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울노인복지센터·원각사 무료급식소

서울 지하철 인구 중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하차하는 곳이 ‘종로3가’다. 이곳에는 한국사회 어르신들의 단상을 만날 수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노인복지센터 스케줄 관리는 ‘필수’, 취사선택 재미 ‘쏠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둘째 주 수요일. 광진구에 사는 김○○(71·남) 씨가 지하철 우대권을 찍고 안국역에 내렸다. 30분 거리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가기 위해서다.
오전 9시. 센터가 문을 여는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로비를 지나 익숙한 얼굴의 직원들에게 인사까지 마친 김 씨는 잠시 의자에 앉아 오늘 하루 일정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김 씨에게 오늘은 특히 스케줄 체크가 중요한 날이다.

하루 평균 3천여 명이 오가는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일명 ‘노인 핫플레이스’다.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6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이곳은 급식, 여가시설, 교양강좌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경우 없어”
요리·건강 등 프로그램
어르신 수요 맞춰 ‘호평’


센터를 찾은 기자에게 “여긴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김 씨는 호언장담했다.

센터 부속기관인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는 법률, 세무 등 전문 분야와 가족, 건강, 성 등 생활 분야 등 누구나 노년기에 겪을 수 있는 문제와 고민에 대한 전문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리 예약접수를 해둔 김 씨는 상속세 관련 일로 변호사와 7분 간의 상담을 마쳤다.

김 씨는 “센터 직원의 추천을 받아 오늘 처음 상담을 받아봤는데 짧지만 전문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알찬 시간이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음 일정을 위해 지하주차장을 지나 옆 건물인 분관으로 이동했다. 요리교실 시작시간까지 같은 층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가볍게 러닝머신을 걸으니 벌써 10시다. 요리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사가 환하게 반겨준다.

오늘의 메뉴는 오삼불고기. ‘해질녘 친구와 나누고픈 한 접시 요리’를 주제로 수업을 듣는 회원들은 전부 남자 어르신들이다.

김 씨는 “메뉴가 안주하기 딱 좋은 메뉴라 그런지 더 의욕이 생긴다”며 “배운지 벌써 2달이 됐다. 하다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왜 진작 요리를 배우지 않았나 싶다. 원래는 밥도 지을 줄 몰랐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씨는 강사 설명을 들어가며 재료손질부터 양념장 만들기까지 막힘이 없다. 서로 간을 봐주며 플레이팅을 마치고 나면, 다같이 밥을 퍼다 실습한 요리를 반찬삼아 점심을 해결한다.
‘스마트한 알림이’ 오후 교대를 하기 위해 찾은 본관 2층. ‘스마트한 알림이’는 어르신 봉사자가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스마트폰 사용 안내를 돕는 역할을 한다.

김 씨는 진료실 앞 알림이 부스에서 스마트폰 사용 안내를 돕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사용에 불편을 겪는 회원들에게 직접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문제를 해결해줬다.

잠시 여유가 생기자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해둔 복지센터 앱에서 내일 급식 메뉴를 확인한 김 씨는 활동일지를 사무실에 반납하고 복지센터 문을 나섰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누군가는 단순한 한끼, 어르신에겐 ‘진수성찬’
 

10월 9일 한글날 오전 11시. 탑골공원 옆 사이길 뉴파고다 빌딩 1층 앞으로 길게 장사진이 늘어선다. 모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이다.

탑골공원 무료급식은 1993년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새겨진 경구의 의미를 알리려던 보리 스님이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빵을 사서 대접하며 시작했다.

이후 불자들이 한두 명씩 무료 배식에 동참했고 1998년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음식물 반입이 전면 금지되자, 인근 건물 2층에 법당을 만들어 무료 급식을 제공했다. 2015년 보리 스님의 건강 악화로 문을 닫게 됐지만, 사회복지 원각(회장 원경)이 원력을 이어받아 자비행을 이어오고 있다.

11시30분 급식 시작하면
매일 160명 장사진 이뤄
이용객 10% 하루 한끼만
복지사각지대 놓여 ‘안타까움’


사회복지 원각의 무료급식소에는 2층에 있었을 당시부터 다녔던 구참 어르신부터 1년이 안 되는 신참 어르신까지 층위가 다양하다.

김찬식(84) 씨는 지난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신참이다. 광진구 중곡동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해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에 집에 간다. 김 씨는 “남는 시간에는 공원에서 또래 노인들과 이야기를 한다”며 “지하철로 이곳 저곳 다니다가 오후 4시 정도면 귀가한다”고 말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다닌지 4~5년이 된 이인신(75) 씨는 매일 아침 오전 5시면 일어나서 자택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출발해 7시 정도면 종로3가로 도착한다. 7시30분 번호표를 받고나면 조금은 자유롭다. 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인근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도 가봤지만, 별 흥미를 갖지 못해 발길을 끊었다.

이 씨는 “날씨가 추울 때는 지하철역에 가 있고, 날씨가 좋으면 9시에 문을 여는 탑골공원에 가거나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불광사 창건주 광덕 스님에게 수계를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김대명(83) 거사는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도 알아주는 <금강경> 박사다. 오전 5시 서대문 자택에서 출발해 7시면 번호표를 받는 김 거사는 남는 시간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에 가서 신문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다. 식사를 마친 이후에는 집에서 수행을 한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은 일평균 160여 명. 이날은 공휴일이라 200명이 넘는 어르신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공양을 했다.

고영배 사회복지 원각 사무국장은 “일평균 160명 중 약 10%는 이곳에서 하루 한끼를 먹는 복지사각지대의 극빈층 어르신”이라며 “50%가량은 독거노인이고, 30%는 부부가 같이 살아도 한쪽이 몸이 아파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리 스님의 원력을 이어받은 만큼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탑골 대표 복지시설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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