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치심을 닦아 CEO 인재가 되다

‘탐진치’ 중 치심을 닦아 CEO 인재가 되는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최고 경영자라 합니다. 그렇다면 CEO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모른다는 생각 역시 착각인 줄 알고 그 생각을 부처님께 바쳐라.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진 그 자리에 부처님 광명이 임하게 되어, 모를 것 없이 다 알게 될 것이니라.”

선지식의 말씀입니다. 지혜롭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하겠다고 설치다가 잘 안 되면, “왜 안 되냐?”며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듯하면,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름 짓고 만족해합니다.

선지식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본래 부처님처럼 위대한 존재요 밝은 존재이기에, 세상의 작은 목표 달성에 만족하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름 짓는 것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일이요, 무지의 소치라는 말씀입니다. 치심이 곧 무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무지의 마음은 아무 형상이 없기에 부처님께 바칠 번뇌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나지 않고 습관화 된 번뇌 역시 다 바쳐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일에 봉착했을 때 처음에는 알려고 시도합니다. “이 무엇인고?” 하는 참선의 화두 역시 우주의 진리를 알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한결 같이 알고자 하면, 대개는 답이 느닷없이 알아지게 됩니다. “이 무엇인고?” 하며 시종일관 알고자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모르겠다고 이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 무엇인고?”는 모른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어째서 모르겠다는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치면 알아지게 될까요?

지금 두 학생 A와 B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문제를 풀기 위하여 집중하고 정답을 찾으려 합니다. 똑같이 집중했지만 시험 친 결과 A가 B보다 성적이 우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A가 머리가 좋으니 어찌 B가 A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A는 문제를 대할 때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특성이, 쉽게 ‘모르겠다.’를 내뱉는 B학생보다 성적이 좋은 이유라 말하실 것입니다. 꾸준히 알려고 하며, 모른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결국 누구나 다 알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겠다.’고 이름 짓는 순간 정말 모를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르겠다는 생각이 착각인 줄 알고 부처님께 바쳐야 알아지는 이유입니다.

〈금강경〉 공부하는 사람은 간화선 수행자처럼 “이 무엇인고?” 하며 알려는 마음으로 수행하지 않습니다. 알려고 설치는 마음이 탐심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탐심이 동하면 알던 것도 모르게 됩니다.

수시로 “모르겠다.” 자포자기하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데, 이때마다 이것이 잘못인 줄 알고 계속 부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수시로 부처님께 바친다면 꿈으로라도 알 수 있게 됩니다. 모르는 일을 꿈으로라도 알게 되면 이것이 지혜 발현의 시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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