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검사의 죽음에 가슴이 아프고 짠하다. 지난달 7일 천안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안 지청의 35살 이상돈 검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밤늦게까지 사건을 처리하고 관사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119구급요원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그는 떠났다. 부검 결과 과로사로 판정되었다.

그는 30살 아내와 3살 아들을 두고 떠났다. 장례를 마친 아내가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다 발견한 낡은 수첩의 내용이 잔잔한 화제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마음챙김(Mind setting)’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용을 보면 “아, 이 분은 보살 검사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9월 과로사로 세상 떠난 35살 검사
그의 수첩엔 ‘마음챙김’이란 글 수록
대인관계, 일에 대한 열정 등 담겨

인생에서 스스로 지키고자 한 계율
그의 마지막에서 보살의 모습 본다

보살 정신은 타인 대한 배려서 비롯
현대윤리학서도 ‘배려 윤리’ 중요해
자비 윤리 정립·실천 한국불교 과제


그의 낡은 수첩에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장점만 보려고 노력하자”,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지내자”,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애정을 보이자”, “감사하자. 감사하자. 그리고 겸손하자”, “일은 열정적이며 완벽하게 하자”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것은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 지키자고 정한 자신의 계율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의 동료 법조인들은 고인이 이 계율을 철저히 실천했다고 하면서 그의 떠남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천안지청과 그의 동기 검사들은 그의 어린 아들을 위해 장학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아들을 ‘난 사람’이 아닌 ‘된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찡하다.

보통 사람들은 검사라는 용어에 어두운 권력의 그림자를 느낀다. 정치권력과 부정부패 등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많은 영화들에 나타난 검사들은 권력과 돈의 편에 서 있는 다수의 ‘부정의의 검사’와 이에 저항하는 소수의 ‘정의의 검사’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는 ‘정의의 검사’가 이기길 간절히 바라면서 조마조마하게 영화를 본다. 정의로운 검사가 이기면 우리 모두가 이긴 것처럼 쾌감을 느끼며 극장을 나온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보살의 검사’를 만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죽음을 통해서.

보살의 기본 정신은 배려다. 배려는 타인에 대한 따뜻함에서 나온다. 현대 윤리학계에서도 ‘배려윤리(care ehics)’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서양의 근현대 윤리의 주류는 정의의 윤리라고 볼 수 있다. 정의윤리는 인간 이성에 바탕을 두고 보편적 법칙, 즉 정의를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윤리는 차갑다. 그리고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타인에 대한 따뜻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배려윤리가 등장한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는 듯 하는 것이 배려의 원형이다. 보살의 형상이 여성으로 나타나듯이.

배려는 바로 자비의 실천이다. 붓다의 연기법에서 자비사상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연기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의 존재와 삶이 우주적 연쇄의 존재가 주는 선물임을 알고 다른 존재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비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가지는 사랑을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 확장하는 것이다.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불교는 자비라는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큰 그릇을 가지고 있으면서 물을 뜰 생각보다 그릇 자랑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우리 사회의 갈기갈기 찢어진 도덕적 그물망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비 정신을 오늘의 연기에 맞게 틀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비 윤리의 정립과 실천이 한국 불교의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자비 없는 불교는 없다. 지구별을 떠난 이상돈 검사를 애도하며, 배려의 자비행을 한 그의 업이 이 세상을 밝게 비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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