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과 인구수 고려한 교구 재편 필요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모습. 각교구별로 산하사찰 수와 인구수에 따라 교구의 역량차이가 크다.

‘교구자치’, ‘교구중심’, ‘교구분권’, 이번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이 내건 교구제 관련 핵심공약이다. 언제부터인지, 조계종 총무원장선거 때마다 교구제가 중요 종책(宗策)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구(敎區)는 포교나 감독과 같은 운영의 편의를 위하여 나누어 놓은 종교적인 행정구역이며, 이 교구를 관리하는 제도가 교구제다. 그런데 교구제와 관련된 총무원장 후보스님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교구자치·교구분권·교구중심 등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선심성 공약은 많으나 정작 교구 자체에 대한 개선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필자는 한국불교에서 100여년이 넘는 교구제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적 관점에서 필요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구제는 일제잔재, 통합종단서 개편
50여년 전 체제 그대로 유지
국가행정구역과 일치 노력 있어야

교구제의 연원을 일제강점기인 1911년의 〈사찰령〉에서 찾는 시각이 많지만, 그 이전인 조선불교총종무소(朝鮮佛敎總宗務所)인 원흥사(元興寺)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 원흥사는 1899년에 조선왕조가 승려의 도성출입금지를 해제한 후 왕실서 세운 첫 사찰이다. 이 원흥사를 조선불교총종무소(朝鮮佛敎總宗務所)로 삼고 13도에 각 1개소의 수사(首寺)를 두어 전국의 사찰을 총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구제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원흥사는 총무원에, 수사는 본사에 해당한다. 이후 1902년, 이 원흥사에 궁내부 소속이었던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가 이전되었다. 이때 제정된 〈국내사찰현황세칙〉에는 교단체제가 대법산(大法山)과 중법산(中法山)으로 구성되어있다. 원흥사를 총무원인 대법산으로 하고, 16개의 대찰(大刹)을 본사인 중법산으로 지정한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1911년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이 공포되었다. 〈사찰령시행규칙〉에는 30본산(本山)이 지정되어있는데, 오늘날 교구본사들과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원흥사는 30본산으로 지정되지 못했으며, 한국불교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대본산 제도 자체도 사라졌다. 대본산 혹은 총본산을 지정 시 항일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배제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는 1924년 11월 20일 〈사찰령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를 추가로 포함하여 31본산을 성립시켰다. 이후 불교계는 1941년 4월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산태고사법〉을 제정하여 ‘사격을 총본사·본사·말사의 3종(제7조)’으로 하고 ‘태고사(현 조계사)를 총본사로 지정(제8조)’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불교계는 불교혁신을 위한 방안들을 논의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교구제였다. 교정(敎政) 기구의 개혁을 논의하면서 일제가 제정한 〈사찰령〉을 부정하고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산태고사법〉과 31본산제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조선불교교헌〉을 제정하고, 이전 본산체제를 각 도에 교구 교무원을 설치하여 각 도 교정의 중심으로 삼도록 하는 도별 교구제로 전환하였다. 즉, 서울의 중앙총무원과 13교구의 체제를 형성한 것이다. 이 도별 교구제는 불교정화운동의 과정을 거쳐 비구와 대처의 통합종단까지 유지되는데, 이후 불교재건비상종회는 통합종단의 종명을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정하는 한편 도별 교구제를 폐지하고 오늘날의 교구제인 25교구 본사제를 제정한다.

당시 지정된 교구본사는 1교구본사 총무원 직할, 2교구본사 용주사(경기도), 3교구본사 건봉사(강원도), 4교구본사 월정사(강원도), 5교구본사 법주사(충북), 6교구본사 마곡사(충남), 7교구본사 수덕사(충남), 8교구본사 직지사(경북), 9교구본사 동화사(경북), 10교구본사 은해사(경북), 11교구본사 불국사(경북), 12교구본사 해인사(경북), 13교구본사 쌍계사(경남), 14교구본사 범어사(경남), 15교구본사 통도사(경남), 16교구본사 고운사(경북), 17교구본사 금산사(전북), 18교구본사 백양사(전남), 19교구본사 화엄사(전남), 20교구본사 선암사(전남), 21교구본사 송광사(전남), 22교구본사 대흥사(전남), 23교구본사 관음사(제주), 24교구본사 선운사(전북), 25교구본사 봉선사(경기)이다.

이 25교구본사의 공식지정 전에 비구측은 이미 1959년 각도의 교무원을 해체하고 전국에 24개 수사찰(首寺刹)을 두었는데, 이것을 통합종단의 종헌에서 교구본사로 확정지었다. 현재의 조계종은 3교구본사를 건봉사에서 신흥사로 변경하고, 특별교구인 군종교구와 (미국동부)해외교구를 각각 1곳씩 신규로 지정한 것 이외에는 통합종단 출범시의 25교구본사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교구제는 조계종에 특정된 제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260개 이상의 불교종단이 있으며, 이중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태고종,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진각종이 흔히 4대 종단이라고 회자되며,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이라고 약칭한다.

그중에서도 조계종이 가장 크며, 25개 지역교구와 2개의 특별교구(군종교구, 해외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교구별로 교구의 종무를 관장하고, 해당 관할의 사찰을 지휘 감독하는 본사를 두고 있으며, 그 대표권자를 본사주지로 지정하고 있다. 태고종은 27개 지역교구와 1개의 해외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교구별로 업무를 총괄하는 교구종무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대표권자를 교구종무원장이라 칭한다. 천태종은 총본산인 구인사의 산하에 모든 사찰이 말사로 소속되어 있으며, 교구 단위의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의 대표사찰을 중심으로 지회들이 조직되어 있으나 지회의 결성과 그 가입이 임의적이기에 조계종의 교구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진각종은 서울교구, 대구교구, 부산교구, 대전교구, 전라교구, 경주교구, 포항교구 등 7개의 교구로 획정되어 있으며, 각 교구에 심인당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교구청이 설치된 심인당이 교구의 업무를 총괄한다. 이 교구의 대표 심인당이 조계종의 본사에 해당하며, 그 대표권자를 교구청장이라 칭한다. 즉 한국불교의 소위 4대 종단 중 천태종을 제외한 조계종, 태고종, 진각종이 교구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불교의 종단 중 교구제 논의가 가장 활발한 조계종의 교구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 조계종의 교구제가 현시점의 사회적, 경제적, 지역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차원에서 교구제가 도입된 지는 이미 백년하고도 수십 년이 흘렀으며, 조계종의 차원으로 보더라도 현행 교구는 1962년 비구·대처 통합종단의 출범 시 획정된 것으로 50여 년이 경과하였다.

현행 조계종의 교구제는 조계사와 부산의 범어사, 대구의 동화사, 충북의 법주사, 제주의 관음사를 제외하고는 관할 범위와 국가행정구역의 분류가 일치되지 않고 있으며,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의 광역자치단체에는 교구본사가 아예 위치하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이들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관할 본사가 불분명하여 어느 본사도 책임지고 포교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교구의 포교 공동화(空洞化) 문제를 해소하고, 교구의 관리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구본사의 관할 지역을 국가행정구역과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미 각 본사별로 지역에 상관없이 설립된 말사들을 인위적으로 재편한다는 것은 본사간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불가피하게 유발할 수밖에 없는 바, 장기적 계획 하에 점진적으로 교구 편제를 조정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무원과 각 교구가 협의체를 구성하여 교구 관할범위를 합의 후 각 교구는 각자의 관할지역내에서만 소속의 말사들을 설립할 수 있도록 총무원이 허가해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교구관할구역과 국가행정구역의 일치라는 원칙 속에서, 비대한 교구는 분구하여 운영의 합리성을 제고하고 지역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직할교구는 그 비대성으로 인하여 여타의 교구에 비하여 분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조계종이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교구별 사찰 수에 있어서 1순위인 직할교구와 최하순위인 23교구는 13배 가까운 차이가 존재하며, 1순위인 직할교구와 2순위인 14교구 사이에도 2배가 훨씬 넘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교구별 승려 수에 있어서는, 1순위인 직할교구와 최하순위인 23교구는 36배 이상의 차이가 존재하며, 1순위인 직할교구와 2순위인 12교구 사이에도 2배 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상에 의하여, 사찰과 스님이 모두 직할교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종단의 행정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너무나도 비대해진 직할교구의 분구(分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직할교구의 분구는 서울의 지리적 여건상 분리가 편리한 강남과 강북으로 획정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할 수 있다. 강남은 봉은사를, 강북은 조계사를 교구본사로 지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남과 강북으로 직할교구를 분구하여도 여전히 그 비대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다소 구역의 획정이 복잡하더라도 인천(강화) 지역까지도 포함하여 수도권을 3개로 분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직할교구의 분구와는 별도로 교구본사가 미지정되어 있는 광역자치단체지역에는 교구의 획정 혹은 신설을 강구하여야 한다. 인구밀접지역인 광역자치단체는 주요 포교대상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의 광역시는 종단교구체계의 미비로 그 동안 교구관할이 불분명하였다. 이들 광역시에는 그 관할 교구본사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서 포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에 교구본사가 신설되거나 기존 교구본사간 관할구역이 획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이들 광역시에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교구의 신설내지 획정이 실제로 진행된다면 교구본사간 관할구역의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이에 특정한 광역시에 여러 본사가 중첩되어 말사를 창건하여 포교를 하고 있었다면, 단기적으로는 공동사무소를 설치 운영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는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