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정당한 대가 지불은 공정사회의 시작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정당한 대가 지불은 공정사회의 시작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10.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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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설한 돈과 인간관계

 

‘돈이 양반’이라는 말이 있다. 돈은 인간관계마저 변화시킨다. 괴테의 파우스트의 맨 마지막 구절은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다.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남자이고 중범죄의 대부분은 남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여자도 나쁜 짓을 하지만 악랄한 인간은 대부분 남자다. 비구 사찰은 부정이 많은데 비구니 사찰은 상대적으로 부정도 적고 깨끗하다고 하니 사실인지 한 번 조사해볼 일이다. 즉 돈에 있어서 비구니 사찰이 더 투명하고 정직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남자가 훨씬 못된 인간 같다. 오랜 기간 동안 남자는 강자였고 여자는 약자였기에 남녀관계는 평등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는 여자를 착취한다는 관점에서 남녀관계를 파악하기도 한다. 최근 남녀관계의 변화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여성이 경제력을 갖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돈에 의해 인간관계가 달라지며 남녀관계도 그 중의 하나다.

금전 앞에 드러나는 인간관계
잘못된 경제 관계가 인간관계로
공정한 제도로 정법 사회 구축해야

인간관계 중에서 경제관계는 가장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관계다. 아무리 좋던 사이도 돈 문제가 얽히면 본성이 드러난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사람을 소개 받으면 속으로 ‘돈으로 겪어보지 않고 좋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차마 이런 말을 겉으로 내 뱉을 수 없기에 ‘겪어봤습니까?’라고 묻는 게 일반적이지만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돈 문제로 겪어봤습니까?’이다. 돈이 얽히면 부모 형제 자매 사이도 험악해진다. 돈 앞에는 뭐든지 무너진다. 온통 세상은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세상’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바람직한 경제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서로 정당한 대가를 교환하는 경제관계가 답이다. 즉 남으로부터 재물과 이익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하며 마음으로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가시적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별역잡아함경〉은 “남에게 좋은 음식 받았으며, 또는 재물과 이익을 받았으면서, 그이가 자기의 집에 오면, 보답할 마음이 전혀 없고, 내지 그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면, 그를 업신여김 받는 첫머리라고 말하네.”고 설한다. 〈잡아함경〉은 “풍족하고 맛나는 남의 음식 받으면서, 자기는 스스로 그 재물 아껴, 남의 것 먹고도 갚지 않는 것, 그것 곧 지는 문에 떨어짐이다.”고 설한다.

어떤 부자가 내가 잘 아는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는데 워낙 신뢰, 원칙 등을 운운하다보니 그 변호사가 구두 계약으로 사건을 수임했다. 나는 옆에서 그 사람 믿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건에 이기자 “네가 한 일이 뭐냐?”라고 따지면서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다. 대가를 받았음에도 안면 몰수하고 공짜로 변호사를 부려 먹은 것이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마저도 이런 식으로 속여 먹으니 평범한 사람은 힘 있는 사람에게 판판히 당한다. 언젠가 은사님이 은퇴하시기 직전에 나에게 흥미 있는 조언을 했다. ‘내가 살아보니 애국심, 신뢰, 원칙 등을 강조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더라구’ 최순실이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단어가 ‘믿음, 신뢰’였다는 것이 녹취를 통해 드러났다. 은사님 말이 맞았다.

가장 첨예한 경제관계 중 하나가 노사관계이다. 〈중아함경〉은 “상전은 다섯까지 일로써 종이나 하인을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구제하여야 하나니 . … 첫째는 그 힘을 따라 일을 시킨다. 둘째는 때를 따라 먹인다. 셋째는 그 힘을 따라 마시게 한다. 넷째는 날마다 쉬게 한다. 다섯째는 병이 나면 약을 주는 것이다. … 만일 사람이 종이나 하인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면 반드시 흥하고 쇠하지 않느니라.”고 설한다. 부처님은 노동자에게 적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지시하면서 사미에게도, 절을 지키는 사람에게도 그들이 일을 하면 돈을 지불하라고 설하고 있다. 이것은 사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전은 아랫사람의 능력에 따라 일을 시키되 음식, 휴식, 의료복지 등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아랫사람도 윗사람에 대해서 열심히 일하고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성실과 상호 사랑으로 맺어져야한다.

비록 출가자에게 적용하고 있는 규정이지만 부처님은 교단에서 축출된 비구는 물론이고 외도, 속인과도 경제적 관계를 맺지 말라고 지시하고 계시며 심지어 음식도 주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병자, 어린이, 임산부 등 약자에게는 예외를 허용하고 외도, 속인이 다쳐서 죽어갈 때에는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외도, 속인과 경제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비의 종교라는 불교답지 않게 들릴 수 있지만 잘못된 경제관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잘못된 인간과는 절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고 관계를 맺게 된다면 거래가 공정하게 성사될 수 있도록 반드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법에 의존한다면 아주 나쁘게 생각한다. ‘글쎄 그 놈이 법대로 하자고 하네요’라는 말은 법대로 하자는 말이 얼마나 나쁜가에 대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은 멀어야 되고 가능하면 법 이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맞는 말이지만 사람 사이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싸우기에 양보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어떤 변호사가 ‘법대로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절대 해결이 안되거든요.’라고 말했는데 나도 공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주변에 돈에 관한 분쟁이 있으면 법적으로 해결해야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보고 법에 의해 해결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한국은 법대로 하지 않는 게 너무 많다보니 만약 엄격하게 법대로 하면 억울한 사례가 많이 생겨난다. 현실은 법과 달리 돌아가는데 갑자기 법을 들이대면 못된 놈이 이익을 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노조가 파업할 때 ‘준법투쟁’이라는 것을 한다. 법대로 지하철 차량을 운행하면 운행 속도가 엄청 느려진다는 것이다. 즉 법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보니 법대로 하는 게 우리에게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

한국은 판사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서면위주의 5분 재판’이다. 판사의 업무량이 과다한 탓인지 잘못된 판결도 많고 1심에 승복 못하는 비율도 높다. 판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어느 변호사가 ‘제가 판사할 때는 몰랐는데 변호사 해보니 판사의 판결이 문제가 많더라구요. 판결문 몇 줄로 끝내는 판결이 있는데 너무 해요. 이게 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래요.’라고 한다. 변호사회에서 끊임없이 판사를 증원하라고 해도 법원은 아주 조금만 증원해서 비판을 받는다. 판사출신 변호사 숫자가 늘면 손해라는 생각에서 그런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옆집과 담장을 놓고 분쟁이 일어나면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싸우도록 하고 막상 당사자들은 길에서 마주쳐도 소송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다른 이야기 즉 강아지는 잘 크냐, 정원의 나무는 잘 자라느냐 등의 이야기만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갈등해결은 내가 보기엔 지혜롭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라 당사자들이 다투면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대화는 각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제기하는 장이 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들은 남의 일이라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하니 더 객관적이 된다. 모든 것을 법에 의존하다보니 소송 만능이라고 하지만 나는 법적 해결이 좋다고 느낀 경우가 참 많았다.

만약 우리가 자유시장경제를 꽃 피우고 싶고 소득의 증가를 원하고 부자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법치국가부터 되어야 한다. “바른 법(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 부디 치우치거나 억울하게 하지 말라. 온 나라 안에 법 아닌 것이 행하지 않게 하라. 이것이 곧 ‘내가 다스리는 것’이라 한다.”

부처님은 〈장아함경〉에서 불교의 법치국가관을 설하고 계신다. 불교에서는 법치국가라는 단어대신 정법국가라는 단어를 썼으면 좋겠다. 법치국가라는 단어보다 정법국가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악법도 법이라고 국민을 탄압하던 독재국가 시절의 악몽이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에 의해 처벌 받았기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독재자들에게는 전가의 보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보니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악법을 어떻게 봤을까? 부처님은 악법도 지켜야 한다 혹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셨지만 잘못된 법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라는 단어 대신 정법 즉 바른 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거래를 할 때 속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거래에 담보를 제공하고 공증하고 보증금을 치루어야 한다. 정부가 사법제도를 통해서 거래가 최소의 비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자유시장경제가 꽃 피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법을 어기면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하여 실제 끼친 손해의 몇 배를 배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잘못하여 1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면 600억, 1000억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100억원은 손해받은 당사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국고에 편입한다.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주장이 오랫동안 주장되었으나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이제야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한다.

구태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운운할 것도 없이 지금 법 테두리 내에서도 법을 잘 운영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면 법치국가가 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잘못된 법 조항을 조금씩이라도 개정하여 바른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법 사상에 의하면 잘못된 법은 국민이 지키지 않아도 되고 악법을 강요하는 정부에게는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는 악법을 바른 법으로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국민은 바른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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