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나는 곳 암자서 만난 부처님과 예수님
길 끝나는 곳 암자서 만난 부처님과 예수님
  • 김주일 기자
  • 승인 2018.10.09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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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 영산전의 외모는 내세우지 않는 수더분함이 매력의 절정이자, 나서지 않아도 드러나는 존재감이 내공의 형상화다. 사진은 김홍희 사진작가가 촬영한 거조암 영산전 모습.
거조암 영산전의 외모는 내세우지 않는 수더분함이 매력의 절정이자, 나서지 않아도 드러나는 존재감이 내공의 형상화다. 사진은 김홍희 사진작가가 촬영한 거조암 영산전 모습.

사진가 김홍희는 1995년 〈중앙일보〉 ‘암자로 가는 길’을 연재 했다. 대한항공 기내지인 〈모닝캄〉에 실린 김홍희 작가의 범어사 사진을 본 정찬주 선생이 사진서 기계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암자기행 취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유불선을 익히지 않고는 한국적 사유를 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저자는 당시 정찬주 선생의 암자 취재가 지적 물꼬를 틔운 사건이 됐다고 회고한다.

김홍희 작가는 “암자기행은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인 내가 불교를 접하고, 유교를 만나고, 도교를 익히는 기막힌 계기가 된 셈이었다”고 밝힌다.

암자 26곳 기행 이야기 담겨져
글과 사진 따로 배치 눈길끌어
10월 10일 ‘스페이스22’ 사진전


이후 김홍희 작가는 23년 만에 다시 암자를 찾아, 그 여정을 기록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상무주 가는길〉이다. 책 속에는 작심하고 2년에 걸쳐 혼자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오른 암자 26곳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나무, 바위, 돌, 물, 하늘…, 그리고 스님. 매번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 암자를 오르고 또 오른 그는 어느 순간 더 위로 머무를 곳 없는 무상(無上)의 땅 ‘상무주(上無住)’에 올라섰음을 깨달았다. 그곳은 모든 것이 정지된, 마치 돌처럼 흐르는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갑작스레 찾아든 암세포를 치유하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우울을 털어냈다. 그 치유의 풍경과 시간들을 오롯이 책에 담아낸 작가는 말한다.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있는가?”라고. ‘글 쓰는 사진가’ 김홍희는 스테디셀러 〈암자로 가는 길〉을 비롯해,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조용헌의 〈방외지사〉 등에 사진을 실었다. 또한 저서 〈나는 사진이다〉 〈방랑〉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등을 통해 사진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는 늘 새롭고 획기적인 화각(畵角)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독특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철학이 깃든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사진가로서 30회 가까운 개인전을 치렀고, 줄곧 부산에 거주하며 〈국제신문〉의 ‘세상 읽기’ 칼럼을 올해로 만 7년째 연재중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진만큼이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재담과 훈훈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기기도 했다. KBS 〈명작 스캔들〉의 MC, EBS 〈세계테마기행〉 볼리비아, 짐바브웨, 인도네시아 편, 부산 MBC 〈포토에세이 골목〉, 채널 T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10부작 등에 출연한 방송인이기도 하다.

상무주 가는길/김홍희 지음/불광 펴냄/1만 9800원
상무주 가는길/김홍희 지음/불광 펴냄/1만 9800원

이 책 〈상무주 가는 길〉은 전업 사진가로서, 작가와 방송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한 인간 김홍희의 결정체로, 그의 인생과 철학, 예술 세계가 응집돼 있다. 인연은 신비롭다. 정신없이 바쁘게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좇아 암자를 오르기 시작했다.

김 작가가 23년 전 사진을 찍던 그때의 그 암자들은 거짓말처럼 지금 그대로였다. 나무, 바위, 돌, 물, 하늘…, 그리고 수행자들. 전국 방방곡곡의 암자 수십 군데를 찾고 오른 뒤 그는 무언(無言)의 경지를 만났다. 그가 일생 매달린, 그의 분신인 카메라도 버리고 남은 한 자루의 펜도 버릴 수 있는 ‘무상(無想)의 마음’과 마주한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 지병인 대장암과 우울증서 말끔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암자가 있는 곳,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 그 상무주서 받은 가피이자 영험이라고 김 작가는 고백한다.

책은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시작으로 〈여수 향일암〉 〈곡성 채안사 성기암〉 〈구례 사성암〉 〈하동 지리산 상선암〉 〈쌍계사 국사암〉 〈함양 지리산 상무주암〉 〈고창 선운사 도솔암〉 〈속초 신흥사 계조암〉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 등 전국 26곳 암자의 풍광을 담아냈다. 김홍희 사진작가 특유의 번뜩이는 글과 함께 세심한 감성으로 포착한 100여 컷의 흑백 사진도 실었다. 고집스런 사진가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글은 글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배치했다. 글과 사진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을 보다보면 읽는 맛이 보는 맛을 돋우고, 보는 맛이 읽는 맛을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페이지를 먼저 열고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상무주를 향한 여정’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인 저자는 암자를 순례하며 인간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부처님을 향한 사랑도 더욱 깊어졌다고 털어놓는다. 이렇듯 저자의 글쓰기는 경계가 없다. 애써 꾸미지 않고 숨기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성을 끌어내며 암자의 존재 이유를,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정직하고 담백하게 풀어 놓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더욱 선명해지는 총천연색 칼라시대에 흑백 사진을 고집한 까닭이다.

흑백 사진은 돌처럼 천천히 흐르는 암자의 시간을 형상화하며 가슴 깊이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추억을 쓰다듬고 아픔을 건드리면서도 진정한 위안의 손길을 내민다. 세상살이의 시름을 딛고 다시 저잣거리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안겨준다.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며 한층 풍요롭고 성숙한 삶으로 안내해준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듯한 돌 같은 흑백의 풍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대 올라보지 않겠는가? 상무주, 그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구원의 땅!”

저자가 목격한 작은 암자들은 시간을 거스른 듯한 그의 흑백 카메라 앵글속에 20여년 전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모습 그대로 면면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편 김홍희 작가는 10월 10일부터 서울 역삼동 사진미술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동명의 사진전도 연다. 

​​​​​​​도솔암과 도솔암 내원궁을 보기 위해서는 반대편 천마봉으로 올라가야 된다. 사진은 고창 선운사 도솔암 전경.
도솔암과 도솔암 내원궁을 보기 위해서는 반대편 천마봉으로 올라가야 된다. 사진은 고창 선운사 도솔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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