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이 문득 소(牛)가 되어도 멍에 매는 콧구멍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에 삼천세계가 내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도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할 일 없는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경허선사의 ‘무비공심’에 대한 유래는 이렇다. 당시 동은이라는 시자승(侍者僧)의 부친 이처사는 여러 해 동안 수행하여 스스로 깨침을 얻었는데, 어느 날 그 은사인 도일 스님이 이처사를 만나 차담을 하게 되었다.

이처사가 말하길 “중(僧)이 중 노릇 잘못하면 마침내 소(牛)가 됩니다”라고 하니, 도일 스님이 이 말에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시주(施主)만 받으면, 죽어서 반드시 소가 되어 그 시주 은혜를 갚게 됩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 처사는 꾸짖으며 말했다.

“어찌 사문의 대답이 그렇게 꽉 막혀서 되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이에, 여아시위우측위무천비공처(如我是爲牛側爲無穿鼻孔處)라,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습니까?”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동학사로 돌아가 참선 수행 중인 경허선사께 이처사의 말을 전해드렸다.

그러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시고,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이라 말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홀연이 문득 소(牛)가 되어도 멍에 매는 콧구멍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에 삼천세계가 내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도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할 일 없는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라고 하시며 오도송을 남기셨다.

우리의 참성품은 허공과 같아서 거기에는 생사가 없으며, 동정간에 티끌만한 법도 붙을 수가 없는 우리의 본 고향이다.

허공 어디에 우리의 자유를 구속할 멍에를 뚫을 구멍이 있겠는가? 포대화상송에 아유일포대(我有一布袋) 허공무가애(虛空無가碍) 전개편시방(展開遍時方) 입시관자재(入時觀自在)라.

즉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허공에 걸림이 없으며, 열어 펴면 온 시방에 두루하고 들일 때에도 자유자재하도다”라고 하였다.

전강 선사께서는 정도(正道)로서 경허선사 오도송의 법루(法漏)를 잡아서 허(虛)를 찔렀다. 바로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는 것이 법의 때(법루)인 것이다. “돈각삼천시아가”라 깨달은 각견(覺見), ‘콧구멍 없는 소’의 색견(色見), 이런 ‘법의 때’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활구를 법답게 하는 것이다.

전강 스님은 당시 만공 스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는 그대로 두고, 그 아래 구절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를 제 나름대로 이렇게 붙이겠다고 말했다.

“여여 여여로 상사뒤야”하시며 태평가를 살아 움직이는 활구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농부들이 논을 메며 부르는 가락의 후렴이다. 다시 만공 스님이 물으셨다. “그 무슨 뜻인가?” 그러자 전강 스님은 다시 “여여 여여로 상사뒤야”를 반복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것을 보고 만공 스님께서 “손자가 할아버지를 놀리는 것일세, 참으로 손자가 할아버지를 놀리는 것일세”라고 하시며 인가(認可) 하셨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象)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이라. 즉 이 말은 “마음달이 뚜렷이 밝아서 그 빛이 만상을 삼켜버렸네, 빛과 경계를 모두 놓아 버리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란 뜻이다. ‘이 뭣고’라고 하시며 열반송을 남겨셨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