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둘이 아니고, 색공이 둘이 아니라지만, 결국 경계에 부딪히니 귀천을 나누고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별했다.


사법계(事法界)는 조그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니 물에 안 빠지고 싶지만 빠져서 괴롭고, 결혼도 하고 헤어지고, 성공도 실패도 하는 것이 인생살이다.

‘이사무애법계(理事无涯法界)’는 큰 배를 타고 파도의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물에 안 빠지게 된다. 그러나 물에 빠진다 안빠진다를 떠나서 물에 빠지면 전복을 따고 진주 조개를 주우면 되니 둘로 나누지 않는 세계가 ‘사사무애법계(事事无涯法界)’이다. 원효대사가 당대 최고의 스님으로 명성을 날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있을 때 대안(大安) 스님은 경주 남산 골짜기서 움막속에 살면서 산짐승들이나 돌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걸승인 대안 스님을 길거리서 만나게 됐는데, 나와 같이 가자고 하여 가본곳이 비천(卑賤)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창녀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었다. 그런데 술집 주모에게 술 한상 가져오라고 하니,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왕족과 귀족은 물론 상류층과 교류해 온 원효대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니, 대안 스님이 원효대사의 등 뒤에서, “여보시게 원효,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중생을 여기두고 어디 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경주 분황사에 돌아와서 부처가 둘이 아니고, 색공(色空)이 둘이 아니라고 법문은 했지만, 결국 경계에 부딪히니 귀천(貴賤)을 나누고 깨끗한 것을 취하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깨닫고 원효대사는 아무도 모르게 감천사라고 하는 절에 가서 부목(負木) 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그 절에는 방울 스님이라고 하는 볼품없는 꼽추 스님이 있는데, 행동조차도 어린 아이와 같아서 스님들 사이에서 천대(賤待)를 받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나름대로 방울 스님을 특별히 보살펴 주었다. 한동안 마물다가 원효대사가 한밤중에 짐을 챙겨 조용히 대문을 열고 막 나가려고 하는데, 문간방에 사는 방울 스님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면서 “원효 잘가게” 하면서 방문을 탁 닫아 버렸다. 순간 원효대사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된다.

원효대사가 하심(下心)한다고 갖가지 어려움을 참고 보살행을 했지만, 그러나 방울 스님은 보살핌을 받아야할 불쌍한 스님이 아니라 이미 깨달아서 밝게 보는 분이었고, 동촌에 살고 있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구제받아야 할 중생이라는 것은 원효대사의 생각이고, 구제받아야 할 중생은 바로 명성(名聲)과 권위(權威)라는 헛된 상(相)에 사로잡힌 원효대사 바로 자신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것을 벗어던지기 위해 수행자에게 있어서 목숨과도 같은 계율을 요석공주에게 파계(破戒)하고, 원효대사는 파계한 승(僧)으로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성거사’라 스스로 칭하고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광대복장을 하면서 동촌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된다.

이단계가 화작(化作)이며 ‘사사무애법계(事事无涯法界)’인 것이다. 원효대사가 부목(負木)일 때는 부목을 흉내내는 원효라는 자아(自我)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목이 부목질 하는 것이니 원효대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어부가 되고, 농사를 지으면 농부가 되고 술을 마시면 술꾼이 되고 소를 잡으면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백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사무애법계인 ‘화작(化作)’ 이라고 한다. 또한 ‘사사무애법계’의 사람은 우리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똑같이 어울린다. 화도 내고, 술도 먹고, 싸움도 하니 표가 안난다. 때로는 법상(法床)에도 앉게되고 민중 속에도 함께하며 현생에서 자유자재권을 누리는 것이다. 일체무애인(一切无涯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 생활속에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수행으로 망념과 집착서 벗어난 무애인(无涯人)이 되어야 금생에 생사(生死)를 해탈하는 대도(大道)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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