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중위직 소임

중위직 약 25개 소임

요주ㆍ대중방 관리 책임
장주ㆍ총림 전답 일체 관리
연수당주ㆍ대중 간병
화주ㆍ전법과 보시 유치
방장시자ㆍ주지의 비서
능엄두ㆍ능엄경 선창

선종 사원(총림)의 상위직은 앞에서 본바와 같이 6지사(六知事)와 6두수(六頭首)이다. 그 밑에는 약 25개 가량의 중하위 소임이 있다. 이것을 소직(小職)ㆍ소두수(小頭首)ㆍ열직(列職) 등이라고 한다.

강원의 교과서인 〈치문〉에는 장로자각(종색)의 구경문(龜鏡文)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장로(長老, 주지)ㆍ수좌(首座)ㆍ감원(監院)ㆍ유나(維那)ㆍ전좌(典座)ㆍ직세(直歲)ㆍ고두(庫頭. 훗날 副寺)ㆍ서장(書狀, 書記)ㆍ장주(藏主, 知藏)ㆍ지객(知客)ㆍ시자(侍者, 방장시자)ㆍ요주(寮主, 衆寮 즉 큰방 관리자)ㆍ연수당주(延壽堂主)ㆍ욕주(浴主, 知浴)ㆍ수두(水頭)ㆍ탄두(炭頭, 화로에 사용하는 숯 관리자)ㆍ노두(爐頭, 화로 담당)ㆍ가방화주(街坊化主, 화주), 원두(園頭)ㆍ마두(磨頭)ㆍ장주(莊主, 전답, 농장 담당. 農監)ㆍ정두(淨頭)ㆍ정인(淨人) 등 23개의 소임만 열거되어 있다. 그런데 그가 1103년에 편찬한 〈선원청규〉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소임들이 열거되어 있다.

(1) 요주(寮主)

요주(寮主)는 중위직이다. 중료(衆寮), 즉 대중방(큰방)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우리나라의 큰방 부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원(寮元) 혹은 요수좌(寮首座)라고도 한다.

요주의 임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큰방에 있는 각 개인의 책상과 물품, 비품(備品) 등이 분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분실될 경우 관리 소홀로 문책을 받게 되고 심하면 중료를 수색해야 하는 등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요주 밑에는 부료(副寮)가 있는데, 요주를 도와 중료를 관리하는 소임이다. 요주가 정(正)이고, 부료(副寮)가 부(副)이다.

승당이 좌선, 침식(寢食)의 공간이라면 중료는 차(茶), 간경(看經) 그리고 기타 잡무를 보는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송대에 새로 생긴 건물이다. 또 총림에 따라서는 중료에서 공양을 하기도 한다.

(2) 장주(莊主)

장주(莊主)는 농장의 관리자로 도장(都莊)이라고도 한다. 장주도 중위직이다. 장주는 총림의 전답 일체를 관리하며 일꾼을 동원하여 파종·관리·수확하고, 또 소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받아들이는 것도 담당한다.

‘장주’라고 하는 소임은 송대(북송)에 이르러 황실과 관료, 사대부 등으로부터 많은 토지가 기증되어서 선종총림의 장원이 비대해져서 생긴 소임인데, 그 이전에는 지사의 하나인 직세(直歲)가 이 일을 담당했다. 장주는 많은 식량과 곡식 등을 관리하는 소임이므로 서로 장주 소임을 맡으려고 애썼고 부정도 적지 않았다. 남송ㆍ원대에는 오히려 시시한 지사나 두수보다도 더 인기가 있었다.

원대에 편찬된 〈칙수백장청규〉 ‘주지’ 편에는 장주를 서로 맡으려고 했던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근래는 풍속이 매우 나쁘다. 승려들이 장주(莊主)나 고사(庫司, 감원이나 부사 등), 혹은 집사(執事, 지사)에 임용되기를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한 자들, 혹은 사중(寺中)의 재물을 도둑질(횡령)한 자들이 있어서 주지가 공명정대하게 빈벌(罰)했다. 그런데도 어떤 악도(惡徒)는 자신의 허물은 놔두고 분한(憤恨)만 품는다. 주지가 천화(遷化, 입적)하자 즐거운 듯 악언으로 매도하고 심하게는 관(棺)을 부수고 주지가 쓰던 가사와 발우 등을 가져가는 등 흉포한 짓을 마음대로 한다.”라고 하여 말세임을 탓하고 있다.

(3) 연수당주(延壽堂主)

연수당주는 열반당 책임자로서 몸이 불편한 스님, 병에 걸린 스님들을 치료·요양시키는 소임으로 중위직이다. 우리나라 간병 소임과 같다. 간병 소임을 맡은 이는 마음이 자비스럽고 너그러워야 하며,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연수당에서 잡일을 하는 소임을 열반두(涅槃頭)라고 하는데, 열반두는 주로 행자가 맡는다.

연수당주에 대하여 청규에는 탕약을 써도 차도가 없을 때에는 특별히 육류(肉類)를 사용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목숨이 귀중하므로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면 육류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수당(延壽堂)의 이칭은 매우 많다. 열반당(涅槃堂)ㆍ무상원(無常院)ㆍ성행당(省行堂)ㆍ장식료(將息寮)ㆍ중병각(重病閣)ㆍ안락당(安樂堂) 등이 그것이다.

연수당(延壽堂)은 수명을 연장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거꾸로 생각하면 이곳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곳이다. 인간의 목숨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수명을 더 누리기(=延壽)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중병의 괴로움보다는 내생의 안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무상원(無常院)은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 따온 말이다. 유형적인 모든 것은 무상한 것임을 실감하라는 뜻일 것이다. 〈석씨요람(釋氏要覽)〉하(下)에는 “무상원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서 열반당의 이칭이다. 무상원은 인도 기원정사에 있는 49개의 외원(外院, 별원) 가운데 하나로서 정사의 서북쪽에 있다. 대중 가운데 중환자를 이 원에 보내어 부처님의 상호를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안락국(극락)에 왕생케 하는 곳이다.”라고 쓰여 있다.

성행당(省行堂)은 얼마나 수행을 잘했는지 반성해 보라는 뜻이다. 중병각(重病閣)은 말 그대로 중환자실이다. 3일간 열반당에서 치료해도 차도가 없을 때는 중환자실인 중병각으로 옮기는데, 아마 이곳에 들어가면 나오는 이가 몇 안 되었을 것 같다. 또 열반당을 장식료(將息寮)라고도 한다.

(4) 화주(化主), 가방화주(街坊化主)

가방화주는 간단히 ‘가방(街坊)’ 또는 ‘화주(化主)’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화주(化主)와 같으며 중위직(中位職)이다.

화주는 권선문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에게 불법의 인연을 맺어줌과 동시에 보시(시주)를 받아 사원에서 쓸 비용을 마련하는 소임이다. 그래서 ‘가방(街坊, 저잣거리, 坊坊曲曲)’ 또는 ‘가방화주(街坊化主)’라고 한다. 초기 선종 사원이 재정적으로 빈약할 때 이들이 방방곡곡(坊坊曲曲) 거리(街)를 다니면서 시주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화주는 신심이 대단한 이, 마음이 보살 같은 이가 맡아야 한다.

화주란 원래 중생을 교화하는 ‘교화주(敎化主)’의 준말로서, 부처님이나 장로(長老, 덕망이 높은 스님, 고승), 또는 주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변하여 화주가 된 것이다.

근현대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불사를 할 때에는 경제적 능력이나 신도들과 인연이 많은 스님을 화주스님으로 모셨다. 또 화주보살도 있었다.

당송시대 선종 사원의 화주(가방화주)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죽가방(粥街坊)은 조죽(朝粥, 아침 공양은 죽이었음) 거리를 화주 받아 오는 스님이었고, 미맥가방(米麥街坊)은 쌀과 보리를 화주 받아 오는 스님이었고, 채가방(菜街坊)은 특수한 채소를 화주 받아 오는 스님이었고, 장가방(醬街坊)은 된장과 장물 등을 화주 받아 오는 스님이었다. 이들은 모두 총림을 위하여 자원했던 일시적인 소임이었다. 갖가지 화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초기 선종 사원의 경제가 매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밥을 짓는 공양주(供養主)도 원래는 가방화주를 지칭하는 소임이었다.

중위직 소임 중 방장시자는 방장화상의 시자, 즉 주지의 시자이다. 말하자면 주지의 비서인데, 당송시대에는 모두 5명의 시자가 있다. 이들을 통칭하여 방장시자(方丈侍者), 또는 5시자(五侍者)라고 한다. 사진은 한국 선원의 방장과 시자.

 

(5) 방장시자(方丈侍者)

방장시자는 방장화상의 시자, 즉 주지의 시자이다. 말하자면 주지의 비서인데, 당송시대에는 모두 5명의 시자가 있다. 이들을 통칭하여 방장시자(方丈侍者), 또는 5시자(五侍者)라고 한다. 5시자 가운데 비서실장은 시향시자(侍香侍者)이다. 따라서 ‘방장시자’라고 하면 비서실장격인 시향시자를 가리킨다. 방장시자는 중위직이지만, 사실은 상위직에 가깝다. 또 방장의 상당법어 등 모든 법문을 필기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승랍과 안목 등이 있어야 한다. 모든 선승들의 어록은 1차적으로 이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5명의 시자는 시향시자(侍香侍者, 비서실장), 시장시자(侍狀侍者, 書狀 등 문서 담당), 시객시자(侍客侍者, 접빈 담당), 시약시자(侍藥侍者, 湯藥 담당), 시의시자(侍衣侍者, 가사 등 옷과 발우 담당)이다.

(6) 능엄두(楞嚴頭)

남송시대 후기부터는 선원총림에 능엄주와 능엄경을 독송하는 법회가 있었다. 그것을 능엄회라고 한다. 결제 때는 대중들이 매일 조석으로 능엄주나 능엄경을 독송했는데, 앞에서 선창(先唱)하는 사람을 ‘능엄두’라고 한다.

그 밖에 〈선원청규〉에는 화엄두(華嚴頭)ㆍ반야두(般若頭)ㆍ경두(經頭)ㆍ미타두(彌陀頭) 등이 나온다. 여기의 화엄두 등은 앞의 능엄두와는 다르다. 이들은 가방화주와 같이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화엄경, 반야경 등의 경전을 낭독, 강경(講經), 강의해 주는 동시에 신자들에게 불법(佛法)을 권장하고 화주(化主)를 하여 총림의 재용(財用)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당사자 역시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하여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의 기원은 당대(唐代)부터 있었던 ‘속강(俗講)’이다. 속강은 강창문학(講唱文學)의 일종으로 입담 좋은 스님이 시중(市中)의 넓은 장소가 있으면 어디서든지 사람을 모아 놓고 경전이나 불교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포교를 하고 화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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