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僧’ 경봉 스님 면모를 살피다

통도사를 대표하는 경봉 스님의 진영(사진 왼쪽)과 시승으로서의 경봉 스님을 조명한 '경봉 정석의 한시 연구'(사진 오른쪽)

근대 한국불교의 산증인이자 통도사를 대표하는 선지식인 경봉 정석(鏡峰 靖錫, 1892~1982, 사진)은 선승(禪僧)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은 36세에 화엄산림 기간 중 오도하고 이후 통도사 극락암에 선원을 설립해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하며 근대 선풍의 중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선승의 면모 뒤에는 한시로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했던 시승(詩僧)으로서의 모습도 존재했다.

경봉 스님 남긴 ‘日誌’서
생애·사상·한시 등 분석
통도사 시승 계보도 조명


최두헌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의 연구저서 <경봉 정석의 한시 연구-생애를 중심으로>는 선승만이 아닌 시승으로서 경봉 스님의 면모를 조명한다.

시승으로서 경봉 스님을 조명할 수 있던 것은 스님이 자신의 삶을 <일지(日誌)>를 통해 남겼기 때문이다. 경봉 스님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이나 자연에 느끼는 감성, 주변인과의 교류, 문학작품들을 <일지>를 통해 남겼다. 저자는 <일지>를 기본으로 해 경봉 스님의 생애와 작품의 특성과 의의들을 분석·연구했다.

연구서는 총 5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제3장의 ‘경봉 생애의 시적 표현’이다. 저자는 경봉 스님의 생애를 오도 전과 오도기, 보림기로 나누고 시기마다 스님이 쓴 한시들을 분석해 그 양상을 살폈다.

최두현 실장은 “경봉 스님은 화엄산림법회 6번째 날인 12월 13일 새벽에 활연개오를 하여 이전까지 화엄의 테두리 안에서 경계 지어진 화엄의 틀을 깨고 조사선의 진정한 위용과 함께 선승으로서 이사무애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면서 “그 이후 읊은 시들은 화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닌 선을 기초로 하여 선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을 담아낸다. ‘평상심시도’를 통한 도의 실천과 자아를 일상과 자연에 합일시키는 일들이 그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도사 시승의 계보를 대략적으로 살핀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통도사의 시승 계맥을 총149수의 시를 수록한 시문집을 내놓은 환성 지안(1664~1729)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이후 면면히 이어져오던 시풍은 근대에 들어와 용악 혜견(1830~1908)이 주석하며 부활하기 시작했고, 성해 남거가 통도사 시풍을 부흥시켰다. 또한 성해의 제자인 구하·경봉·경하 대에 이르러 통도사의 시풍은 만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봉 스님은 평생 시를 통해 불교와 유교, 도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인생사를 주제로 동시대 사람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담아냈다”면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종교적 영역에도 국한되지 않았다. 이는 불교시사(佛敎詩史)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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