, 만덕을 하나로 하여 완전히 갖추고 모든 어리석음을 녹여 없애 홀로 비추므로 원각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 모두가 ‘일심(一心)’이다. 일심을 등지면 범부요. 일심을 따르면 성인이다. (중략) 온종일 원각을 구하건만 원각을 전혀 모르는 자는 범부요, 원각을 깨치려 하나 원각을 완전하게는 깨치지 못한 자는 보살이며. 원각을 온전하게 갖추어 원각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가 여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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