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얻는 緣起의 지혜
명상으로 얻는 緣起의 지혜
  • 지운 스님
  • 승인 2018.10.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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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비경선(慈悲鏡禪) - 4) 관계성 통찰 사유

소나무에 기대 관계성 사유
진실을 아는 방법에는 직관과 추론이 있다. 직관은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것이라면 추론은 눈앞에 볼 수 없는 것을 사유로 추론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허공이나 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생각 즉, 추론 때문이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진여, 공 등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유 분석을 통해서다. 그러나 지혜가 생기게 하는 추론의 기준이 무엇일까? 이분법적 사고는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그래서 원인과 조건을 살펴보는 것을 기준으로 추론하는 것이어야 지혜가 생긴다.

지식은 그 사물에 한정된다. 다른 사물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반면 지혜는 모든 존재를 하나로 꿰뚫어볼 때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대입시킬 때 통용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사회문제나 국가, 인류, 우주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지혜이다.

상호의존 이해하는 통찰명상
언어로 인식대상 구분 않고
사유 통해 존재 의미 깨달아
결국 실체 없다는 공성 이해

예를 들자면 죄나 잘못을 저지를 때 그 잘못을 없애기 위해 타작하여 곡식의 껍질을 벗기듯이 죄지은 자를 때려서 그의 죄를 없앨 수 있을까? 어린 아이가 잘못을 하면 부모가 아이를 훈계하고, 심하면 매로 때리기도 한다. 그런데 매를 맞으면 죄가 없어질까? 지혜가 있으면 죄의 원인이 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앤다. 매를 맞는다고 훈계를 듣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그 지혜가 바로 죄를 없애는 것이다. 이제 지혜를 얻기 위한 관계성 통찰사유 명상을 해보도록 한다.

소나무에 기대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어깨에 힘을 빼고 허리는 펴준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10~20)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소나무를 대상으로 연기의 상호의존성에 대하여 사유한다. , 눈앞의 소나무는 시각적으로 고정되어 있어 보이고, 다른 것과 분리 독립되어 보이고 실체를 가지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흙(흙의 요소)이 없으면 살 수 없고(흙은 지구 구성요소 중 하나임을 이해하고 지구를 시각화하여 떠올린다), (물의 요소)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며(하늘의 비 내림과 바다와 강을 떠올린다), 차고 따뜻한 온도가 없으면 살 수 없고, 광합성을 할 수 있는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다(불의 요소).

또한 바람(바람의 요소)이 없으면 자랄 수 없으며, 공간(허공의 요소)이 없어도 자랄 수 없다(소나무 주위 공간에서 지구 주위의 공간으로 의식을 확장해본다. 그리고 태양계에서 우주로 공간을 확장한다).

빛은 태양에서 오고 태양은 우주에 속해 있다(태양계와 우주를 떠올린다). 소나무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소나무가 없으면 우주가 없고 우주가 없으면 소나무도 없다. 왜냐하면 소나무 등의 부분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우주라는 전체는 소나무라는 부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부분과 전체가 의존적이기 때문에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이다. 그래서 부분과 전체는 동등하고 평등하다.

부분과 전체가 상호 의존하므로 소나무는 고정, 독립, 분리,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소나무를 의지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떤가? 소나무와 다르지 않다. 부분과 전체가 평등하므로 불평등을 야기하는 자아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남녀 불평등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나아가 인간중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또한 생명 중심에서 벗어나 무생물까지 상호 의존함을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것은 평등한 하나임을 사유하여 바르게 안다(지혜).

이제 다시 눈을 감고 소나무를 시각화하여 우주까지 상호의존성을 사유 통찰한다. 그리고 소나무가 아닌 소리나 다른 것으로도 상호의존성을 사유 통찰할 수 있다.

끝으로 소나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서 고맙다고 한다. 땅에 대해서도 발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공기에 대해서도 공간에 대해서도 햇빛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표현한다.

지혜의 뜻
소나무를 의지하며 관계성 사유통찰을 통하여 어렵지 않게 지혜가 생기고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지혜에 대하여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상호의존의 통찰사유를 해야 하는가? 언어에 의하여 대상이 고정, 독립, 분리, 실체를 갖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는 무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식의 수단일 뿐 인식의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인식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무지가 일어난다.

무지는 감정이 아니므로 강하게 마음에 자극을 주지 않아서 자각하기 어렵다. 탐욕이 생길 때는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없이 고정, 독립되어 있고 다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분노가 일어날 때도 분노의 대상은 고정, 독립된 존재로 보인다. 이와 같이 탐욕과 분노라는 감정은 모두 무지를 의지하여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언어를 매개로 사물을 인식하는데 이때 언어는 그 대상을 왜곡시킨다. 눈으로 사물을 볼 때도 이미 우리의 인식이 언어에 의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그대로 사실이라고 인식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 대상을 원인과 조건으로 분석 사유해야 한다. 사유 분석을 통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상하게 변하고,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실체를 갖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하는 것이 비어있음을 알 때 그 앎을 지혜(언어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인식)라고 한다.

지혜는 첫째, 모든 것을 꿰뚫어 하나로 보는 것이다. 둘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더라도 이 지혜는 불변이다. 셋째, 무지가 사라지고, 무지가 사라지니 번뇌가 사라지고, 번뇌가 사라지니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니, 괴로움이 사라진다. 몸과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대자유를 얻는다. 넷째, 부분과 전체가 의존관계이고 상호의존은 모든 것이 평등함을 아는 것이다. 평등하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지혜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가 있는 자는 성차별, 계층 간의 차별, 인종차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 전쟁, 그리고 환경오염 등 모두 탐진치로 인하여 일어나는 차별현상 등 이러한 문제를 지혜가 해결할 것이다. 다섯째,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여섯째,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체험 현상과 효과 생각하기
모든 것이 연기법 하나로 통합되면서 일체감을 느낀다. 지혜로 인해 안목이 생기고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까지 넓고 깊게 볼 수 있다. 의식이 무한히 확장되면서 매우 자유롭다.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체험이 일어난다. , 무분별의 깨어있는 의식상태를 체감한다.

상호의존의 지혜에 의해 시간적으로 변하는 무상의 지혜,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지혜,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공성의 지혜가 생긴다. 그리고 자아중심, 남녀중심, 인간중심, 생명 중심에서 벗어난다. 상위수준의 의식상태를 체감한다.

걷기선 명상의 기본 네 가지 첫째 걸으면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 둘째 소리 무상 관찰하기, 셋째 몸과 마음 휴식하기, 넷째 소나무에 기대어 관계성 통찰 사유하기는 명상환경에 따라 순서를 바꾸면서 걷기선() 명상을 한다. 그런데 걷기선 명상(자비경선)에는 열두 가지 명상이 있다.

걸으면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 소나무에 기대어 온몸의 감각 알아차리기-좌경선 걸으면서 무상관찰하기 청각의식 확장하기 시각의식 확장하기와 청각의식과 시각의식 확장 통합하기 연못에서 완전 거울이 되어 모든 존재와 연기적 일체감 체득하기 소리 무상 관찰하여 무주(無住)에 머물기 걸어가면서 무상으로 흘리기 마음 멈추고 쉬기 소나무에 기대어 의식 확장하기와 관계성 통찰 사유하기 안과 밖의 경계선이 없는 의식의 한 공간 이루기 미소를 짓고 자연과 사람 모두 소통하기이다.

5) 수미산 성지순례 걷기선 명상
티베트 카일라스산은 수미산으로 알려져 있다. 7월 초에 13명이 수미산 성지순례를 갔다. 걷기선 명상 지도자과정에 있는 수행자들 가운데 능인행님의 걷기선 명상일기의 일부다.

순례대중과 걷기선 명상방법을 듣고 다리풀기운동을 한 뒤 발끝 손끝 정수리에 의식을 두고 몸과 한 공간 이루면서 걷기를 시작한다. 수미산을 향하여 평소보다 늦게 출발하였다. 여러 번 순간 어지러웠다. 전조증세를 알아차림 못하고 계속 놓쳤는데 다르첸에서 숙소인 밀레르빠 수행처까지 오도록 그런 증세는 없었다.

여기 와서 계속해서 스님 멘트에 따라 수행한 탓인지 수행이 더 잘 되고 진전이 있다. 이제 사물과 한 공간을 이루는 전체보기로 전환한다. 전체보기가 선명하게 잘 되고 앞의 시야가 정확하니 걷는데 걸림이 없다. 스님께서 의식 확장이 잘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의식 확장이 잘 되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지 않아도 좌우가 한눈에 들어온다. 스틱을 잡은 손가락 모양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수많은 형상들이 각각의 모습을 보이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모양도 모습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의미를 두지 않으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인다.

걷는 도중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 앞으로 작은 수박 크기의 돌이 굴러 지나갔다. 멀리서부터 들려도 같은 소리도 없고 속도도 다르고 소리의 흔적도 없으며 스스로 구르는 것도 아니며 주변의 조건에 따라 다름을 알아차림 했다. 돌이 굴러야 할 조건이 되었고 상호관계성에 의해서 큰 돌과 작은 돌이 함께 굴러도 반응은 다르게 들렸다. 사물과 한 공간을 이루는 전체의식이 되지 않고 알아차림이 없이 그냥 걸었다면 다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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